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스페셜

일본학자 논문에도 ‘독도는 한국 땅’ 日 정치권·언론이 일본 국민 눈·귀 막고 있다 - 김영호

슈트름게슈쯔 2012. 10. 22. 16:01

 

 

[김영호 단국대 석좌교수 인터뷰] - 2012년 9월 3일

 

 

 

“‘독도는 일본 영토가 아니라 한국 영토다’라는 연구논문이 일본에 10여편 나와 있다.

 독도에 관한 무게 있는 논문이 이 정도라는 건 결코 적은 게 아니다.”
   
   김영호(72) 단국대학교 석좌교수는 기자가 모르는 얘기를 들려줬다.

 김 석좌교수는 일본 도쿄대 교수(자유교양학부)를 지낸 일본통.

 경제학자로 경북대에서 오래 일했으며 김대중 정부 당시인 2000년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냈다.

 이후 유한대 총장(2003~2011년)으로 일했다.

태풍 볼라벤이 수도권을 할퀴고 지나간 8월 28일 경기도 용인 죽전의 단국대 캠퍼스 연구실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가지무라 히데키(梶村秀樹)라는 도쿄대 역사학과 교수가 있었다.

 그는 장문의 독도 논문을 썼는데 ‘독도는 따져보니 한국 영토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논문 끝에 자기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놨다.

 자기가 쓴 논문에 대해 할 말이 있으면 여기로 연락하라는 것이었다”라고 했다.

김 교수는 연구실 한쪽에서 ‘동아시아자본주의사론’이라고 일본어 제목이 쓰여 있는 책을 갖고 와 보여줬다.

저자는 호리 가즈오(堀 和生) 교토대학 교수.

 김 교수는 “호리 교수는 일본 외무성 관리가 쓴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논문을 보고 ‘재조사해 보니 뻥이더라.

독도는 일본 것 아니다.

한국 것이다’란 내용의 논문을 썼다”고 말했다.
   
   
   일본 어민 한국에 세금 냈다
   
   김 교수는 “일본이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들고 간다고 하는데,

한국학자들 이야기는 안 들어도 좋다.

하지만 일본의 대학에 있는 순수학자들, 관청에 붙어먹고 있는 사람들 말고,

순수학자들로부터 먼저 사실을 좀 들어야 한다”면서

“일본 정부가 순수학자들의 말을 틀어막아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의 허구성을 시대별로 나눠 설명했다.
   
   “일본의 독도 영토 주장 근거 중 하나가 ‘과거 일본 어민들이 강치를 독도에서 굉장히 많이 잡아갔다,

 즉 어민들의 생업의 근거지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당시 어민들이 울릉도, 독도에 갈 때 도해(渡海) 면허를 받아야 했고

그리고 한국 측에 세금을 내고 잡아갔다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

 중요한 사실을 숨기고 있다. 이런 내용이 일본의 공문서에 남아 있다.”
   
   세금을 냈다는 건 일종의 입어료를 냈다는 것이고,

 그건 일본 어민들이 독도가 한국 영토인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1905년 일본이 독도를 영토로 편입하는 과정에도 문제가 있다고 했다.

“일본 시마네현이 독도가 무주물(無主物)인지를 확인하는 공고를 냈다.

‘주인이 없는 무주물이라면 일본 것으로 한다.

이의가 있느냐’고 시마네현이 했다.

그런데 일개 현이 낸 공고를 알게 뭔가?

당시는 한국이 을사보호조약으로 외교권을 곧 뺏기는 시점이다.

한국이 어떻게 이의 제기를 하겠나?

또 독도를 ‘시마네현의 다케시마다’라고 일본 외무성이 공시할 때 일본 내무성이 반대했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의 세 번째 근거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내용이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태평양전쟁 종전 협정.

김 교수는 “일본이 반환해야 할 도서, 영토에 독도가 원래 들어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문서에 울릉도, 제주도 다 들어 있는데 독도만 빠졌다.

 미국의 대표인 덜레스와 일본 요시다 총리가 대학 동창 친구였다.

그때 모종의 장난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독도가 샌프란시스코조약에서 일본이 반환해야 하는 영토에서 빠졌다고 해서 일본 영토인 건 아니다.

샌프란시스코조약문에 그렇게 나와 있다.

일본 정부는 이 점도 자국민에게 알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보자.

 일본이 독도가 자국 영토라고 유력한 근거로 내세운 것들이 전부 근거가 없는 게 된다”고 말했다.
   
