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쟁 범죄

진주만에서 격침된 일본 해군 코효테키 잠수정 - Japanese Navy Type A Ko-hyoteki Midget Submarines sunk by the USS destroyer in the Pearl Harbor Hawaii

슈트름게슈쯔 2020. 8. 13. 13:21

 진주만 기습 침략 공격 개시전 하와이 오아후(Ohau)해변에 좌초된

일본 해군의  잠수정 HA-19 (Type A kō-hyōteki : 코효테키) - 1941년 

 

 

1938년 일본 쿠레 조선소에서 제작되었던 소형 잠수정 HA-19 는 무게는 46톤이었다.

1941년 11월과 12월초에 5대의 일본 해군 잠수정은 순양 대형 잠수함 이-24에 실려 진주만에 침투하였다. 

그러나 1941년 12월7일 진주만 기습 당일 오전 AM 3:30분  일본군의 잠수정 1대는 기관 고장을 일으켜 

 하와이의 오아후(Ohau)해변에 좌초되어 잠수정 승무원 카주오 사카마키는 미군에 바로 항복했다.

 그에 따라 일본군 카주오 사카마키(Kazuo Sakamaki : 1918 ~1999)는 제 2차 세계대전 최초의 일본군 포로가 되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 침략 당일 1941년 12월 7일 미 해군 구축함 모나한의 폭뢰 공격에 의해 침몰한 후 인양되었던

일본 해군의 A형 코효테키 잠수정 

 

 

1941년 12월 7일 8시 30분 진주만 항구 내에서 미 해군 구축함 제인(Zane : DMS-14)은 정박중이던

미 해군 구축함 메두사(Medusa : AR-1)로 부터 200야드 후미에서 “이상한 잠수함”이 발견 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다.구축함 제인의 지휘관은 함선의 주포 4문에 장전을 시키고 사격을 가할 준비를 했지만

함포를 발사시키기 여의치가 않았고 근처에 있었던 다른 구축함 페리 (DMS-17)가 포문울 열었다.

한편 구축함 메두사는 일본 항공기에 대공포를 발사했다. 구축함의 지휘관이 차후 보고서에서 언급했듯이,

그의 승무원은 구축함 메두사의 우현 부분에서 약 1,000야드 전방 지점과 미 해군 수상 비행기 모함 커티스의

후미에서 약 500 야드 떨어진 곳에서 그 괴 잠수정을 발견했다. 

미 해군 커티스 수상 비행기 모함의 지휘관은 8시 36분 그의 함선이 700 야드 떨어진 곳에서

출몰한 괴 잠수정에 공격을 가했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그 잠수정이 미 해군 구축함을 향해 어뢰 1발울 발사했을 때 미 해군 커티스 수상 비행기 모함의 지휘관은

잠망경에서 놓쳤지만 첫번째 폭뢰 발사후 8시 40분경에 일본 잠수정이 수면위로 떠올라 코닝 타워와

뱃머리의 일부가 보이자 폭뢰 2발을 발사하여 잠수정 코닝 타워 근처에 두번 폭발의 충격울 가했다고 보고했다.

북쪽 해협에서 그곳으로 다가오던 미 해군 구축함 모나한의 함장은 차후 조치 보고서에서

구축함이 현장에 접근했을 때 자신과 함교에 있었던 승무원들이 미 해군 수상 비행기 모함 커티스의 우현 지역에서

200~300 야드 떨어진 곳에서 일본 잠수정의 코닝 타워에서 솟구치는 격렬한 화재를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미 해군 수상 비행기 모함 커티스와 다른 모함 탄지르에서도 그 장면을 목격했다고 한다.

미 해군 구축함 함장 WP 브루포드는 전방을 지시하며 모든 엔진을 가동시켜 

최고 속도로 일본 잠수정의 측면에 충돌하기 위해 그곳을 향해 똑바로 항진했다.

8시 43분에 구축함은 두 개의 폭뢰을 수면 아래로 던져 내려서 잠수정을 공격하며 그 지역을 통과했다.

1분 후 두 일본 잠수정중 1척은 미 해군 구축함 모나한의 선미에서 폭발했고 그 일본 잠수정은 바다 밑으로 사라졌다.

미 해군 구축함의 방어 공격으로 또 1척의 진주만 기습 일본 해군 코효테키 잠수정이 파괴되었던 것이다.

