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

북베트남 공산군대의 37mm M 1939 대공포- North Vietnam Communist Military 37mm M 1939 Anti Air Craft Gun

슈트름게슈쯔 2018. 7. 24. 10:38



베트남전 당시 쾅빈 지역에서 미군 항공기의 공습에 대비하여 

대공사격 준비를 하는 북베트남 공산군 민병대 - 1965년 




베트남전 당시 Nghe An과 Vinh Linh 근처에서 수확한 쌀의 낟가리를 농부들이 나르는 동안 

미군의 공습에 대비하는 북부 베트남 농민 협동 조합의 대공군 민병대의 37mm 대공포- 1965




북베트남 하노이 남부지역에서 북쪽으로 비행하는 미국 항공기를 향해 

조준하는 북베트남 공산군의 소련제 37mm M 1939 대공포대- 1968년 12월




베트남 탄 호아 (Thanh Hoa) 강을 공격하는 미군 항공기를 향해 소련제 

 57mm AZP S-60 대공포 사격을 가하는 북베트남 공산군 - 1966년 2월 25일  


사진은 미 공군 RF-101 부두 전투기의 사진 정찰 당시 조종사가 찍은 것이다.




햄종 다리에서 미군의 공습에 대항하여 미군 항공기에 대공포 사격을 가하는 

북베트남 공산군의 소련제 37mm M 1939 대공포대 - 1966년 




밀집된 형태로 미군 항공기에 사격을 가하는 북베트남 공산군의 

소련제 37mm M 1939 대공포대대- 1966년 12월 




베트남전 당시 미군의 북베트남 공습에 대비하여 소련에서 지원 받은 소련 해군의 

37mm V-11 트윈 대공포를 조작하는 바하 당 조선소의 민병대 소속  대공포대 멤버들 - 1969년 




북베트남군의 소련제  57mm AZP S-60 대공포 - 1969년 6월 19일




베트남전 당시 미군 항공기의 저공 비행시 치명적인 피해를 끼쳤던 

북베트남군의 소련제  61-K 37mm M 1939 대공포




베트남전 당시 하노이 근처에서 추락한 미군 항공기의 비행사 포로를 끌고 가는 베트콩 여성 - 1967년 10월 5일 








북베트남군의 대공 무기에 추락한 미 공군 제 354 전술 전투 비행 중대 소속의 

 F-105D 썬더 치프 전폭기 비행사 드웨이 워델을 끌고 가는 

베트콩 모신 나강 여성 -1967년 7월 5일 



1967년 7월 5일 베트남 공산군대에 의해 포로로 끌려간 드웨이 워델은 1973년에 석방되었다. 

GDR 전쟁 특파원이었던  Thomas Billhardt가 찍은 이 사진에는 

미국 군인 포로를 잡고 시골 길에서 그를 끌고 다니는 베트콩 여성이 있다. 

사진은 선전 목적을 위해 제작되었으므로  생포된 비행사가 겁이 많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실제로 몸집이 작은 여성을 경비원으로 이용했다. 

사진 작가 Billhardt는 드웨이 워델을 1998년에 만났다. 

드웨이 워델은 미국 정부와 가족이 그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함으로써 

사진이 자신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북베트남 지역에서 적의 대공무기에 추락하여 사망한 미군 파일럿의 사체- 1967년






1963년 6개의 대공포 부대와 2개의 레이더 연대가 있었던

 북베트남군의 대공포 부대는 1965년부터 급격히 병력이 증가되었다.

 1964년 북베트남군에는 모든 종류의 약 700정의 대공 무기와 

20대의 조기 경보 레이더 세트가 있었다. 

북베트남군의 대공 방어는 주요 인구 밀집지 또는 군사 현장에 국한되었으며

 그들의 대공 방어는 20,000 피트 이하의 고도에서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1964년 9월 북베트남에는 단지 1400대의 대공 기관총과

22대의 조기 경보 장치및 4 대의 사격 통제 레이더가 있었을 뿐이었다.


1964년 8월 초반에 발생했던 톤킨만 사건 초기에  북베트남은 

소련으로  군사무기 지원에 대한 직접적인 요청을 했다. 

북베트남의 호치민이 소련 흐루시초프 서기장에 요청한

무기 목록에는 대공 무기가 포함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한 형태는 1965년 1월 미군의 북베트남 정찰 항공 사진 촬영에서 

 북베트남 최초의 소련제 자기 추진 대공포의 존재가 발견되었다. 

이 무기는 1964년 12월 22일에 하이퐁 (Haiphong)에 도착한

 소련 화물선에 의해 인도되었을 수 있었다. 

그후 1965년 2월까지 북베트남군은 여러 종류의 소련제 대공 기관포와 

성능이 강화된 레이더 장비를 갖춘 대공무기들을 대량 확보하였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 항공기들은 2,000 피트 이하에서 

북베트남군 대공포대가 사격을 가하는  소구경 대공포가 가장 심각한 위협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전을 소구경 대공포 발사의 최대 유효 고도인 4,500 피트 

이상으로 제한하는 미국의 지시로 그 무기들의 효과를 제한시켰다. 

북베트남군은 구경 14.5mm, 37mm, 57mm, 85mm 및 100mm의 

각종 소련제 대공포로 구축시킨 대공포대가 있었다.

소련제 대공포들의 최대 사격 고도는 45,000 피트였다. 

그리고 그 대공포들의 효과는 집중사격과 기상 조건 및 

항공기의 공격 유형에 따라 다양했다.

 베트남전 기간 동안 미군 항공기가 직면했었던 

 가장 큰 문제중에 하는 바로 적의 대공포화였다.

미국 항공기들은  적의 대공포화에 대해 

공중 피격으로 인한 피해를  덜 받기 위해 항상 대공포대 지역을 

빠르게 회피하는 전술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북베트남 대공포대들이 대공포 사격시 미군 항공기 앞에서 펼쳐지는 

대공포탄의 화망은 구름 아래 8,000 피트 미만인 경우 가장 효과적이었다. 

그로 인해 미군 항공기의 수직 이동이 구름에 의해 제한되는 동시에 

북베트남군 대공포대 포수들의 미군 항공기 조준을 보다 정확하게 설정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