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미국 해군 전함 아칸소[US Navy Battle Ship Arkansas]

슈트름게슈쯔 2014. 11. 22. 18:31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군 전함 아칸소의 12/50 인치 주포 발사 - 1917년 




미 해군 전함 아칸소의 5/51인치 부포 - 1919년 4월 23일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군 전함 아칸소의 보포스 40mm 대공포와 5인치 부포 





노르망디 오마하 비치에 함포사격을 가하는 미 해군 전함 아칸소 BB-33 - 1944년 6월 6일 







태평양 미크로네시아 비키니 환초의 수소폭탄 실험에 동원되었던 미 해군 전함 아칸소 - 1946년 7월 26일 







미국 남부의 주중 하나인  아칸소주 라고 하면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유명한 인물은 

바로 아킨소주의 제40대와 제42대 아칸소 주지사를 지냈으며

  1993년부터 2001년까지 대통령으로 재임한 미국의 42번째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희대의 바람으로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그런데 그렇게 유명했던 빌 클린턴보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아칸소주 이름를 붙였던 전함 아칸소가 있었다.

이 전함은 제 1차 세계대전과  제 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을했으며 

나중에는 태평양 비키니 환초에서 미국의 수소폭탄 실험용으로 

이용되어 쓸쓸히 태평양 바닷속으로 사라져버린 전함이었다.

미 해군 전함 아칸소는 와이오밍급 전함의 2번함으로 

함명은 미국의 26번째 주인 아칸소 주에서 기인한 이름이었다.      

아칸소는 1910년 1월 25일에 뉴저지 주의 뉴욕 조선소에서 기공해 1911년 1월 14일 진수되었고

 1912년 9월 17일에 완공되어 초대함장 로이 C 스미스 대령의

 지휘하에 필라델피아 해군공창에서 취역하였다. 

     1917년 4월 6일에 미국은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아칸소는 제 7함대 소속으로 버지니아 주의 요크 만을 순찰했고, 

1918년 7월에 아칸소는 스코틀랜드의 로스사이스로 [델러웨어]대신 파견되었으며, 

7월 14일에 출항한 아칸소는 도중에 독일의 U보트를 발견하곤 기뢰를 투하했지만 격침시키진 못했다.     

로스사이스에서 정박 중 1차대전 종결을 맞은 아칸소는 1918년 11월 21일에 열린 독일해군의 항복조인식에 참석했다.     

 12월 26일에 미국으로 돌아온 아칸소는 열렬한 환영을 받은 후 

1930년대 후반까지 여러 훈련과 사관후보생들의 교육함으로 이용되었다.   

   1939년에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아칸소는 대서양함대로 활동했는데 

1941년 북아프리카 상륙작전에 참가해 미군의 지원을 도왔다.      

이후 이탈리아 상륙전 및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시 

오마하 비치의 독일군 거점에 포격을 가한 아칸소는 

그로부터 7개월후인1945년 1월 20일에 태평양함대에 소속되어 

티니안 섬으로 향해 이오지마 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1945년 2월 16일에 이루어진 이오지마 전투 후 

3월 25일에 오키나와 상륙전에도 아칸소는 투입되었는데 

주로 해안요새의 함포사격등 상륙작전의 간접지원을 행했고,  

5월 14일 괌으로 귀환 후 종전을 맞이하자 아칸소는 진주만을 경유해 

10월 15일에 귀환병을 태운채 시애틀에 도착한다.

 1946년 아칸소는 함선의 노후화로 인해 폐기가 결정되어 

비키니 환초에서 거행될 예정이던 핵실험의 참가함정으로 뽑혀 표적함으로서

 1946년 7월 1일에 첫 핵실험을 당했는데 여기서 침몰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러나 7월 25일 다시 행해진 2차 핵실험에서 아칸소는 침몰하고 말았는데 

7월 29일에 다시 인양되어 해체처분되었다.

그리고 8월 15일엔 함선명부에서 영원히 지워졌다. 

전함 아칸소는 태평양전쟁의 종군으로 4개의 종군성장을 수여받았다.





photo from : www.history.navy.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