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rman Tank

모스크바 입구 볼로콜람스크에 침략해 들어온 독일 3호 전차[WW2 German Army Panzer 3 Tank invasion Moscow near Volokolamsk]

슈트름게슈쯔 2013. 10. 21. 10:43

 

 

 

 

 

 

 

 

독일군의 모스크바 침공 작전명 타이푼 작전 당시 모스크바 근교 120km 떨어진 지점의

 

 볼로콜람스크 마을로  침입해 들어가는 독일  제 11 기갑연대의 3호 전차와 독일군 - 1941년 12월

 

 

 

 

 

모스크바 북서쪽 130km 근방의 볼로콜람스크까지 쇄도해 쳐들어온 독일군과 3호 전차 - 1941년 12월

 

 

 

모스크바에서  북서쪽으로  48km 떨어진 지점의 고라 솔네차야(Gora Solechaya)마을까지

 

공격해 들어온 독일군과 3호 전차 - 1941년 12월

 

 

 

 

모스크바 입구에 당도한 독일 제 11기갑연대의 3호전차 - 1941년 12월

 

 

 

 

 

 

 

제 2차 세계대전 초기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군이 소련의 가장 큰 도시이자

수도인 모스크바를 함락하는 것이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계획으로 모스크바로의 진격은 소련 침공 이후 1941년 9월 30일이 되어야 재개되었다.

이 작전은 태풍작전(Unternehmen Teifun)으로 명명되었다.

이 작전의 목표는 겨울까지 모스크바를 함락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러시아의 지형과 기후를 감안하지 않은 멍청했던 독일군의 오판이었다.

태풍 작전이 재개된 직후, 소련군의 수 개 야전군을 포위섬멸한 독일군은

모스크바 서쪽 120km 근방의 모자이스크 방위선에서 일단 정지되었다.

그것은 러시아의 가을 장마인 도로와 들판을 진흙창으로 만든 라스푸티챠 때문에

추축군의 차량과 인마는 전진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을 장마가 끝난후 찾아온 추위는 땅을 얼어붙게 만들어 독일군은 전진을 재개할 수 있었지만,

 독일군은 이제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혹독한 러시아의 강추위와

 강화된 소련군의 저항과 다시 한번 맞닥뜨려 험난한 길을 나서게 되었다.

1941년 12월 초에 독일군의 첨병부대는 모스크바의 심장부이자 소련의 정부청사인

크레믈린에서 30km 서쪽까지 진출하여 쌍안경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었으나,

추위와 약화된 전력때문에 더이상 전진을 할 수가 없었다.

1941년 12월 5일, 소련군은 시베리아에 주둔했던 전력완비의 사단들을

 모스크바 전선에 투입하여 독일군을 공격했다.

그리고 1942년 1월까지 소련군은 독일군을 100km까지 후퇴시켜 모스크바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였다.

이렇듯 모스크바 공방전은 독소전쟁에서 가장 중요했던 전투의 하나로 꼽힌다.

이는 소련이 처음으로 독일의 공세를 좌절시켜 수도를 지켜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 전투는 쌍방의 인명손실이 100만명을 넘는 참혹한 결과를 내어,

 제 2차 세계대전  최대 규모의 전투의 하나로 꼽힌다.

모스크바 공방전은 독일군이 1939년 이래 처음으로 독일군대가

대규모로 패퇴한 전투로 독일군 역사상 하나의 전환점이 된다.

독일군은 1941년 9월의 옐르냐 공세와 로스토프 공방전에서 패퇴하게 된다.

이 패퇴로 인하여 독일 남방집단군 총사령관 룬트슈테트는  해임되게 된다.

그러나 그 전투들은 모스크바 전투에 비하면 작은 규모의 전투였다.

영국 에딘버러 대학의 교수이자 저명한 전사가이자 역사학자인 존 에릭슨 교수는  

그의 저서 바르바로사(Barbarossa: The Axis and the Allies)에서

1941년 10월과 1942년 1월 사이에 소련군은 653,924 명의 인명손실을 냈다고 밝혔다.

전사가 글란츠는 그의 저서 [거인들의 대결]에서 방위 국면에서만 658,279 명의 손실을 냈고

1월 7일의 동계반격에서 370,955 명의 인명 손실이 더 났다고 서술했다.

1973-1978년에 출판된 소련대백과사전에서는 1942년 1월까지 400,000명의 독일군 손실을 기록했다.

또다른 추정으로는 1997년에 출판된 [모스크바 백과사전]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방위국면에서 145,000명의 독일군과 900,000명의 소련군 손실을,

그리고 1월 7일까지의 반격에서 103,000명의 독일군과 380,000명의 소련군 손실을 기록했다.

그러므로 1941년 9월 30일부터 1942년 1월 7일까지의 총손실은

독일군 248,000 명에서 400,000명 (GSE / Moscow encyclopedia estimate)

소련군 650,000명에서 1,280,000명으로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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