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현장

동서 냉전기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소련 공산당 흐루시코프 서기장 - USSR Chairman Nikita Khrushchev Visit To Indonesia

슈트름게슈쯔 2019. 5. 20. 09:18
























동서 냉전기 동남 아시아의 교도 민주주의 국가 수카르노 대통령 집권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소련 공산당 니키타 흐루시코프 서기장 - 1960년 자카르타



네덜란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 1949년 인도네시아를 건국한 독립 운동가이자 인도네시아의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는 1960년 소련의 군사 원조를 받아 군비를 확장하여 네덜란드와의 국교 단절 및 무력에 의한 

해결 의지를 밝히는 한편 이 지역 문제를 유엔에 제소했다. 

그러나 1961년 말 네덜란드가 서뉴기니(파푸아 뉴기니)의 의회 선거를 진행하고, 9년 뒤에 독립시킬 준비를 하였으며 

12월 1일 의원들이 서파푸아 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국기(아침별기)와 국가 표어를 제정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네덜란드는 서파푸아 공화국의 독립은 당장 인정하지 않고 해당 깃발과 표어를 

서뉴기니 지역의 깃발과 표어로 인정하였다.  

이에 인도네시아는 12월 18일 서파푸아의 독립은 인정할 수 없으며 막기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인도네시아군이 서파푸아를 침공하겠다고 선언하고, 1962년에 공격을 진행했다. 

네덜란드군은 인도네시아의 공격을 방어하는데는 성공하였다.  

인도네시아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한 미국이 네덜란드와 인도네시아 양측을 중재해 

뉴욕 협정이 체결되어 1969년까지 자유로운 성인의 참여로 독립여부를 결정하는 조건(자유선택행동)으로 

서파푸아는 1962년 10월 유엔의 관리하에 놓여졌고, 1963년 5월 인도네시아에 인도됐다. 

 인도네시아는 1969년 인도네시아의 주도로 선발된 원로들에 대해 조사한 의사를 근거로 

서파푸아를 자국 영토로 편입시켰으며, 80만 파푸아인들의 참여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고, 

인도네시아 편입에 반대하는 원로들에게 강압이 가해지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이에 서파푸아인 사이에서 인도네시아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는 자유 파푸아 운동이 벌어졌다. 

인도네시아는 1970년 이 지역을 군사작전지역으로 지정해 독립운동을 군사적으로 탄압하는 한편,

 120만명 이상의 인도네시아인을 이주시켜 식민화하고 있다.  

2000년 새 국가 서파푸아 공화국의 수립을 선언하는 서파푸아주민대회가 인도네시아 정국을 뒤흔드는 문제가 되었고, 인도네시아 정부가 2003년 2월 주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 북서부('새의 머리'라고 불린다)를 

이리안자야바랏 주로 분할하면서 독립운동은 더욱 활발해졌다. 

2006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망명한 서파푸아 독립운동가들에게 비자를 발급해 

인도네시아와의 관계 악화로도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