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쟁 범죄

태평양 전선의 마지막 일본군 오노다 히로오 [Pacific War Last Japanese Soldier Onoda Hiroo]

슈트름게슈쯔 2012. 6. 21. 22:03

 

 

오노다 히로오(오른쪽) - 1944년

 

1922생인 오노다 히로오는 현재 나이가 90살이다





  

 

전쟁이 끝난줄 모르고 29년 동안 필리핀의 정글속에서 숨어지내다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일본의 마지막 낙오병이었던  오노다 히로오  - 1974년 3월 10일 

 

 

일본군 퇴역 소위 오노다 히로오는 일본의 패전이후

1974년까지 무려 29년 동안 필리핀 마닐라 근처 작은 섬 루뱅에서 숨어 지냈다.

당시 그의 나이는 52세였다.

그는 1944년 12월 자신의 말대로 이미 패색이 짙은 전쟁에

살아서 돌아오지는 못할 것이라며 루뱅섬으로 파견되었다.

250여명의 오합지졸에 불과한 풋내기 부대 지휘관으로 부임하자마자

곧 미군의 공격으로 207명이 죽고 43명이 남았다.

이때부터 전쟁이라기보다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생쥐처럼 숨어 지내기 시작했다.

1945년 10월에 "45년 8월 15일에 전쟁이 끝났으니

일본군은 투항하라"는 전단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그러나 오노다는 이를 미군의 속임수로 생각하고 투항을 거절했다.

그해 12월에도 같은 내용의 전단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 때 43명중 대부분이 패전 사실을 받아들이고 투항하여 일본으로 돌아갔고

 오노다를 비롯한 4명만이 투항을 거절했다.

 

1946년 4월에는 이미 투항했던 부하들이 섬 전체를 다니며

"오노다, 어디있나? 나와라. 전쟁이 끝났다.

어서 나와라 하루라도 빨리 일본으로 돌아가자" 라고 부르며 찾아다녔다.

그러나 오노다는 이것도 미군의 흉계로 믿고 거절했다.

이번에는 오노다의 가족이 가족사진과 가족들이 보낸 편지 전단을 뿌리면서 돌아오라고 부르짖었다.

오노다는 이것도 가족들이 살기 위해 당국에 협조하는 것으로 알고 거부했다.

 

오노다는 이러한 도피행각을 벌이면서 루뱅 섬 원주민들 30명을 살해했다.

심지어는 원주민 가옥 전체를 불질러 몽땅 태우는가하면

가축을 죽이고 원주민들을 토막 살해하기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오노다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털끔만치도 반성은 커녕

뻔뻔스럽게도 하는 말이 "그들이 거기 있는게 불행이었다."고 말했다.

 

1950년 이후 해마다 각계 각층에서 찾아가 "일본으로 돌아갑시다.

내 목소리가 들립니까?"라고 부르면서 찾았다.

심지어 필리핀 주재 일본 대사관 이름으로 편지함을 설치하여

고국에서 온 편지들과 신문 등을 넣어두어 보게 했지만 함정으로 알고 접근마저 거부했다.

1965년에는 마을 원주민으로부터 라디오를 약탈하여

직접 패전을 비롯한 모든 뉴스를 들었음에도 돌아오기를 거절했다.

가족들과 고등학교 동창생들까지 동원되어 오노다 구출대책본부를 설치하고

학교 교가를 울먹이면서 부르며 "오노다, 일본에서 형님, 누나가 오셨습니다.

우리 앞에 모습을 나타내 주십시오"했지만 끝내 거절했다.

 

그후 16개월 동안 종적을 감춘 뒤 어처구니없게도

옛 상관이 전해준 '패전했으니 귀국하라'는 특별명령서를 받고서야 투항했다.

그가 29년 동안 루뱅 섬 원주민을 학살한 것이나 피해를 준 것에 따르게 되면

당연히 전범처리하여 교수형이나 총살형에 처해져야 함에도

마르코스 정부는 막강한 일본의 경제력 앞에 오노다에게 아무런 죄도 묻지 않고 사면석방하고 말았다.

루뱅섬의 피해 원주민들은 지금도 이를 두고 증오심을 삭이고 있다.

만약 오노다 히로오가 처음부터 패전에 대한 소식을 듣고 투항했더라면

더 이상의 원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30년 청춘 인생을 그토록 패잔병의 미치광이 같은 생을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본의 일부 우익단체에서는 그를 영웅시까지 하는 어처구니없는 짓들을 하고 있지만

그는 누가 봐도 그는 조그만 섬에서 생쥐같이 숨어 살았던 교활한 일본 낙오병의 인생이었다.

 

 

 

 

 

 

 

낡아서 고쳐입은 남루한 군복을 입고 일본식 경례를 붙이는 오노다 히로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일본도를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에게 내어주며

 

정식으로 항복 의식을 취하는 오노다 히로오 - 1974년 3월11일

 

 

 

비행기편으로 일본 본토에 귀국한 직후의 오노다 히로오

 

 

 

22년후 74세때 필리핀 루방섬을 다시 찾은 오노다 히로오와

 

그에게 피해를 입었던 필리핀 농부 칸디도 트리아(Candido Tria)씨(81세)의 만남 - 1996년 5월 20일

 

 

 

세월이 죄인을 용서해 주는 것인가.

