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병기 : Tiger-1 Tank

영국군이 처음 폭파시킨 튀니지의 231번 타이거-1 전차 -WW2 British Army First exploded German Tiger-1 tank No. 231 in theTunisia

슈트름게슈쯔 2018. 7. 27. 00:00



북아프리카 튀니지 로바 근처 도로에서 영국군이 매설해 놓은 대전차지뢰의 폭발로 정지된 뒤 

매복하여 기다리고 있던 영국 육군 왕실 포병대  제 72 대전차 연대 A 포병중대 2분대의 

마크-2  6파운드 57mm대전차포의 수십발 사격에 화재로 불탄  

독일 501 중전차대대의 231번 E형 타이거-1 전차 - 1943년 1월 20일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북아프리카 전선 튀니지 로바 근처 도로에서 영국군 대전차지뢰에 정지된 뒤  

57mm 6파운드 대전차포의 수십발 공격에 포탑 측면 장갑의 여러곳이 관통 당한후 화재가 나 불탄 

독일 아프리카 군단의 타이거-1 전차와 영국군의 발렌타인 전차 - 1943년 1월 20일 


 






튀니지 로바 도로에서 영국군이 대전차지뢰로 폭파시킨 231번 

타이거-1 전차의 잔해와 영국군 발렌타인 전차 - 1941년 1월 


영국군은 북아프리카 전선 튀니지에서 노획한 독일 아프리카 군단 501중전차 대대의 

131번 타이거-1 전차는 온전한 상태라 영국 본토로 수송하여 가져갔지만 

231번 타이거-1 전차는 화재가 난 상태라 독일군이 다시 부속을 빼내어 

사용하지 못하도록 대전차지뢰를 이용하여 완전히 폭파시켰다.




영국군이 튀니지 제펠자파 (Djebel Djaffa)고원에서 노획하여 본토로 수송해간 

독일 아프리카군단 501중전차 대대 3소대 소속의 131번 타이거- 1 전차 - 1943년 4월 21일  


제 2차 세계대전중 독일 육군 기갑부대의 신형전차  타이거-1 전차의 시제형은 

 1942년 4월 23일 히틀러의 53세 생일날에 시연되었다. 

그로부터 364일 후 처음으로 온전한 상태의 타이거 1 전차 1대가 연합군의 수중에 떨어졌다. 

그것은 튀니지 제펠자파(Djebel Djaffa) 고원에서 영국군이 노획한 타이거-1 전차 131번 이었다.


1943년 4월 21일 영국 본토에서 북아프리카 전선 튀니지에 새로 도착한 

영국 제 48 왕립 전차 연대의처칠전차는 

처음으로 독일군 타이거-1 전차에 대항하여 격돌했다.

영국군은 처칠 전차에서 발사했던 6파운드 대전차포의  

57mm 포탄 1발이 타이거-1 전차의 88mm 포신 아래의 

포탑 사이에 기이한 형태로 꽉 끼여버려진 상태로 전투 불능 상태가 되어 

독일군 전차 승무원들이 재빨리 모두 도주한 뒤라 손쉽게 노획할수 있었다.




영국 도싯의 보빙턴 전차 박물관에 소재한 131번 타이거-1 전차의 영국군 처칠전차 57mm 철갑탄의 피탄 자국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튀니지 독일 아프리카 군단 501 중전차대대의 타이거-1 전차 편성도 



타이거-1 전차 전사 기록에는 1943년 1월 20일 북아프리카 전선 

독일군의 아일보트1 작전에서 두 대의 타이거-1 전차가 분실되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다른 믾은 문헌에서는 이것은 실제로 독일군의 31번째 작전인 

아일보트 2 작전에서 발생했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1946년 11월 6일 런던 공보에서 나온 발표는 다음과 같다.

1 월 말에 로바에 대한 적의 공격이 다시 시작되었고, 

이번에는 36 개의 보병 여단에 대한 타이거-1 전차가 다시 사용되었다 .

5 대의 황색 타이거-1 전차가 지상에서 정지되고  

2대의 타이거-1 전차를 포함한 5 대의 전차가 파괴되었다. 

독일군은 큰 손실로 철수했다. 

1943년 1월 31일 독일군의 캄프 그루페 베버 (Kampfgruppe Weber)는  P4 루트를 따라 

로바 (Robaa)를 향한 전투 그룹을 파견하여 서쪽에 위치를 잡았다. 

