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sian Tank

동절기의 소련군 KV-1 중전차[Winter Season Soviet Red Army KV-1 Heavy Tank]

슈트름게슈쯔 2015. 1. 8. 13:29



독소전쟁 당시 KV-1 중전차 생산공장의 소련 노동자들 




독소전쟁 당시 소련 레닌그라드 전차 생산 공장 에서 완성된 KV-1 중전차 




생산 완성되어 공장에서 출고 되는 KV-1 소련군 중전차





클리멘트 보로실로프( Kliment Yefremovich Voroshilov : 1881~1969)


KV-1 전차의 KV 알파벳 문자는 소련 스탈린의 측근이자 당시 소련 공산당 서열 2위였던 

소련 국방 인민위원 보로실로프(Kliment Yefremovich Voroshilov)의 머리글자를 따서 갖다 붙였다.

당시 소련의 보로실로프는 직위는 높았으나 대단히 무능했던 소련군 최악의 인물로서

소련군의 신형 전차에 결코 그의 이름을 붙일만한 인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보로실로프는 KV--1 전차의 제작자 코친의 장인이었기 때문에 KV의 이니셜이 붙게 되었다.




동절기에 차체를 흰색 페인트로 위장 채색한 소련군 제 1기갑 여단 


제 4 기갑사단 KV-1 전차위의 Michael E. Katukov 소장과 전차병- 1941년 




동절기 전투에 투입되기 전  집단농장 콜호즈에서 위문 방문나온 여성들과 소련군 KV-1 전차 승무원들 - 1941년 모스크바 인근 




눈이 덮힌 설원의 전선에 출동하기 위해 KV-1 중전차에 탑승하는 소련군 전차 승무원들 - 1941년 




레닌그라드(상트 페테르부르크) 근처 스트리나에서 독일군 대전차포의 


공격을 받은 소련군 124 전차여단의 KV-1 중전차 - 1941년 10월 




설원의 전장에서 노획한 소련군의 KV-1 중전차를 살펴보는 독일군 병사들 




노획한 소련군의 KV-1 중전차를 아군의 무기로 활용하는 독일군 




KV-1 전차의 차체 장갑을 관통하지 못하고  박혀 버린 독일군 대전차포의 포탄 - 1942년 






독소전쟁 초기 동절기 설원의 전투에서 독일군의 공격을 받아 사망한 소련군 KV-1 전차의 승무원 







1939년 소련군은 KV-1 전차를 개발한지  얼마 뒤 핀란드를 침공하여 겨울전쟁(소-핀 전쟁)을 일으켰다. 

당시 소련군의 신형 중전차 KV-1은 동절기 침공한 핀란드 전선이 아주 좋은 실험 장소였고 

핀란드의 원수 이름을 붙인 만네르헤임 방어선을 돌파하는 작전에서 

소련군의 다포탑 전차 둘과 KV-1 전차를 두고 전투와 동시에 진지 돌파 실험을 하였다.

그러했던 결과 KV-1 전차는 빈약한 핀란드군의 진지를 능숙히 돌파하였으나

SMK 다포탑 전차는 핀란드군의 함정에 빠져 행동불능이 된 뒤 유기되었고 

두달이나 방치된 뒤 결국 절단기로 해체되어 용광로로 직행하고 만다. 

T-100 또한 그 꼴이 될 것을 우려해 전선에서 강판되고 만다. 

 그리하여 성능이 입증된 KV-1 전차는 1939년 12월 19일 소련군에 정식으로 채택되게 되엇다.

 KV-1전차는  20가지 이상의 파생형이 있었는데  총 4,247량이 생산되었다.  

독일군의 소련 침공작전인 바르바로사 작전이 개시되었을 때, 소련은 649대의 KV-1 전차를 구비하고 있었다.

 이 KV-1 중전차는 독일군의 가용한 거의 모든 대전차화기와 야포를 제압버렸기 때문에

 T-34/76 전차와 함께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였다.  

독일군 포병대의 10.5cm 경곡사포와 15cm 중곡사포로도 사실 관통보다는 

무한궤도를 벗겨내거나 지속적인 충격으로 전차를 해체시키는것에 가까웠다. 

