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6.25 전쟁 Korean War

부산 포로 수용소 방어용 미군 M46 패튼 전차- Busan POWs Camp defence US Army M46 Patton Tank during the Korean War

슈트름게슈쯔 2019. 6. 6. 00:35



한국 6.25 전쟁 당시 부산 포로 수용소로 이송될 북한군 포로 180명 -1950년 8월 29일 




부산 포로 수용소에 새로 입소하는 공산 포로들 -1950년 




부산 포로 수용소에 새로 입소한 공산 포로들에게 바리캉으로 이발을 시켜주는 국군 감시병 -1950년 1월 19일 




부산 포로 수용소로 이송된 여성 공산 포로들  -1950년 1월 16




부산 포로수용소 제 1캠프에서 위생 소독으로 벼룩과 이 제거를 위해 바지 앞단을 연 채 DDT 소독을 받고 있는 

막 입소한 인민군 포로 - 1951년 1월 22일 




한국 6.25 전쟁 당시 부산 포로 수용소 - 1951년 2월 26일 




한국 6.25 전쟁 당시 미군의 부산 포로 수용소 방어용  M46 패튼 전차 




한국 6.25전쟁 당시 부산에 포로수용소가 설치된 것은 전쟁 발발 1개월이 경과된 시점이었던 1950년 7월 24일 이었다.

당시 포로 수용소(捕虜收容所)는 부산 거제리(釜山 巨堤里)  현재 부산 연제구 연산5동 1000번지 

부산광역시청과 부산지방경찰청이 자리 잡고 있는 일대에 설치되었다. 

이 시설은 유엔군사령부 관할하에 미 제 8군사령부가 운영하였다. 

부산 포로 수용소는 7월 26일 부터 "주한 미 8군사령부 제1포로수용소(Camp EUSAK No1)"라 명명되었으며, 

통상 "제1포로수용소(POW Enclosure)"라고 불리어졌다. 

1950년 9월 15일 맥아더 사령관의 인천상륙 작전을 계기로 전세가 역전되고 아군의 반격으로 

붙잡히는 포로의 엄청난 증가로 인해 8월 2,000명에서, 9월에는 11,000명에 육박하였다.

 계속 증가하는 인민군 포로의 관리를 위해 9월에 "인천 임시포로수용소"가 설치되었고,

 10월 2일 서울 마포형무소에도 포로수집소가 설치되었으나, 이들 임시 포로수용소, 포로수집소를 거친 포로들은 

전부 부산 포로수용소로 집결되었다. 

9월 하순부터는 포로들이 대량으로 쏟아져 들어오자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에는 철조망이 더 많이 설치되면서 

제2 ~ 6포로수용소까지 증설되었다. 

1950년 10월 말까지 한국군과 유엔군에 의해 붙잡힌 포로의 계속적인 증가로 그 숫자가 117,000여명에 육박하였다. 

이러한 포로의 증가로 인해 야기되는 수용 및 관리 능력을 초과하게 되자 이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미군 제8군사령부에서는 제 2 군수 사령부(2nd Logistical Command)를 창설하여 포로를 관리하기 위해서 

필요한 인력과 장비를 보충하고 병참문제를 해결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그리고 한국군은 1950년 10월 25일 이를 지원할 제31, 32, 33포로경비대를 창설하였다.

 계속되는 한국군과 유엔군의 북진으로 인해 포로들의 지속적인 증가와 10월 25일 중국 공산군의 한국전 참전으로

 중국 공산군 포로까지 늘어나자 포로들의 수용과 관리를 위해 10월 28일에는 평양에 2개의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었으며, 향후 안정적인 포로들의 수용과 관리를 위해 11월 27일에는 

"거제도 포로수용소" 설치가 확정되었고, 12월 4일 50,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인천 포로수용소를 확장하였다.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가 제6포로수용소까지 확장하였으나 계속 늘어나는 포로들을 수용할 수 없게 되면서,

 12월 중순경에는 "수영 대밭 제1~제3포로수용소(수영구 광안4동 옛 인쇄창 또는 옛 수영비행장으로 추정)"와 

"가야 제1 ~3포로수용소(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음)"를 증설하게 되었다. 

이들 포로수용소는 포로들의 수용인원을 늘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의 지소인 셈이었다. 

1951년 2월초에는 거제도 포로수용소 설치공사를 시작하여 2월말 경에는 거의 마무리와 함께,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에 있던 포로들을 이송하기 시작하여 50,000여명이 거제도로 이송되었다. 

같은 해 3월 1일에는 주요 본부 및 경비대대 등 관련부대가 거제도로 이동되었으며, 

나머지 포로의 이동이 계속되어 3월말까지 이송된 포로는 숫자는 약 100,000명에 이르렀다.

 6월말 경에는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 포로들의 이송이 거의 마무리되면서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수용 인원이

 140,000명이 넘어서게 되었다.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에 있던 포로의 대부분이 거제도로 옮겨지게 되자, 

부산의 "제1포로수용소"라는 명칭도 거제도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 후에는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는 전방에서 붙잡힌 포로들이 부산으로 모아지고, 

그 인원이 다시 거제도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잠시 머무는 중간 기항지의 역할을 수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