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일본군의 사체를 내려다 보는 메릴의 습격부대 US infantrymen of Merrill's Marauders look over the dead bodies of five Japanese fighters

슈트름게슈쯔 2016. 3. 6. 20:52



프랭크 메릴 준장 (Frank Merrill)가운데-1944년 버마




태평양전쟁 말기  버마 후콩( Hukawng) 골짜기에서 탄약 더미가 저장된 

기관총좌를 사수하다 메릴의 습격부대에 의해 사살된 일본군 기총수 - 1944년




태평양전쟁 말기 버마 전선 왈라우붐(Walawbum)에서 일본군 99t식 소총 장착용 대검을 들고

섬멸시킨 일본군의 사체를 내려다 보는 메릴의 습격부대 대원들 - 1944년




2차 세계대전중 제일 치열했던 격전지중 한곳은 지구촌의 오지이자

무덥고 습한 열대 우림기후의 끝없는 밀림으로 덮여있던

인도차이나 반도의 동쪽 버마(미얀마) 북부전선에서 펼쳐진

 미군과 일본군의 사투였다.

태평양전쟁 초기 야마시타 병단의 일본군은 영국군을 상대로 말레이 정글 전투에서

 대단히 신속한 공격으로 싱가포르를 공략하는 형태를 보여 주었다.
그러했던 일본군의 작전력 바탕에는 정글전의 전문가 쓰지 중령이 있었는데

 그와 반대로  미군에도 정글전의 전문가 메릴 준장이 있었다.
그의 레인져부대는 2차 세계대전중 버마(미얀마)의 오지이자 정글에서 소수의 병력으로

무려 10배가 넘는 일본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펼쳐 적을 섬멸한바  있었다.
그 부대의 이름은 바로 프랭크 메릴 준장의 이름이 붙여진 

 제 5307 혼성부대였던 메릴의 습격부대(Merrill,s Marudurs)였다.
4개 대대 2900여명의 병력을 가진 메릴의 습격부대는

 일본군이 점령하여 4계절 동안 이용할수 있는 일본 공군기의 이착륙 거점이 된

비쟁장인 미트키나 공략을 위해 1000마일의 대장정을 나섰다.
그러나 그들이 나섰던 그길은 평지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인

위험스럽고도 지독히 습하고 무더운 밀생한 정글이었다.
그 속에는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떼와 해충및 손가락 굵기의

코끼리 거머리들이 득실거리며 피를 빨려고 인간에게 달려드는 깊고 깊은 정글이었다.
메릴의 습격부대 5307부대원들은 그러했던 악조건의 지형에서도

병력과 화력면에서 10대1의 규모가 넘는 일본군과 30차례가 넘는

 교전을 치뤘던 끝에 결국 성공적으로 이를 점령했다.
메릴의 습격부대는 아주 단순했던 행동 수칙을 갖고 있었다.
즉 바람같이 나타나 적을 타격하고 번개처럼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미군의 일본군에 대한 비교적 소수의 정예병사들이

적진 후방에서 펼치던 게릴라전은 매우 효과적이었던

전술임이 메릴습격부대의 정글전으로서 입증되었다.
메릴의 습격부대는 버마(미얀마)북쪽의 일본군 점령지에서 일본군 보급선과

 통신망을 교란시키는 임무를 지속하면서 일본군을 극심하게 괴롭혔다.
일본군은 메릴의 습격부대 규모를 1만5천명 정도로 추정 했었지만

실은 그 규모의 5분의1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부대에는 각 태평양지역에서 정글전을 경험한 역전의 용사가 많았다.
웨스트포인트에서 메릴과 동기이며 버마(미얀마)작전을 통해

이 부대의 부대장이었던 찰스 N 헌터 중령은 메릴의 습격부대를 극심하고

고달픈 고역의 지옥같은 전투를 벌이며 화제에 오르내리기도 했지만  

가장 영웅적이면서도 보상받지 못한 연대 규모의 부대라고 말했다.
미 육군성은 그들에게 처음부터 극히 위험하고 자기 희생을 강요하는 작전이라고 인정했지만

그들은 배치되어 있던 타지역에서 스스로 자원하여 나섰던 것이다.
4개월에 걸친 정글전투에 메릴의 습격부대는 2900여명의

전투인원이 마지막에는 고작 200여명 밖에 남지 않았다.
또한 이 작전을 같이 훈련하고 수행한 영국군의 친디트부대 또한

 1300여명의 전투인원이 작전 임무가 끝났을 때의 생존자는

고작 1개 소대 병력의 30명 정도만 남았을 뿐이었다.  






photo from : Histom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