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현장

고려대학교 정문을 막았던 수도방위사령부의 M-113 APC장갑차[Korea University Gate Block 1971 Korea Army Capital Defense Command M-113 APC]

슈트름게슈쯔 2013. 3. 17. 21:29

 

 

 

 

 

 

베트남전 당시 한국 맹호부대의 M-113 보병 수송 장갑차  - 1962년

 

 

 

고려대학교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을 선제 차단시키기 위하여 무력적으로 정문을 막아 주둔시킨

 

 수도 방위 사령부의 미국제 M-113 APC(armored personnel carrier) 보병 수송 장갑차 - 1971년 10월 15일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주력 보병 수송 장갑차량은  M-2 하프트랙 장갑차였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지 5년뒤 다시 극동에서 발생한 공산주의 세력의 침략 도발에 맞선

서방세력 U.N의 응징이었던 한국전에서 미군의 주력 보병 수송용 장갑차는 M-18 전차의 차체를 이용한 

  M-39 다목적 수송용 캐리어와 M-75 보병 수송 장갑차가 병력 수송용 차량으로 활용되게 된다. 

또한 M-24 채피 경전차의 차체를 이용하여  

27명의 인원을 수송시킬수있는 M-44 보병 수송 장갑차및 M59A1 병력 수송 장갑차가 있었다.

하지만 위의 보병 수송 장갑차들은 모두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기갑차량인 M-24 채피 전차의 

기본 베이스로 제작했던 차량들이었자 작전시 작전 지역에 그렇게 많이 투입시킬

필요가 없는 24명의 많은 부대원들을 실어 나를수 있는 차량이었다.  

그래서 시대적 요건에 따라 1개 분대정도의 전투원들과 중화기를 적재시켜 신속히 작전지역으로

수송시킬수 있는 기동력을 가진 중간 형태의  보병 수송 장갑차의 필요성이 대두되게 된다. 

이에 따라 미 육군은 1950년대 후반기에 그러한 목적에 합당한 기동성을 

발휘할수 있는 새로운 전투 보병 수송용 장갑차 제작에 착수하게 된다. 

  그러던중 미국 국방부는  FMC 사와 신형 장갑 보병 수송차의 개발 계약을 체결하고

M113 보병 수송 장갑차를 1959년부터 생산하여 배치하기 시작하였다.

 원래 M113 보병 수송 장갑차는 동독과 대치해있던 북대서양 조약기구 NATO의 맹주국인 서독이  

동구권 바르샤바 조약기구 WTO의 침략에 대비하여 지상군 전투 보병의 

수송용 장갑 차량으로 배치시킬 계획으로 제작한 보병 수송 장갑차였다.

하지만 서부유럽외에 미국의 또 다른 세계 공산주의 세력을 저지시키기 위한 방어선의 지역이었던 

동남아 조약기구(SEATO)의 지역인 동남아시아의 베트남 지역이 더 필요한 지역이었다.

그래서 미군은 1962년부터 베트남에 투입시켜 배치시키기 시작하였는데

M113 장갑차는  M-48 패튼 전차가 운행하기 힘든 정글지역에서

빠른 기동력을 발휘하며 다목적 기갑차량으로서의 역할을 십분 발휘했다.

 이 보병 수송 장갑차는 이후 거의 대부분 서방국가들에게 원조되고 판매가 되었으며

현재까지 M-113 보병 수송 장갑차는 파생형 차량까지 모두 8만대 이상 생산된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M-113 APC(armored personnel carrier)는 나중에 

 M113A1,M113A2,·M113A3,M113ACAV 등의 여러가지 파생형과  개량형이 등장하게 된다.

한국군이 M113 장갑 보병 수송차를 보유하게 된 계기는 1967년 미국에 대한 대외군사원조에 의해서 였다.

그로써 우선적으로 미국으로 부터 M-113 보병 수송 장갑차 86대를 인수하게 된다.

그리고 1971년 특별 군사 원조에 의해 미군 장기 초과품(LSE) 273대를 추가로 인수하게 되어

 한국군 최초로 기계화 보병사단을  창설하게 된다.

그것은 한국의 수많은 국군들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희생한 뼈저린 댓가이기도 했다.

 그에 따라 한국은 미국의 신형  M113 보병 수송 장갑차를

미국으로 부터 대량으로 도입할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즉 한국이 미국의 베트남 전쟁에 대한 명목을 세워주는

군대의 지원이 한국에 대한 미국산 신형 무기의 원조로 작용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