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 병기

하이린살미 숲속의 핀란드군 20mm L-39 라흐티 대전차총조 Finnish Army Lahti L-39 anti-tank rifle team in the forested hill near Hyrynsalmi

슈트름게슈쯔 2018. 2. 4. 00:43



제 2차 소핀전쟁 계속전쟁 당시 핀란드군 20mm 라흐티 대전차총조  - 1941년 9월 5일 


소핀전쟁 당시 핀란드군의 20mm L-39 라흐티 대전차총은 핀란드의  아이모 요하네스 라흐티가 

1939년 5월 5일 설계 완성하여 1940년 4월 10일 생산했던 핀란드의 반자동 대전차총이었다.

L-39 라흐티 대전차총은 큰 탄창과 대전차총탄으로 급탄을 했던 이유로 

상당히 반동이 심했으며, 치수 자체도 휴대성이 어렵게 제작되었다.

그래서 전선의 병사들에게 'Norsupyssy'('코끼리총' 이라는 핀란드어) 라는 별칭을 얻었다. 

실제로 한 발의 20mm 총탄을 발사하는데 총열 안의 최고 압력 폭압이 3000파스칼이나 되었다.

또한 완충기가 겨우 총수의 어깨와 총의 개머리판 사이에 패딩 하나 있는 식이었다. 

 그에따라 총수에게 사갹시 반동 충격이 심각했다.

L-39 라흐티 대전차 총탄 한 발 발사시에 총수의 상체가 

발사 반동에 의해 15cm 정도나 뒤로 밀려나갔다. 

그러한 단점을 지니고 있어도 L-39 라흐티 대전차총은 

핀란드군 병사들에게 신뢰성과 명망이 높았던 무기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대전차총 종류중 가장 강력했던 20mm 롱 졸루턴 탄환을 사용하는 49.5 kg 중량의 무거운 

라흐티 대전차총을 하이린 살미 숲속의 언덕 위로 끌어 올리는 핀란드군 대전차총조 - 1943년 6월 20일 




제 2차 소핀전쟁 계속전쟁 당시  하이린살미 근처 숲속에서 소련군 전차의 하부를 겨냥하기 위해 

언덕 경사지에 포진시켜 대기하는  핀란드군 20mm 라흐티 대전차총조  - 1943년 6월 20일 


겨울 전쟁 당시 침략자 소련군에 맞선 핀란드 육군은 대전차총류 화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다. 

 그래서 전쟁 발발 당시만 해도 겨우 두 정의 시제형만이 생산된 20mm L-39 대전차총과

 소정의 자체 제작형 13mm 대전차총을 소유하고 있었다. 

핀란드군이 마침내 20mm 대전차총을 택하여 양산하고 있을 당시에는 

이미 겨울전쟁이 종결되고 있던 시기였고 따라서 겨울전쟁 당시 L-39는 전혀 배치되지 않았다. 

 제 2차 소련-핀란드 전쟁 동안에는 약 1,800정이 L-39가 사용되었다. 

L-39는 처음엔 구식 소련군 장갑차에게는 유용한 병기였으나 

1941년부터 T-34 나 KV-1 같은 새로운 소련 전차들이 등장하면서

 장갑을 관통시키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일반 L-39보다 더 사정반경이 늘어나는 식으로 야전에서의 급조가 이루어져 사용되었고,

 몇몇 일선부대에서는 대공포 형식의 L-39/44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대공병기로 임시 급조되어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L-39는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여전히 전장에서 벙커, 장사정 목표물, 

측면이 약한 경전차들이나 항공기에 대항하는데 효과적이었다.

 특히 1943년부터 총기의 우수한 정확성으로 숙련된 저격수들을 이용하거나

 대공용으로 개조한 L-39를 이용해 조종사나 저고도의 IL-2 슈트로모비크의

 기관총수를 사살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이러한 사례는 희귀했다. 

이런 성능으로 대공용으로도 제식화하여 사용하기 손색 없다는 

핀란드군의 평가로 1944년 여름에 완자동 방식의 라흐티 L-39/44 대공포형이 300정 생산되었다.

 이와 함께 L-39용으로, 나무 그루터기에 장착할 수 있는 특별한

 대공용 마운트와 200-1400m 의 밝기를 가진 서치라이트도 동시에 생산되었다. 

 그러나 L-39는 너무 중량이 크고 전장에서 기동하기 어려웠는데,

 탄창만 해도 수오미 기관단총보다 2kg 더 무거운 6.2kg 정도나 되었다.

 전체 병기의 중량은 어림잡아 50kg 정도라 순록이나 말로 잡아끌고 당기거나,

 전장에서는 두 명의 병사로 구성된 팀이 L-39를 운반했다.

 그러므로 고장난 L-39는 그냥 전장에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총 1,906정의 L-39가 생산되었고, 

이 중 총 약 1,800정이 전장에서 사용되었다. 

L-39가 가장 대규모로 운용된 시기는 1944년 소련군의 공격 전이었는데

 이때 핀란드군은 1,789정의 L-39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1944년 여름부터는 한 명의 병사가 긴 거리를 끌고 후퇴하기에는 

병기가 너무 무거웠기 때문에 상당한 수의 L-39가 버려졌다.  

전쟁 후 핀란드군은 여전히 약 1,650정의 L-39를 가지고 있었으며, 

1951년까지 1,333정이 남아 있었다. 베트남전 동안 헬리콥터가 전장의 요소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인식한 핀란드군에서는 예비역이기는 하지만 

대헬리콥터 화기와 대공용 화기로 약간의 L-39가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런 용도로 L-39는 1988년까지 사용되고 그 이후로는 폐기되어 

현재 L-39는 컬렉터들의 수집품, 박물관행으로 남게 되었다. 

핀란드군이 L-39를 매각할 당시 미국의 컬렉터들이 가장 많이 L-39를 구매했는데, 

핀란드 국방부를 통해 약 1,000정 가량에 20mm 총탄만 20만발이 수출되었다. 

당시 미국과의 거래가격은 총기 자체는 99달러 에 완벽한 목재재질 운송 케이스, 도구와 

수리 키트, 총열 커버, 4개의 상자의 8개 탄창, 20mm 총탄 100발을 

모두 합쳐 84.99달러였다고 한다. 

오늘날 L-39는 희귀총기로 대접받고 있으며

 이따금씩 매물되는 물건들의 평균 가격이 10,000달러 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