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6.25 전쟁 Korean War

한국 6.25 전쟁 당시 미군 수뇌부의 방한복 - Korean War US top military commanders winter snowsuit

슈트름게슈쯔 2018. 1. 2. 02:14



 6.25 전쟁 당시 한국의 혹독한 겨울 추위로 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방한복을 착용한 

매튜 리지웨이 미 8군 사령관과 더글러스 맥아더 UN군 사령관과 

얼 패트리지 미 제 5 공군 사령관 - 1951년 3월 7일 





6.25 전쟁 당시 한국전쟁 종식을 위 선거운동을 하던중  대통령 선거 당선 직후에 방한하여 

중부 전선 방문시 한국의 혹독한 겨울 추위로 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방한복 착용후 

미군 장병들과 식사를 같이하는  제 2차 세계대전 말기 연합군 최고 사령관이었자 

1951년 초대 나토군 사령관이었던 차기 미국 34번째 대통령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 1952년 






미국의 군인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연합군 최고사령관으로 재직하였다. 

그는 당시 미군에 대한 불신을 숨기지 않았던 영국군과 그런 영국군을 고깝게 여긴

미군 지휘관들 사이에서 중재자로 활약하였고,

 그에 대한 평가도 전투 지휘관보다는 대기업의 총수 같다는 평이 많았다. 

또한 그는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시키는 것을 반대한 사람 중의 한명이었다.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는 유럽 전선에 파견된 후 

최초로 지휘한 작전은 미군과 영국군으로 구성된 

연합부대로 북아프리카에 상륙한 횃불 작전이었으며, 

이후 유럽 연합군의 총사령관으로서 노르망디 상륙작전(1944년 6월 6일)을 

지휘하여 성공시켜 승리를 거두었다. 

전쟁 중에 그는 '아이크'란 별칭으로 줄곧 불렸다.  

1948년 퇴역후 그는 컬럼비아 대학교 총장을 거쳤다. 

그리고 2년후  1950년 극동 아시아의 한반도에서 공산주의 세력의 수장 소련 스탈린으로 부터 

군수물자 지원을 받아 전쟁 준비를 해왔던 북한 김일성의 적화 야욕에 따른 공산세력의 침략에 의해  

한국 6.25 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현역으로 소환이 되어 한국 6.25 전쟁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미국 극동군 원수 더글러스 맥아더가 트루먼 대통령과 노골적으로 

갈등하게 되면서 트루먼 대통령은 더글러스 맥아더를 

견제할 목적으로 그를 직간접적으로 후원하였다.  

그 뒤 맥아더가 만주 폭격을 시도하자 트루먼은 맥아더를 원수직에서 해임하고, 

아이젠하워에게 한국 주둔 미군을 관리하도록 한다.   

아이젠하워와 닉슨의 선거 포스터 1952년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출마하여 당선됨으로써

 오랜 민주당 대통령 시대를 20년만에 마감하였다.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1953년 그는 육군 원수직에서 스스로 사퇴하였다. 

1953년 그는 한국 전쟁 휴전 조약을 이끌어 냈다. 

이는 그의 선거 공약으로 선거 운동 당시 한국 전쟁의 장기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하여

 '제가 대한민국에 가겠습니다' 라는 말을 남겼으며, 

실제로 당선 직후 대한민국을 방문하였다. 

아이젠하워는 1960년 6월 8일 신임 주미 한국 대사 정일권의 신임장 제정에 즈음하여, 

4·19 혁명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와 동 국민은 한국을 계속 지지할 것이며

 한국의 독립을 보전하겠다는 엄숙한 언약을 고수할 것이다"라고 확언하였다. 

아이젠하워는 미국은 "모든 국가와 인민들을 위한 자유와 정의에 입각한 

영구적인 평화를 수립하고자 공동 노력함에 있어

 우의에 찬 협조를 계속할 것이다"라고 부언하였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자기는 "공산군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황폐화된 

대한민국이 현저히 부흥되어 가고 있음"을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하여 

한국을 앞으로 방문하게 되는데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하였다.

실제로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60년에 다시 한국을 방문하였다. 

1960년의 방문은 미국의 대통령 신분으로는 최초의 방문이었다. 

그는 한국 전쟁의 종결·자유 경제의 복귀·건전한 재정 등의 정책을 시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