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롬멜과 한국의 롬멜 습격포전차[Rommel & Korea Rommel Strumgechutz Tank Jagd Panther]

슈트름게슈쯔 2013. 9. 18. 12:57

 

 

프랑스 침공시 독일 4호 전차 앞의 롬멜 - 1940년 6월

 

 

 

프랑스 침공시 독일 2호 전차 앞의 롬멜 - 1940년 6월

 

 

 

프랑스침공 당시 독일군의 체코제 38T 전차옆의 롬멜 - 1940년 6월

 

 

 

프랑스 침공시 롬멜과 전차병들 뒤의 체코제 38T 전차 - 1940년 6월

 

 

 

프랑스 마지노선 언덕에 도달한 롬멜과 독일 4호 전차 - 1940년 5월

 

 

 

수송선에서 트리폴리 항구의 부두에 하역되는 독일 2호전차를 바라보는 롬멜 - 1941년

 

 

 

북아프리카 전선 독일 3호 전차위의 롬멜

 

 

 

북아프리카 전선의 독일 3호 전차와 롬멜의 지휘차량 Sd.kfz250/3 장갑차 그라이페(Greif)- 1942년

 

 

 

북아프리카 이탈리아군의 세모벤테 75/18 자주포 너머 지휘차량에 앉아 있는 롬멜 - 1942년

 

 

 

 

파괴된 영국군의 미국제 M3 스튜어트 전차를 바라보는 롬멜

 

 

 

영국으로 부터 함락한  토브룩에서 3호 전차를 바라보는 전용차량의 롬멜과 그의 부관 바이엘라인 - 1942년 6월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노획한 영국군의 마틸다 전차를 쳐다보는 롬멜

 

 

 

 

대사양의 벽 해안수비대의 마더 자주포 포병대를 시찰하는 롬멜 원수 - 1944년 5월 30일

 

 

 

프랑스군의 H-35 호치키스 전차를 노획하여 독일 75mm포를 장착시켜 개조한

 

마더-1 자주포를 쳐다보는 롬멜 - 1944년 5월 30일

 

 

 

2차 세계대전 당시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주로 활약했던 롬멜의 사진은 많이 존재한다.

그것은 롬멜이 아프리카 군단의 사령관이었기에 Sd.kfz 250 장갑차에 타서 작전을 지휘 하는 사진들은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롬멜이 직접 독일군의 전차 옆에서 찍은 사진은 별로 많지 않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롬멜과 전차가 같이 찍힌 사진들은 위의 사진들이 전부이다.

 

 

 

 

 

1970년 중반기 한국 합동과학에서 출시되었던 야크트판터 모형 전차 - 독일롬멜습격포전차

 

 

 

 

 

 

 

1980년대 중반기 한국 아카데미사의 롬멜 습격포 전차

 

 

 

 

 

1980년대 후반기 한국 아카데미사의 독일육군구축전차 롬멜

 

 

 

 

일반적으로  에르빈 롬멜은 전세계인들에게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전차전 영웅이자

그 별명이 사막의 여우로 잘 알려져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폴란드침공과 프랑스 침공 당시

가장 빠른 공격력을 보여준 롬멜의 부대를 같은 추축국 이탈리아와 연계하여

영국군을 아프리카에서 몰아내기 위하여 리비아로 파견 보낸다.

그곳에서 초기에 영국군을 상대로 펼친 롬멜의 작전은 잘 먹혀들었다.

북아프리카 영국군의 요새 토브룩 점령과 이후 아람할파 전투 까지가 롬멜의 전성기였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독일의 이니그마 암호 해독에 따라 영국의 수뇌부는

독일 본토의 지령과 아프리카 군단이 서로 주고 받는 작전 상황을

훤히 알고 있는지라 롬멜은 북아프리카에서 종말을 맺는다.

 

그래서 롬멜과 독일의 전차들을 시대순으로 볼때

롬멜이 참전했던 전투와 관련이 있는 전차들은 주로 제 2차 세계대전 초기의 전차들이었다.

그것은 1호전차와 2호전차및 3호 전차와 4호전차 그리고 체코제 38T전차등이었다.

1942년 부터 동부전선 러시아에서 주로 활약한 대표적인 독일군의 주력전차였던

판터전차와 타이거-1전차는 롬멜이 2차 세계대전 초기에 작전에 투입시켜 사용할수 있었던 전차가 아니었다.

