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대화>는
<프톨레마이오스-코페르니쿠스 두 가지 주된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라는 긴 제목의 저서를 줄여서 일컫는 표현이다.
1632년 출판된 이 책은 지동설 주장으로 금서 목록에 올랐고 갈릴레오가 그로 인해 종교 재판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해설자들도 종교 재판에 연관한 역사적 의의를 많이 강조한다.
하지만 이 책은 문장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읽을 가치가 있는 고전이다.
깊고 넓게 다양한 생각 거리를 주기 때문이다.
저자가 밝혔듯이 “주된 줄거리 못지 않게 재미있는, 딸린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대화>의 과학적 의의는 지동설 주장과 함께 갈릴레오의 방법론이다.
자연을 수학화하는 근대 물리학의 전통을 수립했기 때문이다.
이런 과학적 성과를 넘어서 <대화>는 중요한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지구중심주의 및 인간중심주의로부터의 탈피이다.
이를 합하면 ‘지구인 중심주의’로부터의 해방이다.
당시까지 서구인의 의식은, 세계가 우주의 중심에 있는 지구에서 사는 인간을 위해 창조되었고
그들에게 유용하도록 질서가 잡혀 있다는 믿음의 영향 아래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천문학적 발견은 지구(따라서 그곳의 거주자)가 우월적 위치에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천체들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대화>의 화자 사그레도는 말한다.
“지구도 달, 목성, 금성, 또는 다른 행성들과 마찬가지로 움직일 수 있고, 실제로 움직인다.
” 그렇게 함으로써, “지구는 하늘에 있는 천체들과 같은 위치에 놓여 그들의 특권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지구중심주의를 벗어나는 일이 지구에게 마땅한 권리를 돌려주는 것이라는 역설적 은유는 흥미롭다.
지구와 다른 천체들을 연속선상에 놓고 본다는 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타격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지구에서는 생성, 소멸, 변화의 현상이 있지만 다른 별들과 우주에는 그런 것이 없다고 믿었다.
“지구에는 풀, 나무, 동물들이 태어나고 죽고 합니다.
비, 바람, 폭풍우, 태풍이 일어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지구의 생김새는 계속 바뀝니다.
그러나 하늘의 물체에는 이런 변화를 볼 수가 없습니다.
” 사람들은 천동설을 믿더라도, 항상 순환해서 제 자리로 돌아오는 천체의 운동을 확인할 뿐이었지,
육안으로 보아 전혀 변하지 않는 것 같은 천체의 물질적 변화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갈릴레오는 “천체들이 변화하고 생성 소멸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은,
인간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함께 영생에 대한 욕망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더 나아가 그는 <대화>의 화자 살비아티의 입을 통해 육체뿐만 아니라 “인간 영혼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영혼불멸설조차 부정할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인간의 ‘숭고한 자존심’에 상처를 준다.
인간이 우주에서 특별하지 않은 존재일 수 있다고 시비를 거는 것이다.
이는 종교적으로도 중요하다.
인간중심주의로부터의 해방은 신앙심을 축소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확대시키기 때문이다.
갈릴레오는 과학적 탐구로 지구인 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인간만을 위한 신이 아니라 진정으로 세상 만물을 위한 신을 확인한 것이다.
그때까지 인간중심주의는 오히려 신의 위상을 인간에 맞춤으로써, 신의 섭리를 한정시키고 신앙심을 축소시켰던 것이다.
반면 인간이 무한한 우주에서 아주 미미한 존재라는 것은 신의 위상을 무한히 확장시킨다.
인간이 우주의 중심에 있음으로 해서 신의 손길을 느끼고 신의 은총을 받는 게 아니라,
우주의 변방에 있더라도 그렇기 때문이다.
세상 만물을 다스리는 신의 손길은 광활한 우주의 한 귀퉁이에 있는 미물에게도 미친다.
인간이 우주의 중심에 있어서 신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신이 편애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갈릴레오의 신앙심은 더욱 돈독해질 수 있었다.
따라서 그의 과학적 업적은 신을 부정한 게 아니라, 신을 온전히 긍정한 것이다.
종교 재판 후 그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했다.
혹자는 우주의 한 일부분인 인간 세계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일들 가운데
진실이 아닌 거짓말이라도 3번 정도에 걸쳐 어떤 형태의 사안을 그럴싸하게
상대방에게 인식시키면 사실이라고 믿어버린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어떤이는 그 어떤 형태의 사안에 대하여 시간이 흐르면 진실을 알수 있을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선동가의 발언이나 대중 심리에 의한 경우에 기인되는 형태가 대부분이고
사람들은 비록 그 누구든지 그 사물이나,사안에 내포되어 있는 부분적인 형태를 상대적으로
아예 눈치채지 못할경우에 쉽게 발생할수 있는 일임은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러나 이 두가지 모두다 먼저 발생했던 현태의 현상과 이어지는 현상의 과정 즉
정확히 그 두 체계를 모두 구분하여 파악하지 못한 경우의 오류임 이야말로 시간이 흐르면 그것이 과학적이든 논리적이든
사실적 형태로 증명되어 나타날수도 있게 된다는것을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의 예를 보면 느낄수 있다.
즉 사람들이 그 시대 이전 부터 굳건한 형태로 믿어온 천동설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없이는
결코 그에 대한 인식을 용납하지 않았다는것 또한 그 시대 다수사람들이 절대적으로 믿어온 종교적 ,생활적 성향이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3번이 아니라 10번 이상으로 틀린 형태의 사안을 상대에게 피력시킨다 해도
그것에 대해 왜라는 극히 자연스러운 의문을 가진자들로 인하여 인류의 역사는
무수한 변천과정의 오류을 겪으며 도도히 역사적 진보과정을 거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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