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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에게 협력했다가 삭발당한 프랑스 여성들[WW2 Accused of collaboration, have their hair shaved French Woman]

슈트름게슈쯔 2012. 6. 11. 19:32


 

 

나치 독일군에게 협력하다가 해방후 단죄로 삭발을 당한 프랑스 여성 모녀 

 

 

 

해방된 프랑스의 사르뜨르 시에서 나치 독일군에게 협력한 반역 행위를 저지른 여성들을 삭발시키고

동족의 야유와 질타를 경험하게 하면서 수치심이 뭔지를 느끼게끔 가두행진을 시키는 장면이다.





  

 

독일군에게 협력했다가  국민들에게 삭발당한 프랑스인 여성 모녀- 1944년 8월 18일

 

 

이 프랑스인 모녀는 나치 독일군 치하에서 그들에게 협력했던 반역죄로

삭발을 당한후 시민들 앞에서 질타의 손가락질과 야유를 받아야 했다.

더구나 딸은 어떤 연유에서 인지 독일군의 아이까지 낳았다.

독일군에게 겁탈을 당하여 임신이 되었던것인지

아니면 생계형 매춘으로 독일군들을 상대로

몸을 팔았던 것인지 그 연유는 자세히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분명히 조국 프랑스를 배반하고 적국인 독일에 협력하는

반역죄를 저질러 주홍글씨가 내려지게 된것이다.

 그것은 삭발을 당한후 평생 못잊을 거리 행진으로

동족들에게 얼굴이 알려지며 비난의 야유를 들어야만 했다. 

 

해방후 프랑스 드골 정권이 시행했던 나치 독일에 가담했던 반역 세력과

그들에 동조 했었던 무리를 응징했던 정책은

그야말로 신속하고도 가혹하리 만큼 철두철미했다. 

나치 독일에 협력후 프랑스 남부에 세웠던 비시정권의 관계자및

조국 프랑스의 동족들에게 배신 행위를 저질렀던 자들은

예외 없이 사형 선고가 내려져 즉결 처분 되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무훈으로 프랑스의 국부로 칭송받았던

폐탱 원수는 나치 독일과 협력하여 비시정부의 수반이 되었다.

그는 프랑스가 연합군에 의해 해방이 된  이후

국민들에게 공공의 적으로 지목되어 종신형을 받았다..

폐탱의 비시정권에 합류하여 국무장관을 맡았던

라발 또한 독일에 협조한 반역죄로 1945년 10월 15일 처형되었다. 

 

이는 전쟁후 프랑스가 국민들을 결속시키기 위하여

제일 먼저 시행했던 단죄 작업이었다.

그것은 역사 바로 세우기 식의 단안이기도 하였다,

해방후 반민특위라는 기구를 만들어 놓고

친일파를 응징한다고 하였다가

유야무야 되어버린

한국의 반역자 단죄 형태와는 전혀 달랐던 것이다. 

 

프랑스에서 독일군에게 협력했던 여성들이 머리를 삭발당하고

시민들에게 망신당하는 수준은 그야말로 약과 였던 것이다. 

만약 남성이었다면 바로 총살되었을 것이었다.

 

 

 

 

 

photo from : Histom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