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6.25 전쟁 Korean War

6.25 동란 한국전쟁 당시의 풀빵- Korean War during residents meal Korean gule bread

슈트름게슈쯔 2015. 11. 28. 17:09



6.25 동란 한국전쟁 전 남한 국민들의 80%는 대부분 농민이었다.

전쟁이 터지자  난리통에 모든것을 잃고 고향을 떠나 수중에 가진것도 없이 

남쪽으로 피난을 내려온 피난민들은 살아가기가 막막했다.

농사를 천직으로 여기던 농부들은 가족들의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풀빵 장수가 되었다.


 



 

한국전쟁 6.25 동란 당시 부산 구덕산 아래 중구 부평동 시장의 풀빵 장수 -1952년 




 

한국전쟁 6.25 동란 당시 대구의 풀빵 장수 부부와 땔감 더미앞에서 아기를 업고 있는 어린이 - 1952년 


 

한국인들에게 6.25 동란 전쟁 당시와 전쟁 후의 팍팍했던 세상살이의 애환을 담고 있는 먹거리였던 풀빵 

 

 


일반적으로 밀이나 호밀을  빻아 만든 가루를 이용하여 만드는 빵은 

쌀을 삶아서 만드는 밥과 더불어 세계인의 2대 식량이다.

그러한 빵은 인간들이 불을 사용할줄 알던 때부터 만들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이제까지 빵은 세계각지의 기후와 환경및 민족에 따라

  여러가지 종류로 만들어져 인간이 생존 하며 살아가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식량으로 이용되어 왔다.

그러한 빵은 지구 인류의 문명과 역사를 같이해 온 내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구촌 인간들의 여러가지 형태의 삶속에서는 

여러가지 사연의 빵이 존재한다.

역사적으로 볼때 비록 소설속의 이야기이지만 

그 시대를 반영하여 지었던 바 

사연이 많은 빵중에서 가장 유명했던 빵은 바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대문호 빅톨 위고의 레미제라블속에서 

굶주린 조카들을 먹이기 위해 빵 1개를 훔치고 

감옥으로 갈수밖에 없었던 장발장의 빵일것이다,

그리고 독일의 대문호였던 볼프강  괴테는 그의 시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지 않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렇게 눈물젖은 빵은 한국인들의 가슴속에도 남아 있다,.

그것은 바로 6.25 동란 당시와 전쟁 후 너무나도 

배가 고팠던 한국 국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던 풀빵이었다.

이 풀빵은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1980년대 초반기 이후 

한국 사회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이 풀빵은 어느때 부터 재래시장 등지에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풀빵이 옛날 향수를 자극하는 먹거리가 아닌 

일반적인 군것질 거리로 등장한것이었다.

풀빵은 이제 국민들이 좋아하는 붕어빵이나 국화빵과 마찬가지로 

겨울철 노점에서 쉽게 접할수 있는 따뜻한 먹거리의 한가지로 자리잡았다.






photo from : joi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