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 극장

마타 하리 1931 - 그레타 가르보[Mata Hari 1931 - Greta Garbo]

슈트름게슈쯔 2015. 5. 23. 12:54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 : 1905 ~1990)



그레타 가르보는 스웨덴 출신의 여배우이며 세계 영화계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여배우들 중의 한명이다. 

그녀는 비극과 인생이 끝난 이해할 수 없는 여성의 묘사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현대영화및 그 이전의 무성 영화 두가지 영화에서 똑같이 성공을 거둔 

몇 안되는 스타들 중의 한명이기도 하다.  

그녀의 본명은 그레타 로비사 구스타프손(스웨덴어: Greta Lovisa Gustafsson)이며 스톡홀름에서 출생하였다. 

1924년 스웨덴 영화 [예스타 베를링의 이야기]에 데뷔하였다가, 1925년 미국으로 건너간다.

 거기서 [살과 악마-1926], [사랑-1927)], [사건의 여성-1928] 같은 무성 영화들에 출연하였다.  

그녀의 최고 음성 영화들은 [로맨스-1930], [애나 크리스티]와 [마타 하리-1931], [그랜드 호텔-1932], 

[크리스티나 여왕-1933], [안나 카레리나-1935]와 [카밀-1937)]등이 있다. 

그녀의 첫 코미디 영화는 [니노치카-1939]였다. 

가르보는  그녀의 인기가 최고조에 달했을때 자신의 명예와 관계 없이

 배우 생활을 그만 두었으며, 조용한 은퇴 생활을 보냈다. 

1941년 "[마나님은 얼굴이 둘]이라는 영화를 최후로 은퇴 후,

 전 세계에서 빗발같이 쏟아지는 출연교섭이 들어왔지만 그녀는 그것을 완강히 거절하며 출연을 하지 않았다. 

한때 그녀를 미국 헐리우드로  끌어들인 모리스 스테라 감독과  미남 배우 죤 길바트와

 명지휘자 스토코프스키 등과도 로맨스에 대한 소문이 퍼졌기도 하였으나 

끝내 독신주의의 신비로운 베일 속에 파묻혀 그 누구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다. 

스테라 감독이나 길바트를 자살시킨 원인도 이러한 가르보의 냉엄한 매력이었다는 소문도 많다. 

가르보는 그가 헐리우드에서 번 막대한 수입은 셋트와 함께 

모국 스웨덴에 보내어 유리한 투자를 하며 살았다. 

나이가 53세였던 1960년에도 그때까지 아직 스크린에서 활약할만한 육체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레타 가르보는 1990년 4월 15일 미국 뉴욕에서 사망하였다.



















마타 하리 - 1931년 



미국의 정치가들이나 헐리웃 영화 배우들중 유명인들의 이름은

 그들의 성과  이름의 앞파벳을 각각 한자씩 축약시켜 붙인 유명한 이니셜로 잘 알려져 있다,

그중 가장 유명했던 이니셜은 존 피처제럴드 케네디인 JFK 와 

그와 염문을 뿌려던 헐리웃의 금발 여배우였던 마릴린 먼로의 MM이다.

그런데 헐리웃의 마릴린 먼로 MM 시대 이전에 

세계의 금발 여배우로 이름을 떨친 GG가 있었다.

GG의 주인공인 금발의 미녀 배우는 바로 스웨덴의 그레타 가르보이다.

전세계의 영화팬들에게 그레타 가르보는 마타 하리 영화로 잘 알려져 있다.

그만큼 마타 하리는 1차 새계대전 당시 실제 스파이 였던 마타하리보다 

영화 마타 하리의 주연 미녀 배우였던 그레타 가르보가 마타 하리로서

세계인들에게 더 유명세를 떨쳤다.

1931년 출시 영화 마타하리 (1931)는 미국의 영화검열법인 헤이즈코드가 

발효되기 전인 1931년에 제작된 영화이다.

마타하리는 1931년  전미 박스오피스 3위에 오른 흥행작이었다.

 이 영화는 제1차 세계대전 동안에 스파이 혐의로 처형된 이국적인 

댄서 마타 하리의 인생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아이러니하게 이 영화를 계기로 마타하리라는 인물이 잘 알려지게 되었다 .   

마타하리는 상업적으로  $2,227,000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대히트하였다. 

마타하리는 그해 MGM의 영화중 최고의 흥행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그레타 가르보 주연의 영화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었다.








photo from : greatwarfilms.word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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