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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말기 독일의 국민 돌격대[WW2 Later Nazi Germany Volkssturm]

슈트름게슈쯔 2012. 4. 25. 10:47

 

 

판저 파우스트와 판저 슈렉으로 무장한 독일 국민돌격대 - 1944년 11월

 

국민돌격대(Volkssturm)는 독일에서 제 2파 세계대전 말기에 창설되었던 민병대였다.

1944년 10월 18일 아돌프 히틀러의 명령으로 조직되었다.

국민돌격대는 16세부터 60세까지의 독일을 위해 군복무를 한 적이 없었던 남자들을 대상으로 징집하였다.

이들로 구성된 부대를 국민척탄병이라 부른다.

 

 

 

 

판저 슈렉으로 국민돌격대에게 훈련을 시키는 독일군

 

 

 

 

판저 파우스트를 어깨에 맨 국민돌격대

 

 

 

 

소련 탱크를 격파 시킬 판저 파우스트의 겨냥 방법을 국민돌격대에게 가르치는 독일군

 

 

 

판저 슈렉을 든 서부전선의 독일군 장교

 

 

 

 소련군이 쳐들어올 길목위의 참호속에서 판저 파우스트와 Kar 98K 소총을 준비하여 기다리는 국민돌격대

 

 - 1945년 2월 2일 독일 Ratibor(현재는 폴란드 Racibórz)

 

 

 

MP-40 기관총의 사격 훈련을 받는 국민돌격대 청년

 

 

 

MG 34 기관총의 사격 훈련을 받는 국민돌격대의 노인

 

 

 

MG-42 중기관총의 사격법을 국민돌격대에게 훈련시키는 독일군

 

 

전투에 국민을 군대에 동원 시키자는 계획은 독일 동부 전력을 강화시키려는 목적으로

1944년 육군총사령부(Oberkommando des Heeres) 참모총장 하인츠 구데리안이 발상하여 제안했었다.

2차 세계대전 말기에 독일 국방군은 소련군의 진격을 막을 병력이 모자랐다.

그래서 건강, 직업 등 이유로 군복무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정받았던 남자들도 징집했다.

국민돌격대는 약 1925년 부터 문서상으로 존재했지만, 실제 부대로 된 것은

히틀러가 마틴 보르만에게 남자 육백만 명을 모집하라는 명령을 내린 후였다.

그러나 의도했던 육백만 병력에 이르지는 못했다.

민병대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히틀러와 보어만은 인원수뿐만 아니라 열광적인 사기에도 신경을 썼다.

국민돌격대 계획을 세운 초창기에 병사들의 사기가 저하되면 전투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사기를 높이기 위해 나치 지역당이 국민돌격대를 직접 지휘했다.

군수와 훈련을 책임지는 보충대 사령관으로서 하인리히 히믈러는 새로운 국민돌격대를 전국 조직으로 만들었다.

국민돌격대는 일반적으로 당의 관리를 받았지만, 군사 행동에 나설 때에는 국방군의 지휘를 받았다.

나치 지역당의 지도자인 관구장은 지휘, 입대자 관리, 지역 부대 조직을 책임졌다.

국민돌격대 중 가장 큰 부대 단위가 나치 지역당을 구성하는 작은 구역(Kreis) 단위에 대응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본 부대 단위는 남자 642명으로 조직된 대대였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베를린시 사수 전투에 투입된  나이 든 노인과 나이 어린 소년으로 구성된 독일 국민돌격대 - 1944년

 

 

국민돌격대 부대는 히틀러 청소년단, 장애인, 노령자 등 군복무 부적합자들로 채워졌다.

예를 들어 독일,라이베리아 혼혈 한스 위르겐 마사쿠이(Hans Jürgen Massaquoi)는

청소년단의 Jungvolk부와 국방군에 인종 사유로 거절 당했었다.

그러나 국민돌격대로부터는 입대 명령을 받았다

 

 

 

 

연합군의 포로가 된 독일 국민 돌격대 할아버지 병사들 - 1945년 4월

 

 

 

 

 

photo from : Forems.gamesqur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