 

아니면 세월이 지나면 죄인의 죄가 어쩔수 없이 면죄가 되는 것인가.

 

일본으로 보면 국가적 영웅일지 모르지만

 

그는 엄연히 국제법을 위반한 전쟁범죄자이자 

 

무고한 필리핀  민간인 30명을 살해한 연쇄 살인범일 뿐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지난 세월의 역사는 그것이 어떠한 형태였든지  

 

시간이 지나도 그 역사의 물줄기는 도도히 흘러서

 

있었던 그대로의 사실을 남기게 된다. 

 

 

 

 

 

 

1973년 필리핀 루뱅섬에 갇혀있다가 일본으로 귀국후

오노다 히로오는 일본이 발전을 하면서 옛날의 좋은 전통을 잃었다고 생각한 나머지

1974년 일본인이 많이 거주하는 브라질로 결혼한 아내 마치에(町枝)와 함께 이민을 갔다.

그 곳에서 그는 목장을 운영 하였는데 섬에서 숨어살았던 경험 덕분에 목장 운영을 잘했다.

그는 규모가 큰 목장 운영으로 돈도 많이 벌어 성공한 이민 일본인이 되었고

이후 브라질과 일본을 오가며 일본의 청소년들에 대한 강연회등의

사회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2001년 8월 15일 광복절에 영국 BBC 방송이 오노다 히로오와 인터뷰를 하고

그 행적을 조사하면서 제작했었던

다큐멘터리 [최후의 황군]은 전세계인들에게 2차 세계대전 당시와 이후의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많은 것을 시사해 주었다.

 

영국 BBC 방송이 그러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의도는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일본 군국주의의 근원이 일본인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상식적인 사상에 깊게 배여 있음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오노다 히로오는 필리핀에서의 홀로의 전쟁을 끝내고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일본으로 귀국한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변해 있는 일본의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그의 눈에 비친 일본은 나약한 미국의 식민지였던 것이었다.

과거의 그들이 지녔던 미덕인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자기 절제등이 온데 간데 없었다고 개탄한다.

한편 그를 숭상하는 무리들도 많았다.

그는 그들로 부터 영웅 대접을 받았다.

 개인의 안녕 따위는 돌보지 않고 천황만을 위하여

기계와도 같이 철저하고 강인한 그의 정신을 갸륵하게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갸륵하다고 보는 그 정신이 진정 어떠한 것인지

세계인들이 공감하게끔 영국의 BBC 방송은 객관적인 잣대로 파헤친다.

오노다 히로오는 필리핀 정글에서 고립되어 전쟁이 끝난 줄도 모르고

그의 부하 셋과 함께 외로운 전쟁을 시작한다.

민간인을 해치는 의미없는 전쟁을 하는 와중에

일본인들이 공중에서 뿌린 삐라와 본국에서 그를 찾으러 온 동료등에 의해

그는 전쟁이 진짜로 끝났음을 깨달으나 그에게는 그것을 받아드릴 수 있는 용기가 없었다.

일본이 졌다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는 수많은 민간인을 살해함으로써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부하들이 죽어 혼자가 되지만 그는 오히려 더 홀가분해 한다.

자기 방식대로 전쟁을 하는데 걸리적 거리는 존재가 없어졌다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끝내는 한 일본인이 우연히 그를 만났는데

그에게 투항을 권유하자 천황의 명령이 없이는 항복할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오노다를 구할 목적으로 항복하라는 천황의 명령서를 가지고 돌아와 그를 귀국시킨다.

이러한 형태를 보면 그것은 전 시대 일본의 허황된 천황 이데올로기로

타국민과 타인 뿐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그토록 학대하면서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고 그러한 사람을 영웅시 하는 일본 사회의 한심한 모습을 잘 보여 준다.

 

 

천황의 이름으로 라는 말도 안되는 비인도주의적인 명분으로  

수많은 중국인과 한국인및 동남아시아인들이 학살을 당하였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에 의해 죄없는 필리핀인들이 비명에 살해를 당하였다.

아무 실익도 명분도 없는 이미 끝난 전쟁에 고립된 오노다는

자신의 일생을 필리핀 정글에서 썩이며 허비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 하는데

그것은 그의 행위를 환호하며 자랑스러워 하는 비슷한 족속의 동포에 의해 더욱 고양된다.
영국 BBC 방송 다큐멘터이의 마지막 장면은 자기 동생을 잃은 한 필리핀인 농부의 증언으로 끝난다.

"제 동생은 야자 나무에 올라가 있었는데 어디선지 모를 총탄에 허벅지를 맞고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땅바닥에서 그가 지녔던 야자 따는 칼로 난자를 당해 죽었습니다.

머리와 몸이 따로 있었죠.

천인공노할 놈들입니다.

그들을 결코 용서할 수 없어요."

2차 세계대전의 패전후 자본주의에 의해 다시 세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에 대하여 필리핀 정권은 개탄스럽게도 일본과의 유화정책으로

전후 필리핀인 30명을 살해한 범죄자인 오노다 히로오를 사면하고

대통령은 그를 초대했는데 매우 우호적인 분위기였다. 


 

 

 

 

 

photo from : Histom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