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6.25 전쟁 Korean War

대구비행장 호주 공군 P-51D 머스탱 전폭기의 낙동강 전선 북한 공산군 거점 타격 1950 - Korea Nakdong River frontline enemy communist army base raid by UN Allied Forces Australian Air Force P-51D Mustang fighter Bomber take ..

슈트름게슈쯔 2020. 12. 27. 13:24

 

한국 6.25 전쟁을 일으킨 북조선 공산군대의 침략에 한반도 남부 지역 대구와 부산등의

경상도 일부지역을 제외한 수도 서울과 경기도및 충청도와 강원도와 전라도등 남한 대부분이 

북조선 인민 공산군대에 점령된 시점에 UN군의 일원으로 공산 세력으로 부터 한국인들의 

자유 수호를 위해 참전하여 대구비행장에 투입된 UN연합군 호주 공군 P-51D 머스탱 전폭기들의 

낙동강 지역 곳곳에 집결해 있는 북조선 인민 공산군 부대 거점 타격 -1950년 8월

 

 

부산 교두보 전투(Battle of Pusan Perimeter) 또는 대한민국에서 다른 말로 지칭하는 낙동강 방어선 전투는

국군및 UN연합군과 북한 공산군 사이에 벌어진 치열한 전투로 1950년 8월 4일부터 같은 해 9월 18일까지 벌어졌다.

이 전역은 한국 전쟁 사상 중요한 전투 중 하나였다. 한국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투입된 UN군 병력 14만 명이

북한군 98,000명의 마지막 침공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국군과 UN군은 북한군의 지속적인 공세에 계속 후퇴하면서

낙동강 방어선까지 물러났는데, 이 방어선은 한반도 남쪽에 구축된 140km의 방어선이었다.미군 주도의 UN군은

병력의 손실을 최소화하며 북한군의 공격을 6주 동안 막아냈다. 주요 전투는 대구, 마산, 포항, 낙동강 일대에서

벌어졌다. 8월과 9월 사이, 북한 공산군의 대공세가 2차례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군과 UN군의 성공적인 방어로

인하여 두 공세 모두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북한 공산군은 보급품 부족과 병력의 손실로 낙동강 방어선에서

UN군이 반격할 시 쉽게 무너질 가능성이 있었다. 이에 반해 UN군은 부산항을 통해 병력, 장비 등을 압도적으로

보유할 수 있었고, 전투 동안 해군과 공군은 북한 공산군의 공세를 저지하는데 기여했다.

6주 후 북한 공산군은 인천 상륙 작전으로 완전히 궤멸되었다. 이 전투로 인해 북한 공산군의 보급로가

일시적으로 차단되면서 북한 공산군은 낙동강 지역에서 공세를 할 수 없게 되었고,

국군과 UN군은 전세 역전의 기회를 잡을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