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속주였던 북아프리카 키레나이카(Cyrenaica)
제 2차 세계대전 초기 북아프리카 리비아 키레나이카
북아프리카의 키레나이카는 기원전 7세기에 그리스인이
해안지방에 많이 건설했던 식민 도시中의 한곳이었다.
고대 키레나이카는 당시 내륙을 포함한 최대 식민지의 하나였다.
그 후 기원전 5세기 말에는 키레네가 일어났으며, BC 1세기에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로마의 카이사르 사후 로마 제국의 패권을 잡기 위해
서로마 지역을 통치하던 옥타비아누스 군대와
동로마 지역을 통치하던 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의 양측 군대 사이에서 벌어졌던
로마 내전의 말미는 악티움 해전으로 격돌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악티움 해전 당시 옥타비아누스의 부관 아그리파가 계획한 포위 전술에
걸려버린 안토니우스 선단의 클레오파트라가 탄 사령선이
패색을 알아차리고 먼저 이집트로 달아나자
그의 연인 안토니우스는 사생결단으로 옥타비아누스의 군대와 마지막 결전을 벌였으면
이길수도 있었을 상황에서 클레오파트라의 뒤를 따라 도망쳐 버린다.
하지만 안토니우스는가 도망친 뒤 패잔병 6000여명과 함께 상륙한 장소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가 아니라 바로 북아프리카의 키레나이카였다.
나중에 키레나이카 지역은
비잔티움 제국과, 아랍의 지배를 거쳐 1578년에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초에는 이탈리아-투르크 전쟁으로 이탈리아에 할양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키레나이카 토후국이 되었으나, 1951년에 리비아 연합 왕국에 참가하였다.
키레나이카는 해안에 점재하는 작은 평야에서 밀·과수가 재배되며
그 밖에는 목축(양·염소·소·낙타)이 주요산업이엇다.
그러나 1960년부터 사막지대에 유전이 개발되었으며,
해안까지 송유관이 부설되고 관련산업도 점차 일어나 발전했다.
1970년대 초에는 리비아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주는 폐지되었으나
키레나이카라는 지역명은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로마 시대부터 내려온 지중해 연안의 도시였던
리비아 키레나이카의 독일 아프리카 군단 제 21 기갑사단
하노마그 Sdkfz 251 Ausf.B형 장갑차
키레나이카 요새앞을 지나는 아프리카 군단의 하노마그 Sd.kfz 251 Ausf.B형 장갑차 - 1941년 4월 8일
키레나이카 요새앞의 매치리 마을을 지나는 아프리카 군단의 하노마그 Sd.kfz 251 Ausf.B형 장갑차 - 1941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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