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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 말기 피터스버그 포위전- 분화구 전투(콜드 마운틴 2003) - Battle of the Crater -Seige of Petersburg / Cold Mountain(2003)

슈트름게슈쯔 2019. 1. 15. 00:04









남북전쟁 말기 피터스버그 포위전- 분화구 전투 - 콜드 마운틴(2003)




미국 남북전쟁 말기 피터스버그(Petersburg) 전투에서는 땅굴에 대량의 

흑색화약을 채워 넣고 폭파시키는 전술이 사용되었다. 

남북전쟁 말기 북군은 남부연합의 수도인 리치몬드에 주요 보급기지 역할을 했던 피터스버그 시에 기습공격을 가한다.

그러나 공세가 실패로 돌아가자 북군은 48㎞에 달하는 참호선을 구축하고 9개월 동안 포위전을 실시했다. 

그러던 중 북군의 앰브로스 번사이드(Ambrose Burnside) 소장이 지휘하는 9군단은 

광산기술자 출신인 헨리 플레젠트(Henry Pleasants) 중령의 건의에 따라 

남군의 방어선 아래에 굴을 판 뒤 폭약을 채워넣고 터트려 남군의 진형을 깨트렸다. 

이 폭발로 남군 방어선 중간에 깊이 9m, 크기 52m×24m의 커다란 분화구가 만들어 졌다. 

하지만 북군은 적에게 기습을 한다는 최초의 취지는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곧장 공세를 취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북군 병사들은 혼란에 빠져 있는 남군을 10분 이상 진지에서 지켜보다 뒤늦게 돌격을 시작했다.   

게다가 그들은 한 술 더 떠 폭발로 형성된 분화구를 끼고 돌아 적지를 공격하라는 

최초의 명령을 무시하고 참호로 활용할 생각으로 분화구 안으로 스스로 뛰어 들어갔다.

 그 사이에 혼란을 수습한 남군의 윌리엄 마혼(William Mahone) 준장은 역습을 시작했다. 

그는 대폭발로 발생한 그 분화구를 포위한 뒤 그 속으로 몰아넣은 북군 병사들을 내려다보면서 사격을 실시했다. 

결국 북군은 먼저 적에게 그럴듯한 기습을 걸어놓고도 후속 조치가 미흡하여 

대량의 병력 손실을 입었을 뿐 아니라 전선까지 밀려나는 치욕을 당했다. 

후일 북군 사령관이었던 율리시스 그랜트(Ulysses S. Grant) 중장은 

이 전투를 남북전쟁 기간을 통틀어 내가 목격했던 가장 슬펐던 사건이라고 술회했다고 한다.

피터스버그 전투에서 북군은 땅굴 폭파 작전으로 발생한 거대한 구덩이(9m)를 우회하지 않고 

그대로 밀고 들어가 마치 멧돼지를 잡기 위해 만든 함정에 빠진 것처럼 그곳에 빠져 버리게 된다.   

당시 북군의 지휘관 번사이드는 병력을 빼지 않고 오히려 추가 병력까지 몰아 넣어서 큰 희생을 자초한다.   

하지만  북군의 전력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북군의 다른 부대가 우회하여 백병전으로 남군을 밀어냈다.

남북전쟁 말기 피터스버그 전투가 등장하는 영화 콜드 마운틴(2003)에서는 그 과정이 생략되어 

남군이 무모하게 구덩이로 뛰어든 것처럼 보인다. 

남북전쟁 말기 피터스버그 전투에서 북군은 3,800명 사상했고 남군은 1,500명 사상의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피터스버그 전투는 병력차이를 생각하면 오히려 남군측이 훨씬 큰 피해를 입었던 전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