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 병기

북아프리카 전선의 이탈리아 공군 전투기[WW2 North Africa Front Italian Air Force Fighter]

슈트름게슈쯔 2014. 8. 24. 18:44







북아프리카 전선의 이탈리아 전투기 MC 200 Macchi C. 200 사에타 


사에타(Saetta)는 '천둥' 이라는 뜻이다.



이 전투기는 후기 모델 C202 전투기와 C 205 전투기 모델의 기본 베이스로 적용된 모델이다,

C 200전투기는 이탈리아 공군에서 차기 전투기 사업 추진시 Macchi 사에서 처음으로 제시한 개발 모델이었다. 

C 200전투기는 1937년에 개발되었으며 슈나이더 대회 우승팀에서 나온 

기체답게 경쟁기체 따위 바르는 성능을 보여주었으며 1938년 이탈리아의 주력전투기로 채택되었다.

당시 전투기 개발의 트렌드는 폐쇄식 조종석이었던 데 비해

 C. 200은 상부가 뻥 뚫린 개방식 조종석을 채택하고 있었다.

원래 최초 설계안에서는 폐쇄식 조종석을 상정하고 있었지만 

결국 기술적 문제가 발생하여 온전히 설치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게다가 당시 이탈리아 공군 조종사들이 폐쇄식 조종석에 대한 

반발이 심했던 까닭에 아예 포기해버렸다. 

그 결과 공군 조종사들의 불만은 잠재울 수 있었지만 고공에서는 산소부족과

 추위에 시달렸고 조종석 보호를 위해 천으로 덮어둬야 되는 등 여러 불편한 사항에 직면했다.  

게다가 항공기 설계에 비해 장착된 엔진이 심하게 떨렸다. 

그것은 당초 피아트사에서 개발하기로 되어 있던 1,000마력급 수냉식 엔진이 있었으나 

기술적 문제를 해결못하는 바람에 840마력 공냉식 엔진을 장착시캬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엔진출력이 후달리는 상황으로 이어졌고 이는 Breda-SAFAT 12.7mm 기관총 2정 설치할 수 밖에 없어

 심각한 화력부족 상황을 야기하고 말았다. 

그나마 일본의 Ki-43 하야부사 초기형처럼 7.7mm 2정으로 한정시키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할 수 있었으나 

12.7x99를 사용하는 미군의 M2계열 기관총과 달리 Breda-SAFAT는 12.7x81 SR탄환을 사용하며,

 위력을 늘리고자 그 구경에 작열탄까지 도입했음에도 그리 신통한 무기가 되지는 못했다.

 결국 이 화력부족으로 인해 영국 공군의 허리케인보다 더 질이 떨아지는 기체란 평을 듣게 만들었다. 

 여기에 이탈리아 공군 수뇌부들의 멍청한 오판까지 곁들어져  C. 200 전투기의 미래적 관점을 사장시키고 말았다.

일반적으로 차기 전투기 선정에 대한 경쟁이 있으면 탈락한 기종들은 묻어버리고 

채택된 기종을 전적으로 양산시켜야 됨에도  이탈리아의 멍청한 공군 수뇌부들은 

 탈락한 기종들을 보조전투기란 이름 하에 일정량의 양산을 허가해 주었다,

그것은 이탈리아  해피아트사의 로비에 넘어가 CR. 42 복엽기마저 

과도기적 전투기란 이름으로 채택하는 병크를 터뜨리면서 C. 200전투기의 미래를 

 결국 개전을 앞둔 시기 이탈리아 공군의 숫적 주력은 CR. 42였고 

경쟁에서 승리한 전투기가 다른 탈락한 전투기와 비슷한 생산량을 기록하는 기이한 현상을 빚고 말았다.

이러한 형태는 아이러니하게도 2차 세계대전 당시 똑같은 추축군의 독일과 마찬가지였다.

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 공군의 에이스였던 아돌프 갈란트는 독일 공군이 앞으로의 

주력 전투기는 프로펠러 전투기가 아닌 고속력을 발휘하는 

제트 전투기로 바꾸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것은 멍청한 독일 공군 원수 헤르만 괴링의 반대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못했고 패전에 임박한 전쟁 말기에 으르러서야 

비로소 체택되게 되었었다.

