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아우토반의 히틀러 벤츠와 미군 M4 셔먼 전차 - 1936~1938 Adolf Hitler's Benz Car in Autobahn & 1945 US Army M4 Sherman Tank in Autobahn

슈트름게슈쯔 2019. 1. 4. 16:37

















자신이 계획하고 지시하여 건설한 세계 최초의 자동차 전용 고속도로 아우토반에서 메르세데스 벤츠 540 K 및 

메르세데스 벤츠 770 K 전용 차량를 타고 퍼레이드를 벌이는 아돌프 히틀러-1936~1938



1930년대 초중반기 독일의 아우토반 건설 계획은 독일 국민들에 대한 정치 선전에 이용되었으며 

건설 현장에 나치당의 청소년들도 6개월간의 무상 근로 봉사(Reichsarbeitsdienst)로 참여시켰다. 

독일 국내 고속도로 아우토반의 건설은 새로운 독일의 건설을 요구하는 나치당에도 적합한 계획이었다.

그리고 아우토반 건설은 독일 국민들의 의식 고양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제 2차 세계대전 발발전 건설되었던 독일의 아우토반은 세계에서 처음 건설된 고속도로 네트워크였다. 

그렇게 건설되었던 아우토반은 독일이 세계 굴지의 자동차 대국으로 가는데 큰 주춧돌이 되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다룸슈타트까지 최초 구간은 1935년 개통했다. 

이 구간은 1938년 독일인 레이스 드라이버 베른트 로즈마이어(Bernd Rosemeyer)의 

치명적인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메르세데스 벤츠 등의 팀에 의해 최고속도 기록 달성을 위해 사용되었다.  

아우토반은 세계 최초로 본격적인 고속도로 네트워크였다. 

도트는 기술자인 듯한 배려를 빠짐없이 단순한 고규격직선도로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고 

클로소이드 곡선을 이용한 완만한 커브의 라인 설정이나, 

근대적이지만 풍치에 맞은 교량, 고가다리 디자인을 받아들여

 기존의 자연경관과 조화되는 도로건설을 목표로 했다. 

그의 거시적인 견지로부터 고속도로를 설계하는 그러했던  컨셉은 전후에도 아우토반뿐만 아니라 

세계각국의 많은 고속도로에 받아들여졌다. 

아우토반에 장거리주행을 고려하여 화장실 등을 구비하는등  고속도로 휴게소들도 도처에 설치되고 있었다. 

이것들의 기본구상은 독일을  세계 굴지의 자동차대국으로 성장시켜 가는 과정에서의 큰 초석이 되었다.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아우토반은 연합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터널이나 

가까운 숲속에 항공기를 숨기는 역할을 했으며, 또한 전쟁말기 독일 공군 루프트바페는 아우토반을 

Me 262 메샤슈미트 슈발버 제트 전투기의  활주로 대신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연합군의 융단 폭격에 의해 아우토반은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지만 

전후 서독지역은 빠른시간안에 복구했다. 

1950년대 서독 정부는 아우토반 구축 프로그램을 전개해 신구간 건설 및 기존 구간 개량에 많은 부분을 투자했다. 

그러나 동독및 폴란드 구간은 정부의 경제적인 문제로 수복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독일 재통일 후에는 예산을 주로 구 동독쪽에 투자해 구축을 했다.  

1960년대에 대한민국의 박정희 대통령은 서독을 방문 한 뒤 아우토반을 보고 나서 

귀국후 대한민국의 고속도로 건설을 계획하게 된다.














독일 기에센(Giesen)근처의 아우토반으로 전진하는 미군 M4A3E8 셔먼전차와 

항복 후 포로 수용 지역으로 이동하는 독일군 전쟁 포로들의 행렬- 1945년 3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