독일 5호전차 판터전차의 변형전차인 구축전차였던 야크트 판터 전차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연합군이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시부터

롬멜이 자살한 시점인 1944년 10월 사이 근 5개월 동안

독일 SS기갑사단 소속의 판터전차와 야크트판터 전차는 롬멜이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접한 나치 독일의 강력한 중전차및 중구축전차였던 셈이 된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25년의 시점이 지난 다음

세계인들이 일본인들을 경제적 동물(Economic Animal)이라고 지칭할 1970년대 초반기에

일본의 플라스틱 모델 회사인 T사는 독일의 판터 전차와 야크트 판터전차를

금형 틀로 주조로 찍어내어 조립식 키드로 제품을 출시하였다.

그것은 1:25 모델과 1:35 모델및 1:48 모델들이 있었다.

일본 T사에서 제작한 2차 세계대전 전쟁무기의 축소판 모형 제품들

바깥의 포장케이스에는 비교적 정밀하게 묘사된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시대적인 사실성을 유추하여 제작한 상상화였지만 T사 고도의 판매 상술이었다.

물론 그러한 유화를 그리는 전속 화가가 따로 있었다.

당시 국내에서는 일본 T사가 사용하던 금형을 수입하여 외부케이스는

일본의 화백이 그린 그린을 그대로 복사한채 카피형 플라스틱 모델을

제품화하여 시장에 출시했다.

이러한 상품들은 컴퓨터및 별다른 오락기구가 별로 많지 않았던 시절의

 시대 배경에 맞아 떨어져 청소년들의 취미 생활에 깊숙이 파고들어가서 폭발적인 인기 상품이 되었다.

그런데 그 품질은 일본 T사의 제품과 비교하면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창작은 모방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듯

그것은 한국 플라스틱 모형 모델의 시작이었다.

그러했던 제품중 한국 합동과학에서 제작했던 독일 야크트판터 전차모델은

회사 제품의 판매 촉진을 도모하기 위한 판매전략의 한 방편으로 그 이름을 롬멜 습격포전차라고 이름을 지어 팔았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롬멜과 야크트판터 전차가 아무런 관련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롬멜은 전선에서 야크트 판터전차를 지휘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한국의 합동과학은 판매 상술에 급급하여 자사에서 출시했던

야크트판터 모형전차 상품의 한글 제목을 롬멜 습격포전차로 지어 판매를 했다.

당시 한국 대부분의 어린이들및 청소년들은 야크트판터 전차가 실제로

롬멜이 탐승하여 전투를 했던 전차인줄 알았다.

어떤 어린이들은 아크트판터 전차를 롬멜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합동과학사에 의한 중대한 역사의 왜곡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롬멜과 상관이 거의 없는 야크트판터 구축전차를 자기 회사에서 만든 제품으로써

순진한 어린이들을 상대로 단기간에 많이 팔아먹기 위해 그 이름을 롬멜 습격포전차라고  

역사를 왜곡시킨 형태로 이름을 붙여 판매를 했던 사기성이 다분했던 판매 전략이었다.

무었보다도  품질이 매우 나빳던 합동과학의 제품들은 소비자들로 외면을 받았고

얼마가지 않아 결국 그 회사는 사라져버렸다. 

합동과학 뿐만 아니라 제일과학,중앙과학,대영과학,한진과학등

품질이 나쁜 제품을 만들어내던 회사들 또한 얼마가지 않아 없어져 버렸다.

한국의 플라스틱 모형 모델 회사들중 그나마 품질좋은 제품을 생산하던 회사는

삼성교재와 대흥과학및 아카데미 과학의 단 3곳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한국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플라스틱 모델 회사인 A사는 합동과학에서 야크트판터에 이름붙였던

롬멜 습격포전차를 그대로 본받아 제품에 독일 롬멜 원수의 이름을 붙여 

초창기에는 롬멜습격포전차및 독일육군 구축전차 롬멜이라고 이름지어 판매를 하였다.

현재 독일,프랑스,일본등 선진국의 플라스틱 모형 모댈 제작 회사에서

제작하여 판매하는 아크트판터 전차의 플라스틱 모형 제품에

롬멜 습격포전차로 이름을 지어 판매를 하는 회사는 없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이제는 이러한 역사 왜곡의 판매 상술은 다시는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은 별것 아닌것 같지만 명백한 역사의 왜곡인 것이다.

 

 

 

 

 

 

 

photo from :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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