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6.25 전쟁 Korean War

한국 6.25 전쟁 당시 미군이 노획한 중국 공산군의 미숫가루 부대 U.S. Soldiers captured Chinese POW dry meal during the Korean War

슈트름게슈쯔 2019. 3. 11. 01:47





한국 6.25 전쟁 당시 미군이 노획한 중국 공산군 포로의 건조 식량이 담긴 미숫가루 부대(負袋)-1951년 




미숫가루는 한국의 대표적인 보존식품 중 하나로 찹쌀이나 멥쌀, 

또는 보리쌀을 쪄서 말리고 볶아서 가루로 만든 식품이다. 

현대에 들어서 영양분의 균형적인 섭취가 중요시되자 콩 등 여러 다른 잡곡, 

또는 해조류 등의 가루를 추가하기도 한다. 

미숫가루를 선식(禪食)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사찰의 승려들이 참선을 할 때

 허기를 달래기 위해서 먹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미숫가루는 조선시대 기록에 따르면 어원은 '미시' 혹은 미식(穈食)'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발음이 변하여 '미수'가 되었고,

 미수를 만드는 가루라는 뜻으로 '미숫가루'란 말이 나왔다. 

옛 어원의 영향으로 미싯가루라고 쓰는 경우도 있으나 미숫가루가 표준어이다. 

미식(糜食)에서 발음이 변하여 굳어진 형태라고 여기기도 한다. 즉, 미수와 가루를 합친 말이다. 

훈몽자회에는 한글로 미시, 한자로 초(炒)라고 쓰였다.  

미숫가루처럼 곡물을 말려 가루로 낸 것은 동양에서 굉장히 오래 전부터 먹던 음식이라 

어디가 원조인지는 확실하지가 않다.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들어왔다는 설도 있고, 중국에서 시작해서 

인도와 한반도, 몽골로 퍼졌다는 설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분명하지 않다. 

그 때문에 오늘날 미숫가루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말린다는 것은 고대때부터 내려온 보관법이었고, 굳이 동서양을 가르지 않아도 

그리스·로마사람들은 보릿가루, 밀가루를 섞어 여행중에 물에 타 마시거나 끓여먹었다는 기록이 곧잘 나온다.  

동의보감 잡방(雜方)편에 천금초(千金麨)라는 것이 나온다. 

17세기 홍만선(洪萬選)은 그의 저서 산림경제(山林經濟) 제 2권의 치선(治膳)편에서 동의보감을 인용하며 

'천금초는 미숫가루의 한 종류'라고 설명하는데, 천금초는 미숫가루를 고급스럽게 만든 것이다. 

메밀과 백복령, 기타 약재를 가루내어 꿀과 섞어 시루에 찌고 말려 가루를 내어 만든다. 

천금초는 흉년이 들었을 때 덜 먹고도 버티기 위한 식량인데, 

동의보감에서는 천금초를 한 숫가락씩 냉수에 타 먹으면 백 일간 배고프지 않는다고 하였다. 

과거에는 흉년을 버티기 위해 미숫가루와 비슷한 가루를 만들기가 흔했다.  

한반도에도 최소한 삼국시대에는 미숫가루가 있었다. 

삼국유사에 (8세기 신라인) "진표율사(眞表律師)가 불사의방(不思議房)에 갈 때 쌀을 쪄서 말려 양식을 삼았는데..

 하는 구절이 있는데, 역사학자들은 여기에 나오는 '쌀을 쪄서 말려 양식으로 삼은 것'이 미숫가루가 아닌가 생각한다.



미숫가루는 옛날부터 한국에서 여름철 가정용 음료의 재료였다.

그리고 미숫가루는 전란 때에는 전투식량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전쟁이 날 것같은 조짐이 보이면 남자가 있는 집에서는 제일 먼저 준비하는 것이 미숫가루였다.

현대가 되어서도 한국 6.25전쟁 당시 전투식량으로 배급하던 건빵을 담은 종이봉투 안에

 부식 삼아 별사탕과 미숫가루를 넣었다. 

북한 공산군대를 도와서 남한 침략 전쟁에 참전한 중국 공산군들은 아예 미숫가루를 주식으로 삼았다. 

원래 중국은 한국 6.25 전쟁 당시 동북 3성만으로 후방지원을 담당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수요량을 감당하지 못하자 중국 공산당은 

중부와 남부 성에 사는 주민들에게도 미숫가루를 만들라고 지시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