   
   우익들의 영토 내셔널리즘
   
   김 교수는 “지금까지 내가 말한 건 독도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은 다 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일본이 이렇게 근거가 약한데 고자세로 저렇게 강력하게 주장한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일본은 독도, 러·일 간 네 개 섬, 중·일 간 분쟁의 섬,

 이렇게 세 개 영토분쟁지를 갖고 있다.

 김 교수는 “일본이 독도에 대해 세게 나오면,

이로 인해 중국 및 러시아와의 영토 분쟁에서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독도의 영유권 주장은 다른 두 개 영토 분쟁에 비해 가장 근거가 약하다.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이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 어떻게 되나.

중국과 러시아가 당장에 ‘봐라,

일본의 주장은 잘못으로 드러났다.

우리와의 영토 분쟁도 마찬가지다’라고 나온다.

결국 다른 영토 분쟁지에서 일본은 설 땅을 잃게 된다.”
   
   그러면 현재 일본 정치권과 언론은 왜 그럴까?

왜 이들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합창하고 과거사·위안부 관련 사과도 뒤집겠다고 할까?
   
   “1980년대 초반 일본에 갔는데, ‘북방 네 개 섬 반환하라’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반환요구 운동이 대단했다.

 일본은 이때부터 조금씩 독도 문제를 들고나왔다.

일본이 외교 계통에서 수위를 높이기 시작했다.

당시 나의 일본 친구들은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느끼는 사람이 일본에 거의 없다고 했다.

정부나 매스컴에서만 말했다.
   
   영토 문제는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기 가장 좋은 이슈이다.

러시아가 워낙 강경하니 일본이 바위에 계란 치는 기분이 든 거다.

우익 내셔널리즘을 키우려면 또 하나 일본의 피를 들끓게 하는 게 있어야 하는데

북방 네 개 섬은 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래서 독도를 내세우려고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당시 받았다.

그런 내용을 1990년대 조선일보에 칼럼으로 썼다.
   
   칼럼이 나가니 일본대사관에서 연락이 왔다.

그렇지 않다고 했다.

자료도 보내왔다.

그런데 요즘 보면 어떤가.

일본의 우익이 설 자리를 마련하려고 하는지, 영토 내셔널리즘을 부추기고 있다.

내가 조선일보에 15년 전에 썼던 게 맞아들어가고 있다.”
   
   
   일본 시민들 멋도 모르고 춤추는 격
   
   김 교수는 “요미우리신문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아사히신문은 (객관적으로 보도할 것으로) 기대했다”며

일본 신문에 대해 실망감을 표시했다.

그는 일본 아사히신문 상임연구위원으로 일했었다.

 아사히신문이 만든 21세기포럼이 있었는데 김 교수는 아시아에서 선정된 세 명 중 한 명이기도 했다.

 다른 두 명은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아웅산 수치 미얀마 정치지도자였다.

김 교수가 도쿄대 교수로 있을 때였다.
   
   “얼마 전 아사히신문에 독도 문제를 쉽게 해설하는 기사가 실렸다.

그림도 그렸더라.

 그것만 보면 내가 일본 국민이라도 분개하게 되어 있다.

한국인들이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게 되어 있다.

 아사히신문의 와카미야 요시부미 주필은 독도의 한국 영유권을 인정해주고

그 주변 해역은 공동개발하자는 글을 발표했다가 우익의 표적이 되었던 사람이다.

그 친구가 주필인 신문조차 한국인 괘씸하다는 기사가 나온다.

 일본 정치권과 언론이 일본인을 진실로부터 외면하게 하고 있다.

우익 내셔널리즘의 포로로 만들었다. 일본 시민은 멋도 모르고 춤추고 있다.”
   
   - 아사히는 왜 그런가. “지금은 전보다 보수화됐다.”
   
   - 일본 사회 우경화를 보여주는 건가.

 

 “일본이 경제가 가라앉으니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일본인이 굉장히 자신감을 잃었고, 국제사회 1부 리그에서 2부 리그로 강등된 듯한 분위기다.

 아사히신문 편집위원으로 있다가 지금은 와세다대학 교수로 있는 오다가와가 있다.

그 양반이 며칠 전에 ‘이게 이성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자기들은 뭘 발언하고 싶어도 이성적이 아니다’라고 말하더라.”
   
   
   일 정부와 양심적인 시민 떼놓고 봐야
   
   김 교수는 일본을 ‘우물 안 고래’라고 표현한다.

