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현장

테헤란 회담 당시 소련 육군원수 보로실로프의 스탈린그라드 검[Tehran Conference soviet Marshal Kliment Voroshilov shows the Stalingrad sword]

슈트름게슈쯔 2015. 4. 6. 18:44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만난 미국,영국,소련의 3 거두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의 69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과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서기장 - 1943년 11월 30일 




 테헤란 회담 당시 이란의 소련 공사관 회의실에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군을 격파시킨데 대한 기고만장한 형태로 

영국 윈스턴 처칠 수상을 쳐다보며 스탈린그라드 검이라고 지칭한 

무기를 미국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보여주는 KV-1 전차의 이니셜 이름의 소련 장성 

클리멘트 보로실로프(Kliment Voroshilov)- 1943년 11월 28일 

 





제 2차 세계대전 중후반기 1943년 12월 이란의 수도에서 열린 테헤란 회담(Tehran Conference)은 

루스벨트·처칠·스탈린의 3거두가 만났던 회담을 말한다. 

이 회담으로 연합국측의 전쟁 협력은 한층 더 강화되었다. 

연합국이 승리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자 전쟁 처리와 전후 문제가 

연합국측의 과제로 되어 9회에 이르는 연합국 회의가 열렸다. 

1943년 10월에 미국·영국·소련의 회의가 모스크바에서 열렸고,

 이어서 같\은해 12월에 3거두의 테헤란 회담으로 진전되었다. 

그 결과 3국의 협력과 전쟁수행 선언, 동부전선에서 소련의 반격에 호응한 제2전선의 결성 등이 약속되었다. 

이 회담에서 처칠은 "영국은 폴란드가 독립 국가로서 복원되는데 지대한 관심이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영국의 실무진은 이 문제가 연합국간에 마찰의 소지가 될 것을 우려하여 폴란드 문제를 꺼내길 우려하였다.

테헤란 회담은 1943년  11월 28일 부터 12월 1일까지 계속되었다.

테헤라뉴 회담의  주요 토의사항은 유럽에 제2전선을 형성하는 것으로 

스탈린은 동부전선에서 공세를 취함으로써 앞으로 있게 될 

독일 점령하의 프랑스에 대한 침공과 보조를 맞추기로 약속했다. 

군사적 문제가 토의의 주된 과제로 오르기는 했으나 연합국 수뇌들간에 벌어진 

그 이전의 어떤 회담에서보다도 정치 분야에 대한 논의가 더 많이 이루어졌다. 

스탈린은 1939년의 독·소 불가침조약과 1940년의 러시아-핀란드 조약에 의해 

소련이 획득한 지역을 전후에도 계속 보유해야 한다는 희망을 거듭 피력했으며, 

또한 발트 해 연안의 동프로이센도 소련의 영토에 추가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독일에 대해서는 그 해결을 놓고 오랫동안 논의가 벌어졌으나 

3명의 연합국 수뇌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분명히 드러내지 않았으며, 

전후의 국제조직 문제에 대해서도 정확한 구상을 갖고 있지 않았다.

 폴란드에 대해서는 서방 연합국과 소련의 생각이 첨예하게 대립했으며, 

스탈린은 런던에 있는 폴란드 망명정부에 대해 탐탁하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점을 계속 밝혔다. 

또한 연합군이 부분 점령하고 있는 이란에 대해서는 전후 분할점령을 하지 않고

 하나로 통합하여 독립시키는 동시에 경제원조를 제공한다는 데 합의하여 

1943년 12월 1일 공식 선언문을 발표했다.





photo from : Histom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