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6.25 전쟁 Korean War

한국 6.25 전쟁 당시 격전지 여항산의 다른말은 갓데미산 - Korean War ferocious battlefield Yeohangsan's another Nickname God deme Mountain

슈트름게슈쯔 2018. 3. 19. 23:29



한국 6.25 전쟁 당시 미군 M4A3E8 셔먼 전차의  북한 공산군 거점에 대한 포탄 발사 - 1950년 8월 12일 




한국 6.25 전쟁 당시 마산 진동면의 민가 초가집 옆에 포진한 미군 M4A3E8 전차 - 1950년 8월 16일 




한국 6.25 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 전투였던 여항산 전투에서 부상 당한 

병사들을 들것에 옮겨 산 아래로 데리고 내려와서 치료하는 

미 제 25 보병사단 제 5연대 전투팀의 위생병들과 

한국인 전쟁물자 수송 노무자들   - 1950년 8월 27일 




한국 6.25 전쟁 당시 치열했던 격전지였던 경남 함안 여항산의 정상 암봉 - 2010년 10월 28일



한국 6.25 전쟁 당시 북한 공산군과의 치열했던 전투로 

수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했던 경남 함안의 여항산 격전지를  

미군들은 갓뎀 마운틴이라 불렀다.

 미군에 의해 그곳을 지칭했던 갓뎀이라는  단어는 한국군 병사들과 주민들에게는 

갓데미로 발음되어 갓데미 산이라는 별명으로 일컬어진다.

그것은 후일 베트남전 당시 북베트남 군대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은 미군 부대가 

아군의 방어 진지를 필사적으로 사수하기 위해  처절하게 분전했던 고지에  

피아간의 사체가  처절하고도 즐비하게 널려 있었던 것을 비유하여 지칭했던 

햄버거 힐과 같은 의미가 내포된 단어였다.

 한국 6.25 전쟁 당시 경남 함안 여항산 일대는 

최대의 격전지로 꼽을 만큼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었다.

 1950년 8월 들어 북한 인민군 6사단은 주공격대상인 마산을 에워싸고 파상공세를 폈다. 

이에 맞서 8월 14일 미 제25사단은 가야 서북쪽에 있는 십이당산에서부터 

서쪽으로 여항산·필봉·서북산·야우산·옥녀봉을 잇는

 능선에다 진지를 구축하고 반격에 나섰다. 

이 고지들은 마산을 사수하는 최후의 방어선이기도 했다. 

 25사단 24연대는 검안리 남쪽에서 서북산 북쪽의 험준한 산악지대를 점유했다.

북한 인민군 6사단은 두 차례에 걸친 전투끝에 

수많은 전사자와 군수품 손실로 치명타를 입고 말았다. 

그로 인해 강제로 징집한 2000명에 이르는 의용군을 긴급히 보충했다. 

그러나 장비가 태부족이었던지라 전사자가 발생하면 

그 총을 회수해 전선에 투입하는데 급급했다. 

이 때 어느 의용군의 일기에서는 ‘UN군의 포격과 공중공격은 

몸서리치도록 무섭고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견디어야할 이 고난 … 

몇 고개를 더 넘어야 마산인가·’라고 생사에 갈림길인 

극한상황에 놓인 처지를 적어 놓았다.  

미군 또한 험준한 서북산과 여항산 탈취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여항산 정상은 바로 전투 관측과 전방을 이용하기에 적합한 고지였다. 

특히 8월 15일 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은 명령 제82호를 하달했다.

 그 중 한 대목을 보면 사기를 진작시키는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

유엔군 및 국방군에게 숨돌릴 사이를 주지 말고 새로운 방어선에서 

진지를 구축할 여유를 주지 말라! 전력을 다해서 적을 혼란상태로 몰아 넣어

 그들의 저항력을 격멸하고 그들의 장비를 파괴하라! 

유엔군 및 국방군에게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라! … ’고 독전했다. 

이에 힘입어서인지 18일 밤 방호산 부대는 대대적인 집중 공격으로 나왔다. 

3일간의 혈전으로 미군은 작전상 후퇴까지 했다. 

무려 19회나 뺏고 뺏기는 백병전을 벌였다. 

1950년 9월 중순까지 이어진 산악전으로 인해 피아간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방호산 부대 13·14연대장이 전사할 정도로 여항산 능선은 

시산혈해(屍山血海)로 신음하고 있었다. 

이 통한의 고지를 가리켜 미군 병사들은 ‘전투산(Mountain of battle)’·

‘네이팜산’·또는 포격으로 초목이 없다 보니 ‘중머리산’으로 불렀다.  

이보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너무나 몸서리쳐지고 지긋지긋했던 나머지 

신의 저주를 받으라는 뜻으로 ‘갓 뎀(God deme)’산이라고 내뱉기 일쑤였다. 

이 말이 갓데미로 변해 널리 통용되다 보니 오늘날까지

 여항산의 별칭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특기할 것은 정찰기를 통해 적진에 매일같이 살포되는 

전단의 효과가 나타난 곳도 여항산 전투였다.

 온 산야에 하얗게 되덮인 전단에는 ‘자유를 찾아 자수하라!’‘

추석은 오는데 고향은 멀고멀다’‘

애끓는 부모의 마음 - 너는 죽었느냐 살았느냐·’는 등 

호소력있는 글로 채워져 있었다.  

한국 6.25 전쟁에서 심리전이 효과적인 전쟁무기로 

그 진가를 발휘한 곳도 여항산 일대가 최초였다. 

전단 살포는 바로 네이팜 탄에 못지 않은 

‘종이폭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