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레닌그라드의 식량 보급과 도시 채소밭 [WW2 Leningrad Convoys with supplies & City Vegetable gardens]

슈트름게슈쯔 2012. 11. 26. 16:55

 

 

 

오스트로브스키(Ostrovsky)광장의 독일군 포탄이 터져 생긴 구덩이에서 식수를 긷는 레닌그라드 시민들 - 1941년 

 

 

 

 

 

 

 

 

독일군의 포격으로 희생당한 레닌그라드 시민들 - 1941년

 

 

 

희생당한 어린이의 시신을 썰매로 끌며 매장터로 옮기는 가족들 - 1941년

 

 

 

독일군에게 봉쇄된 레닌그라드에서 기아와 질병으로 사망한 어린이의 시신을 옮기는 여성들 - 1942년 봄

 

 

 

매장지로 옮겨진 레닌그라드의 희생자들 - 1942년

 

 

 

살아남기위해 식수를 길어가는 레닌그라드 시민들 - 1942년 겨울

 

 

 

 

얼어붙은 라도가 호수를 이용하여 기아에 허덕이는 레닌그라드로 물자를 나르는 식량 보급 수송차량 행렬 - 1942년 4월

 

 

 

라도가호를 이용하여 레닌그라드로 보급되는 연합군의 식량 보급품 - 1942년 9월 1일

 

 

 

레닌그라드(상트 페테르부르크) 이삭 대성당 앞 마당을 양배추를 심을  텃밭으로 일구는 러시아 여성들

 

 

 

 

독일군의 레닌그라드 봉쇄에 따라 이삭 대성당 앞을 채소밭으로 만들어 양배추를 수확하는 러시아인들 - 1943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이삭 대성당(Saint Isaac's Cathedral)- 2011년 8월 11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과 핀란드 동맹군은 소련의

레닌그라드(현재 :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둘러싸고 벌인 장기간의 포위공격을 계속 벌였다.

실제로 이 포위공격은 1941년 9월 8일부터 1944년 1월 27일까지 872일 동안 계속되었다.

1941년 6월 나치 독일이 소련 침공을 개시한 후 독일군은 9월초까지

서쪽과 남쪽으로부터 레닌그라드에 접근했고, 핀란드 동맹군은

카렐리아 지협을 따라 남하하여 시의 북쪽으로 접근했다.

 이때 레닌그라드의 신체 건강한 주민은 총동원되어 시의 주위를 따라

대전차용 요새들을 구축하여 20만 병력의 적군(赤軍) 수비대를 지원했다.

 레닌그라드의 방비는 곧 견고해졌지만 11월초까지는 시가 완전히 포위되었고,

소련의 내륙으로 통하는 젖줄인 철로와 그밖의 보급로가 모두 차단되었다.

계속되는 독일군의 봉쇄와 공격은 1942년에만 65만 명의 레닌그라드 시민의 목숨을 앗아갔는데,

그들은 대부분 굶주리고 헐벗고 병들어 죽거나 멀리서 날아오는 독일군의 포격에 맞아 죽었다.

드물게 보급되는 소련의 식량과 연료는 라도가 호(湖)를 통해

여름에는 거룻배로, 겨울에는 트럭과 빙상 썰매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보급으로 1942년 이 도시의 무기 공장들은 계속 가동될 수 있었고

200만 명의 주민이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했으며, 한편으로 100만 명의 어린이와 노약자들을 피난시켰다.

기아선상의 식량배급 상황은 1943년까지 시내 대부분의 공지를 채소밭으로 가꿈으로써 완화되었다.

1943년초 소련의 공세로 독일군의 포위망이 뚫려 라도가 호 연안을 따라

보다 풍부한 보급품이 레닌그라드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1944년 1월 소련의 공세가 완전히 성공하여 독일군이 시의 외곽에서

서쪽으로 퇴각함으로써 포위공격은 끝이 났다.

1945년 소련 정부는 레닌그라드에 레닌 훈장을수여했고,

1965년 소련의 영웅도시라는 칭호를 내려 역사상 가장 격렬하고

기억에 남을 포위공격을 이겨낸 데 대한 경의를 표했다.

 

 


photo from : Boris Kudoyarov

            ww2db.com

                olive-drab.com

                        businessinsid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