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소련으로 원조 보낸 전쟁물자 영국군의 마틸다 전차[WW2 British Matilda Tank Lend - Lease Soviet Union

슈트름게슈쯔 2012. 4. 25. 10:43

 

 

영국에서 소련으로 보낼 마틸다 탱크를 화물선으로 옮기는 작업

 

   

 

 

영국에서 건너온 원조 군수물자인 마틸다 탱크에 페인트로 우리는 연합군이라는 인사의 표시말을 적는 소련 여성

 

   

 

 

 

 

 

 

독일 SS 제3 기갑사단 토텐코프 사단의 포격에 파괴된 소련군의 영국제 마틸다 전차

 

 

 

 

 

 

 

 

 

 

 

 

 

소련군 영국제 마틸다 전차 부대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은 영국으로부터 1,084 대의 마틸다 전차를 양여받았다.

 

소련은 영국으로 부터 무상 원조(Lend-Lease) 로 영국에서 제작된

2394대의 밸런타인 탱크와 캐나다에서 생산되었던1390대의 밸런타인 탱크를 양여받았다.

 

 

 

2차대전을 발발시킨 추축국 독일과 일본의 침략전쟁을 일찍 종결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미국의 프랭크린 루즈벨트대통령과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은 소련과 중국,프랑스등에 전쟁물자의 무상 원조를 계획한다.
그에따라 마련되었던1941년 3월11일 미국과 영국의 Lend Lease Act 정책이 실행되었다.
영국은 동부전선에서 독일과 싸우는 소련을 돕기 위하여 마틸다전차

 -1084대 및 밸런타인 전차-3782대(이중 1388대는 캐나다에서 제작하여 운송)

처칠전차 3형과 4형-301대, 크롬웰전차-6대,테트라크전차-20대,

유니버셜 캐리어 장갑차-2660대( 이중 1348대는 캐나다에서 제작되어 운송됨)를 제공하였다.
이러했던 대량의 군사 원조물자들은 대서양 북해의대단히 위험하고도

험란한 북해항로를 거쳐 소련의 무르만스크항으로 운송되었다.
당시 소련에 대한 미국과 영국의 우호적인 전쟁물자 지원은

한마디로 연합군 세력 국가에 대한 대단히 우호적인 형태를 보여주었고 목숨을 걸고

소련의 무르만스크행 항로에 까지 수송선단을 몰고갔던 영국과 캐나다선원들의 숭고한 면면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독일의 U-보트 들이 연합군의 이러했던 소련에 대한 군사 원조물자의 수송선단을 곱게 보내줄리는 없었다.
그에따른U-보트의 수송선단 공격에 의해 북해 항로의 춥고도 거친 바다를 항행하던 일부 수송선단은

격침되어 마틸다전차는 166대가 북해의 차디찬 바다로 가라앉아버리고 918대만이 소련군에 전달되었다.
또한 밸런타인 전차는 450대가 손실된 3332대가 전달되었으며

처칠전차는 48대가 손실된 253대가 전달되었으며 테트라크전차는 1대가 손실되었고 그외의 차량들은 전량이 전달되었다.
물론 이러했던 영국군의 전차들 보다도 당시 소련군이 대량으로 제작하기 시작했던

T-34/76전차가 성능이 더 우월했지만 소련군은 그런대로 영국이 보내준 전쟁 원조물자의 전차들을 전투에 활용하였다.
소련군에게 있어 영국제 마틸다전차는 별로 달갑지 않는 형태의 전차였다.
그것은 소련의 9월부터 시작되는 가을 장마인 라스푸티챠가 한창일때

러시아 평원의 전지역은 빗물과 진흙이 범벅이 되어 진흙 진창의 깊이가 1m 가량으로

되어타이어 바퀴를 단 전투차량을 기동시키기가 힘든시기로 드러난다.
바퀴규격이 크고 캐터필러 트랙이 넓은 소련군의T-34 전차는 주행시 별 문제가 없었으나

이와는 달리 바퀴 규격이 작고 캐터필러 폭이 좁은 마틸다전차는

진흙 진창에 빠지면 꼼짝도 못해 버려 오도 가도 못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형태로 마틸다 전차의 오지에서의 주행능력이 신통치 않았기 때문에

소련 전차병들에게 있어 영국제 마틸다전차는 큰 호응을 얻을수 없었다.
그러나 몇년뒤 2차대전의 종결이 가까워지자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은

전쟁초에 소련에 대해 이렇게 베풀었던 정책을 후회하게 된다.
그것은 대전 중반기 이후 독일에 대한 반격으로 공산제국 소련의 물밀듯이 점령하는

공격속도에 처칠수상은 적잖이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영국은 1944년 초부터 이미 동부유럽을 완전히 점령하여 공산화시킨

소련군대에게 영국의 앞마당이나 다름없는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소련군이 침공하여 가로채지 못하게끔 영국군으로 하여금 필사의 노력을 펼쳤다.
2차대전초 같은 연합국의 세력으로 손을 잡았던 영국과 소련은 대전 종결후

적성국으로 돌아서 버렸고 5년뒤 한반도에서 터진 6.25사변에서

소련의 괴뢰국가와 반대세력의 입장에서 전쟁을 치르는 형태로 영국의 전쟁물자들을 다시 한번 한국으로 실어 나르게된다.

 

 

소련전선에서 처음으로 볼수있었던 영국제 마틸다 탱크는 1942년 모스크바 근교 전투에서 였다.

소련의 동절기 전투에서 설원주행시 흙과 눈이 범벅이된 얼어붙은 슬러지가 

완충장치와 전차 에이프런 부분에 끼여 고장이 자주 발생했다.

소련군의 KV-1 중전차는 소력은 다소 느렸지만 동절기 전투시 설원 주행이 용이한 광폭 궤도를 장착시킨 전차였다.

그러나 영국제 마틸다 전차는 소련군의 KV-1 전차에 비하여 화력이 미치지 못할 정도로 현저히 약했다. 

 하지만 마틸다 전차는 1942년 1여년 동안의 전투에서는 전선에 많이 투입되었고

전쟁말기인 1944년에는 소량의 마틸다 전차가 전선에 투입되었다.

이 시기에는 마틸다 전차의 화력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강력한 소련군 중전차와 자주포들이

속속 전선에 투입되었기 때문이었기 때문에 빈약한 약체의 영국제 전차를 소련군은

거의 활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소련군은 이 마틸다 전차의 캐터필러를 변경시켜 사용하였다.

그것은 소련의 척박한 통양 주행에 견디게끔 캐터필러를 강화시키는 작업이었다.

우선 캐터필러 하나 하나를 절단시킨뒤 그것을 다시 강철로 용접을 일일이 보강한뒤에

트랙에 튼튼하게 맞물리도록 구조 개선을 취한뒤 사용하였다. 

 

 

 

소련은 영국으로 부터 무상 원조(Lend-Lease) 로 영국에서 제작된

2394대의 밸러타인 탱크와 캐나다에서 생산되었던1390대의 밸런타인 탱크를 양여받았다.

 

 

 

 

 

photo from : Forems.gamesqur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