그것은 독일의 차기 전투기 선정과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또한 공군 수뇌부의 멍청한 오판으로 시대에 역행하는 

비합리적인 이탈리아인의 멍청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campoformido 비행장의 MC 202 전투기 - 1942년 





북아프리카 전선의 이탈리아  Macchi C. 202 폴고레 전투기


폴고레는(Folgore) 번개라는 뜻이다.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영국 공군과 대결을 벌였던 이탈리아 공군은  자국에 

고성능 전투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문제는 이탈리아 내부적으로 해결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그 때까지도 계속 제자리 걸음만하면서 기술적인 측면에서 정체되어 있던  1000마력급 신형엔진 개발이었다.  

결국 1940년 1월 이탈리아 공군 사령관이 베니토 무솔리니와 면담하는 자리에서

 신형엔진 개발을 포기하고 독일제 엔진 도입을 추진하자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물론 당시 자만심이 대단히 강했던 무솔리니는 그것을 받아 들일수가 없었다.

하지만 독일 공군은 승승장구하는데 반해 자신의 이탈리아 공군은 

계속 패베를 하자 마음이 급해진 무솔리니가 아돌프 히틀러에게 간곡히 요청하면서 

Bf109E에 탑재되던 DB601 엔진을 도입하게 된다.  

그에 따라 Macchi사도 이 신형 엔진을 장착하기 위해 새로운 기체 개발에 착수한다.

 하지만 당시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시점에서 느긋하게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고 개발할 시간이 없었다.

 이에 따라 이미 검증된 C. 200의 기본설계를 바탕으로 DB엔진을 장착할 수 있게 

변형하는 방식으로 1940년 8월에 신형기가 개발되었다.  

C 202 전투기는 단지 엔진만 바꾸고, 그에 따른 미세한 수정만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C. 200에 비해 최고속도 시속 100km 향상, 최대고도 2,600m 향상이라는 엄청난 스펙 향상을 보여주었다.

 당연히 이탈리아 공군은 "엔진을 바꿨더니 엄청난 고성능 비행기가 나왔다고 기뻐하며

 C. 202전투기를 그 즉시 주력전투기로 채택하였다.  

당시 북아프리카 전선의 영국군은 허리케인과 P-40 워호크를 주력 전투기로 운용하고 있었는데,

 기존 전투기로는 아무래도 전선 유지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공군의 Macchi C. 202는 이 전투기들을 능가할수 있는 스펙을 선보였으며,

 많은 수의 허리케인과 P-40 워호크를 격추하였다. 

 실제 비행성능은 영국 공군의 스피트파이어나 독일 공군의  Bf109F와 동급일 정도로 우수했다. 

그러나 성능 자체는 많이 향상됐지만 C. 200의 프레임에 DB 엔진을 장착하는 것에 

주력하다보니 화력부족 문제가 해결 안됐다.

 그 때문에 C. 202도 Breda-SAFAT 12.7mm 기관총 2정만 장착했다. 

그로 인하여 나중에 화력 강화랍시고 주익에 7.62mm 기관총 2정을 더 장착시켰다.

하지만 이미 적기들은 7.62mm 따위가 먹힐 만큼 허약하지 않았다.  

게다가 성능 문제는 둘째로 하더라도 이탈리아의 저급한 공업생산력이 문제였다. 

당시 독일의 DB엔진은 알파-로메오사에서 라이센스 생산을 하고 있었다.

그 곳의  생산량은 한 달에 50개 남짓일 정도였다. 

즉 비행기 동체를 많이 제작해 놓아 봤자 엔진 때문에 한 달에 50데 출고하면 용하다는 소리이다. 

그기에 다가 멍청한 이탈리아 공군 수뇌부의 입김으로 

피아트사와 레지아네사의 전투기도 양산량을 할당하는 자멸수를 두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50개 밖에 안되는 엔진을 서로 나누어 제작해야 했으므로

 각각 나누어 할당을 했을 경우 한 달에 20대도 출고 못하는 상황이 빚어졌다. 

그 결과 Macchi 사에는 엔진이 없어서 출고되지 못한 전투기가 쌓여 있는 지경이었다.

이것 또한  이탈리아 공군 수뇌부의 멍청한 오판에 의한 비합리적인 형태의 한 단면이었다. 





2차 세계대전 중반기 북아프리카 리비아 트리폴리에서 영국 공군의 폭격에 대파된 이탈리아 공군의 전투기들 - 1943년 








photo from : Histom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