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 극장

윌리엄 가니어의 톰슨 기관단총 선제 사격 William Guarnere use Thompson submachine Gun first fired German supply carriage

슈트름게슈쯔 2018. 9. 25. 23:03







이지 중대 지휘관 리처드 윈터스 중대장의 사격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단독 행위의 객기로 

 독일군 보급물자 마차를 향해  톰슨 기관단총으로 선제 사격을 가한 윌리엄 가니어(프랭크 존 허프즈) 병장





윌리엄 가니어는 미 제 101 공수 사단 506 낙하산 보병 연대 2대대의

 이지 중대에 소속되어 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그는 프랑스를 침공한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D-데이에 처음 자신의 전투 강하를 마쳤다. 

그는 “와일드 빌(망나니 빌)” 이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그 이유는 

독일군에 대한 무모한 공격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다른 별명은 “가너리어(임질)” 였다.

그러한 별명은  그의 성과 발음이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가니어는 전쟁중 독일군에 대해 강한 증오심을 보였는데 그러했던 이유는 

 그의 형 중 한 명이 이탈리아 전선의 몬테 카지노에서 독일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기 때문이었다.  

가니어는 “와일드 빌” 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장의 공포 속에서도 가니어는 독일군에 대한 거친 공격을 계속하였다. 

가니어는 D-데이에 있었던 브레꾸르 마뇨르 전투에서의 공로로 

은성 무공 훈장을 받았으며, 두 개의 청동 무공 훈장과 두개의 퍼플 하트 훈장을 받았다. 

특히 가니어는 은성 무공 훈장을 받은 유일한 3명의 이지 중대원 중 하나이다. 

(나머지 2명은 리처드 윈터스와 린 캄튼) 

벨기에에서 발지 전투를 앞두고, 부상을 입었던 가니어는 병원을 빠져나와서 이지 중대로 돌아왔다. 

가니어는 이 전투에서, 부상당한 전우 조지프 토이를 도우려다가 다리를 잃었다. 

(당시 조지프 토이 또한 다리를 잃어서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였다.) 

이 부상으로 인해, 가니어의 참전은 끝이 났다. 

리처드 윈터스 소령의 회상” 에서 리처드 윈터스는 이지 중대의 두 명이 “타고난 살인자” 였다고 언급하였다.

그 두명은 로널드 스피어스와 빌 가니어였다. 

이 두 명에 대해서 언급한 문장에서 윈터스는 이것이 존경의 의미이지 나쁜 뜻은 아니라고 말하였다. 

1945년 3월  가니어는 미국으로 돌아온 후  많은 직업들을 전전하였다. 

그는 육군으로부터 장애가 구제될 때까지 인조 다리를 착용하였으며, 이후 인조 다리를 벗어던지고 은퇴하였다. 

그는 많은 퇴역 군인 단체의 활발한 회원이 되었으며, 많은 이지 중대원들의 회합을 주선하였다.  

또한 그는 는 이지 중대의 활동을 그린 책 “전쟁중의 형제들, 최고의 친구들: 진짜 밴드 오브 브라더스인 

두 제 2차 세계대전 공수부대원이 들려주는 그들의 이야기” 를 

에드워드 헤프론, 로빈 포스트와 함께 쓰기도 하였다. 

이 책은 버클리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그는 2014년 3월 8일에 향년 90세의 일기로 펜실베이니아 대학병원에서 동맥파열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