이 그룹에는 Oberleutnant Löse에 따라 501 중전차대대 2중대의 타이거-1 전차 6대가  포함되었다.

그 지역을 장악한 프랑스 군대는 이제 영국군의 지원을 받았다. 

마을에 도착하기 3km 떨어진 곳의 낮은 언덕 지역에서 36 보병 여단과 

72 대전차 연대가 경사면에 군비를 구축하였다. 

오전 7시에 타이거-1 전차 2대와 3호 전차 4대가 모습을 드러내고 전진하면서 

사격 포지션을 집아 포탄을 발사했지만 그 전차들은 

영국군의 지뢰원에 갇혀  포위되어 버린 상태가되었다. 

독일군 공병  엔지니어가 지뢰 제거를 시도했지만

선두의 타이거-1 전차는 대전차지뢰의 폭발로 심하게 손상되었으며 

두 대의 다른 3호 전차 또한 대전차지뢰의 폭발로 파괴되었다.

독일군에게 이탈리아군에 의한 포병 지원이 제공되기로 

되어 있었지만 그것이 실행되지는 못했다.

또한 항공 지원은 수 시간이 걸렸다. 

영국군의 대전차 지뢰가 도로에 매설되어 있었던  그곳의 지형에서는 

독일 아프리카군단 전차대의 이동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두번째 타이거-1 전차 231번및  2대의 3호 전차는 

그 곳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 힘을 써며 전진을 시도했다. 

영국군은 독일 아프리카 군단 전차대의 측면이 드러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500m가 넘는 거리에서  마크-2 57mm 6파운드 대전차포의 

대전차포탄 6 발을 발사하고 독일군 전차 3 대를 모두를 제압시켰다. 

231번 타이거-1 전차는 영국군 6파운드포의 집중 사격을  받아 화재가 발생하여 3 시간 이상 불탔다.

그러한 영국군의 대공세로 인해 독일군의 공격은 중단되었다. 

정오에는 영국 공군의 공습으로 독일군은 포병대를 이동시키지 못했다. 

독일군은 231번 타이거-1 전차를 화재로 잃고 그 뒤에 손상된 다른 타이거-1 전차를 견인했다. 

그 다음날 독일군은 화재로 불타 잃은 231번 타이거-1 전차에 대한 영국군의 접근을 막기 위해 

그 타이거-1 전차가 있는곳에서 부터 그들의 작전 지역을 구축했다.

.그에 따라 영국군은 독일군의 화재로 불탄 231번 타이거-1 전차를 노획하여 

이동을 시킬 수는 없었지만 영국군의 군사 전문가들은 

폭발물에 의한 독일 타이거-1 전차 파괴 실험을 실시하기 위해 잔해 더미로 남겨 두었다.

 당시 독일 아프리카 군단 501 중전차 대대의 타이거-1 전차가

북아프리카 서부 전선에서 처음으로 영국군 일반 야전 대전차 포병대에 의해 

당한 패배는 타이거-1 전차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 있던 

튀니지 지역 연합군의 사기 진작에 크나 큰 작용을 하였다.

튀니지 로바 근처의 도로로 전진하던 독일 아프리카 군단 501 중전차대대의 

231번 타이거-1 전차는 1차적으로 영국군 지뢰에 의해 정지된 후 

2차적으로 500m 근처에 메복해 있던 영국군 대전차 포병대의 

 6파운드 57mm 대전차포의 근거리 사격에 무수히 강타당한 것이었다.

이것은 마치 육식동물이 다닐만한 길에 사냥꾼들이 교묘히 설치해 놓은 

철제 톱니 덫에 호랑이가 발목이 단단히 물린 후 도망갈수 없이 꼼짝 못하게된 상황에서 

그곳으로 다가온 사냥꾼들에게 집중사격을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제 2차 세계대전중 독일군 타이거-1 전차(231번)를 

연합군중에서 처음으로 영국군이 전선에서 처음 격파를 시키고 

전선에서 온전한 상태로 처음으로 타이거-1 전차(131번)를 노획했던 성과에 기여했던  

대전차포는 아이러니하게도 독일군의 88mm 대전차포 보다

 현저히 성능이 떨어지는 구경 57mm의  6 파운드포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