독일군은 이 전차를 파괴하기 위해, 다수의 전차를 통해 집중적인 화망을 설정하는 이른바

여러대의 전차및 화기로 동시사격및 교차사격 전술을 구사하는 방법으로 전차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포탄의 소모가 심했다. 

이는 독일군에게 일명 KV쇼크라는 걸 불러왔으나, 경험 많은 장교들의 통제로 

간신히 사기의 심각한 저하를 막을 수 있었다. 

애초에 독일군은 프랑스를 침공하면서 마주친 샤르 B1 bis 전차나 

영국의 마틸다 등 88mm 대공포가 아니면 격파할 수 없는 전차와 마주쳐 왔기에 

쇼크라고 할만한 일은 아니였다. 

진정한 쇼크는 나치가 하등동물이라 세뇌해 왔던 러시아 슬라브인들이 

독일 전차들의 성능을 능가하는 강력한 전차를 만들었다는 사실이였을 것이다.

 그에따라 독일군의 입장에서 T-34와 KV 시리즈들은 그 대처방법이 매우 한정적인 짜증나는 존재였다.

그리고 전투에 이길지언정 이 전차들들을 잡는데 큰 손실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KV-1 전차는 독일군이 88mm 대공포에 철갑탄을 대량으로 지급하기 시작하고

 보통 군단에만 3-4문 편제하는 6톤짜리 10cm 장포신 평사포까지 동원해서 집중사격을 행한 것과, 

그리고 소련군의 미숙한 운용 등으로 손실되기 시작한다. 

소련군은 독소전쟁 초기에는 T-34/76  전차와 같이 부족한 전술역량과 

무전기의 부재 등으로 초기의 대응에 아쉬운 점이 많았다.

또한 여타 전차들과 같이 전투 파괴보다는 승무원들의 유기 같은 비전투 손실이 더 많았다.  

KV-1  전차는 강력한 장갑 등 장점이 있었지만 속도가 느린 것 등 그에 상응하는 단점도 많았다.

특히 변속기와 냉각장치가 극히 안습이어서 자주 고장나곤 했다.  

일설에 의하면 KV-1이 변속기를 조작하려면 반드시 차를 세워야 했고, 

변속기 레버가 극히 뻑뻑하여 망치로 때려서 조작해야 했다고 한다. 

덕분에 정상적인 전차에 있는 탄약수 대신 변속기 수리병이 탑승했으며

전투시 임무는 포탑 후방에 볼마운트로 설치된 기관총 발사를 담당했고

 포탑 안이 좁은데다가 배치상의 문제로 변속기 수리병을 탄약수 역할로 전환하고 

싶어도 못하는 괴이한 현상이 발생하였다.

그 밖에 운전병 입장에서 KV-1 중전차는 아주 몰기 힘든 전차였고 

전차장 입장에서도 해치를 다 닫을 경우 시야확보가 매우 힘들었다. 

덕분에 일선 지휘관들은 KV-1보다 T-34/76 전차를 더 선호했다고 한다.  

1942년에 접어드면서 T-34의 성능이 날로 향상되었고 

더 비싸면서 느려터지고 화력 역시 나을 것 없는 KV-1 전차는 점점 입지가 좁아지게 되며 

일부 장성들은 지금 당장 모든 중(重)전차의 생산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래서 차기 중전차는 T-34보다 중장갑에 122mm포의 중무장 

그리고 속도를 약간 개선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으며 

완성된 후 스탈린의 이름을 따서 IS-2를 만들었다

독소전쟁 당시 독일군에 의해 파괴된 KV-1 전차의 대부분은 

1941년과 1942년 사이에 파괴되었다.

그것은 1943년 부터는 KV-1 전차의 차체에 122mm D-25T 대전차포를 장착시킨 

IS-2 중전차를 생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소련 이오시프 스탈린 서기장의 이름 이니셜을 IS를 갖다붙인  IS-2 중전차는 

소련 국방 인민위원 보로실로프의 이름 이니셜을 갖다 붙인 KV-1 전차보다

월등히 강력한 중전차였다.

소련군 IS-2 중전차는 비로소 나치 독일군의 중전차 Tiger-1 전차및 

Tiger-2 전차에 맞대응할수 있는 중전차였다.

사실상 소련군의 IS-2 중전차는 미국의 M26 퍼싱 전차 함께

 연합군 측의 유일하게 제대로 제작되었된 중전차라고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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