 침몰한 일본 잠수정의 위치는 차트에 기록되었고, 해군 잠수부들은 일본 잠수정에 대한 공격 후

2주 후 그 선박을 조사하기 위해 바다속으로 수면위로 끌어올리는 인양 작업을 시작했다.

12월 21일 무거운 기중기와 바지선이 잠수정을 가라앉아 있던 해저 밑바닥에서 들어 올려 검사를 위해

바지선 위에 끌어 올려 놓았다.

미 해군 폭발물 처리 전문가가 바지선에 탑승하여 살펴본 바에 의하면 일본 해군 잠수정의

전면 끝 부분 (어뢰 발사관 부분)이 완전히 떨어져 나간 형테로 어뢰 발사관이나 어뢰는 남아 있지 않았다.

어뢰 발사관 아래에서 선체는 거의 평평한 곳까지 바깥쪽으로 날아간 것처럼 보였다.

그는 일본 잠수정의 어뢰가 발사관에서 폭발하여 "잠수정 선체 난간의 상부 전방 부분을 파괴"했다고 추측했다.

인양시킨 일본 잠수정의 검사시 선체에서는 선미의 충돌 손상을 포함한 다른 손상도 발견했다.

그들은 “잠수정이 완전히 뒤집어졌고 선체의 뒤쪽 끝이 심하게 구부러진 것처럼 보였다." 고 말했다.

전체적으로 일본 잠수정의 선체는 수중에서 심한 폭발에 노출되는 전형적인 주름과 움푹 들어간 부분을 보여주었다.

잠수정의 관제탑 코닝 타워는 "코닝 타워를 완전히 통과하는 5인치 발사체의 경로를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일본 해군 잠수정의 남아있는 무장을 해제할 것이 없었던 미 해군 EOD 팀은 그 곳에서 떠나고

바지선은 부기지로 옮겨졌다.

새로 건설된 부두 시설에 일본 코효테키 잠수정과 인양 후 발견된 사망한 일본 해군 승무원을 위한

매장지가 제공되었다.

기지를 방문했던 미 해병 코넬리우스 스미스 주니어는 그곳에서 일본 잠수정을 보고“코닝 타워는 작지만

한 사람이 그 선박을 조종 할 수있는 충분한 공간이 있습니다. 그는 아직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 전투함 중 1척이 일본 잠수정의 측면을 쳤고, 그는 다리가 늘어진 채로 죽었습니다.

일본 잠수정 승무원을 묘지에 메장해 줘야 할 것 같아요. 안에 있는 어뢰 승무원도 사망했다고 생각합니다.

“ 아직 손상되지 않은 8자 어뢰관 보호대를 포함한 일부 품목이 잠수정에서 회수된 후 크레인 바지선은

"해안의 부두 가장자리를 평평하게 하기 위해 채워 졌던 부두의 뒤쪽 가장자리를 따라 잠수정의 잔해를 매립했다"

사망한 두명의 일본 해군 승무원은 잠수정에서 끌어 내어져 인근 묘지에 묻혔다.

태평양전쟁 종전 2년후인 1947년 3월 진주만 기습에 참가했던 잠수정 탑승 일본 해군 중위의 어깨 휘장이

미 해군에 의해 일본으로 송환되었다. 그것은 죽은 잠수정 지휘관에게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 휘장은 일본인에게 그 잠수정이 특수 공격 함대 지휘관이자 일본 해군 C1형 대형 장거리 공격 잠수함 I-22에서

분리된 이와사 나오지 중위의 잠수정임을 암시했다. 그 일본 해군 잠수정의 승무원 2명은

이와사 나오지 중위와 1등 하사관 사사키 나오키치라는 자들이었다. 

진주만 기습에 참가했다가 미 해군 구축함의 폭뢰 공격에 의해 바다밑으로 침몰된 것을 인양된 후 발견된

일본 해군 잠수정 승무원의 그 휘장은 현재 일본 도쿄 야스쿠니 신사에 보존되어 있다.

미 해군 구축함 모나한의 폭뢰 공격에 의해 침몰된 후 인양된 그 일본 해군 잠수정은

1952년 진주만 미 해군의 부기지의 안쪽 벽 개선 공사를 하던중 작업자들이 매립지를 굴착하면서

새로운 자재 더미를 나르며 운전을 하는 동안 굴착기가 땅속에 묻혀 있던 일본 잠수정을 건드려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지만 잠시 후 땅속으로 다시 매장시켜 버렸다.

