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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의 철학 - 조용헌

슈트름게슈쯔 2012. 10. 17. 19:32

 

 

 

그동안 천하를 주유하면서 수많은 건달과 만나 놀아볼 수 있는 인연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모두 전생 인연의 소치이다.

시골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기다리다가 만나기도 하였고, 낯선 여인숙에서 세수하다가,

 산길을 걷다가, 또는 어느 이름 모를 식당에서 밥 먹다가 만나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건달의 길을 제대로 가려면 철학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는 서울을 떠나야 한다.

돈이 없는 건달이 가장 버티기 어려운 곳이 서울이다.

 대도시는 사람이 넘쳐 나므로 사람은 중요하지 않고 물질이 중요한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서울은 초급, 중급 과정을 모두 마친 최상승 건달만이 놀 수 있는 곳이다.

초보 건달은 빨리 서울을 떠야 한다.

 둘째는 자연을 가까이해야 한다.

막장에 몰린 인간을 궁극적으로 위로해 주는 것은 역시 자연이다.

 산과 강, 구름과 바위, 소나무와 계곡의 물소리, 새소리와 야생화와

대화하는 대화법을 익혀야만 자연의 품에 안길 수 있다.

아침 안개가 피어오른 호수의 풍경과, 산 모퉁이에서

저녁노을이 붉게 물드는 광경을 보고 세상에 태어난 보람을 느낀다.

 셋째는 네트워킹이다.

건달들끼리는 전국에 점조직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

 이들과의 연대를 통해 외로움을 달래면서, 사교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이 건달의 특권이기도 하다.

서로의 아지트를 방문하여 조촐한 파티를 벌이기도 한다.

6년째 전국의 섬 200여 군데를 돌아다닌 강제윤(47)은 그 네트워킹의 일단을

'그 별이 나에게 길을 물었다'에 밝히고 있다.

강제윤은 전국에 깔려 있는 지인이 대략 300여명쯤 된다고 한다.

노잣돈도 충당하고 하룻밤 신세를 지기도 한다.

 그는 가는 곳마다 아지트를 만드는 내공을 지녔다.

시골 마을회관에서 하룻밤 자고 나면 거기 이장님과 허물없는 사이가 되니까 결국 안면을 튼 관계로 전환된다.

 이러한 친화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않는 부쟁지덕(不諍之德)을 쌓아야 한다.

넷째, 건달은 혈색이 좋아야 한다. 혈색이 나쁘면 건달 자격이 없다.

 혈색이 나쁘다는 것은 근심 걱정이 많다는 뜻이다.

이런 철학을 갖춘 건달은 그냥 건달이 아니고 '건달(乾達)'이 된다.

주역의 '건(乾)괘에 통달(達)한' 용이 되는 것이다.

 

 

 

 

 

 

 

 

 

from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