미 해군 작업자들은 바깥으로 노출된 일본 잠수정의 선체 옆에 더 깊은 도랑을 파낸 후

선체를 굴려서 다시 매장시켜 버렸던 것이다.

 

 

 

1960년 하와이 진주만 입구 키히 라군에서 발견된 진주만 기습 당시 일본 해군의 Ha-18형 잠수정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습격 당시

일본 해군의 A형 중형 잠수정 코효테키(kō-hyōteki) 5척을 포함 시켰다.

일본 해군의 대형 I 형 잠수함에 실린 잠수정은 진주만 기습 공격 개시 전날 밤 진주만 입구 근처에 정박했다.

이후 새벽이 되기 전 진주만 항구에 들어 가려고 하는 것이 미 해군에 의해 포착되었던 일본 잠수정 1척은

아직 시작되지 않은 태평양 전쟁의 첫 전투에서 미 해군 구축함 워드(Ward : DD-139)의 공격을 받아 침몰했다 .

당시 최소한 1척의 일본 잠수정은 진주만 항구에 들어갈 수 있었으나 미 해군 구축함 모나한(Monaghan : DD-354)에

의해 그곳에 가라 앉았다. 그외 일본 해군 잠수정들중 진주만 침투 시도에 실패한 또 다른 잠수정 Ha-19가 있었다.

일본 잠수정 Ha-19는 하와이 오아후 동부 해안으로 표류하다가 진주만 습격 다음날 그곳에서 나포되었다.

진주만 기습 당시 일본 해군의 어뢰 잠수정 5척 중 4 척이 미 해군에 의해 발견되었던 것이다.

미 해군 구축한 워드에 의해 침몰한 일본 잠수정은 2002년 8월 말 하와이 해저 연구소에서 약 5 마일 떨어진

진주만 입구 심해에 위치해 있다. 그곳은 진주만 국립 사적지의 일부로서 일본의 진주만 침략시 일본 해군 잠수정이

 침몰한 곳으로 남아 있다. 나머지 일본 해군의 잠수정 3척은 인양된 후 노획되었다.

일본 해군 잠수정 Ha-19는 공격 직후 인양되었고 며칠 후 다른 1척은 미 해군 구축함 모나한에 의해 침몰되었다 .

세 번째 일본 해군 잠수정은 태평양 전쟁이 끝난지 15년후인 1960년 진주만 항구 입구에서 발견되었다.

미 해군 구축함 모나한이 침몰시킨 그 일본 해군 잠수정은 인양 이후 매립지에 묻혔다.

인양 노획된 일본 해군 잠수정 2척중 Ha-19는 미국 텍사스 주 프레드릭스 버그에 전시되어 있으며

다른 Ha-18형 1척은 1960년 하와이 키히 라군에서 발견되어 미 해군에 의해 인양되었다.

그러나 인양된 Ha-18형 잠수정 1척은 일본 정부의 반환 요청에 의해 일본으로 반환되었다.

진주만에서 가라 앉은지 19년만인 1960년 인양되어 그해 일본에 반환되었던 Ha-18형 잠수정 1척은

현재 일본 에타지마 해군기지에 전시가 되어 있다.

진주만에 침입한 일본 해군의 잠수정 5척중 나머지 1척은 아직까지 설명이 되지 않고 있다.

진주만 기습 당시 일본군의 공격 사진에 대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일부 관측통은

일본 미쯔비시 97식 나카지마 함상공격기가 진주만 상공에 기습해 들어올 때 일본 해군 잠수정중 1척이

다른 일본 해군 잠수정들과의 지근 거리의 행렬에서 떨어져 있었고 떨어져 있었던 그 일본 해군 잠수정 1척은

과감하게 미 해군 전함 (USS 오클라호마 :BB-37) 또는 웨스트 버지니아 (BB-48)에 어뢰를 발사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논쟁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것이 만약 사실이라면 일본의 진주만 기습시 미 해군이 방어 공격을 가하여 

침몰시킨 후 노획이 누락된 일본 해군의 A형 잠수정은 진주만 내부에 발견되지 않은 채로 가라 앉아 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