 “내가 만들었는데, 일본에서 유행어가 됐다.

일본은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우물 안 고래’라는 말이다.

 1인당 GDP나 기술 수준으로 보아 일본은 ‘개구리’가 아니다.

 하지만 발상과 사회적 틀(social framework)은 좁은 ‘우물’이다.

우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이 언젠가 신년호 신년사에서

한국의 김영호 교수가 일본을 ‘우물 안 고래’라고 말했다고 쓴 적이 있다.”
   
   “일본 정부와 일본 언론이 일방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시민에게 제공하고 있다.

시민을 우물에 갇히게 하고, 바보로 만든다.

일본 정부는 독도·정신대 관련 논문을 쓴 일본의 수많은 양심적 지식인을 외면하고 있다.

일본 국민을 역사관의 포로로 만들고 있다.”
   
   김 교수는 일본이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새로운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나라를 끌고 나갔어야 하는데,

전전의 가치관을 가진 인사들이 그대로 일본의 주류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태평양전쟁 종전 이후 소련과 미국이 대치하는 냉전시대가 닥치면서

과거 한국을 식민지 침략한 사람들과 태평양전쟁 전범자들의 죄를 제대로 묻지 않았다는 것.
   
   김 교수는 일본 정부와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지식인을 떼놓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천황이 ‘통석(痛惜)의 염(念)’이라는 표현을 써서 사과했다.

그러면 일본 정부는 ‘천황이 한 말을 왜 안 따르느냐’ 하는 식으로 우리가 정치권을 공격해야 한다.

 일본 정부를 천황으로부터 떼놓고, 또 양심적 시민으로부터 떼놓아야 한다.”
   
   
   불법 지배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해야
   
   김 교수는 또 일본에 대해 ‘식민지배 범죄’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신문들이 일본은 ‘전범 국가’라는 표현을 쓰는데,

한국에 있어 일본은 전범 국가라는 게 문제가 아니다.

일본은 우리와 전쟁을 한 나라가 아니다.

한·일 간에 제일 중요한 건 식민지 범죄다.

식민지 범죄가 큰데 냉전하에서 묻지를 못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책임을 묻는 바람이 불었다.

2002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더반에서 유엔 주최로 인도에 반한 죄 세계회의가 열렸다.

더반세계회의라고 한다.

이때 물어야 한다고 한 게 식민지 범죄이다.

우리가 이 입장에 서야 한다.

그래야 한·일 간의 문제가 해결된다.

식민지를 만든 죄는 전쟁을 일으킨 죄보다 더 심각하다.
   
   세계적으로 봐서 그렇다.

모든 유럽국가가 아프리카·중동 식민지배를 사죄하는 결의안을 냈다.

프랑스·영국·벨기에가 다 내놨다.

미국은 하와이 강제 점거까지 사죄했다.

태평양전쟁 때 미국 내 일본인들을 분리 수용한 것에 대해

 미국 의회가 사과문을 결의하고 미국 대통령이 서명했다.

개개인에 2만달러 보상도 했다.

최근에는 그 당시 중국인의 인권을 무시했다고 미 의회가 사죄 결의안을 냈다.

 그런 것을 냉전 싸움으로 못했는데 냉전 이후 1990~2000년대에 흐름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런 기류에서 일본에서는 1995년 일본 무라야마 총리 담화가 나온다.

 일본이 한국에 사죄한 담화 중 가장 중요하다.

처음으로 한국에 대한 지배는 식민지배이고, 강제적인 것이고, 한국인의 의사에 반한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무라야마 담화도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치고는 제대로 된 게 아니다.

 첫 반성이라는 점에서 평가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식민지배에 대한 포괄적 담화였다.

세계적 흐름으로 보아 일본은 지금 위안부, 독도의 불법 지배에 이어 한국에 대한 불법 지배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

사죄 담화를 해야 할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 제대로 된 사과란 어떤 걸 말하는지.

 

 “일본이 과거에는 ‘한국 지배는 한국인의 요구에 의해, 아시아 평화를 위해 이뤄졌고, 합법적이고 정당했다’고 했다.

무라야마 담화로 말미암아 비로소 ‘일본의 한국 지배는 비인도적이고,

군사적 강제에 의한 식민주의적 행위였다’로 바뀌었다.

그러나 여전히 합법적이었다는 주장이다.
   
   합법적이면 어떻게 되나?

독립운동가는 다 불법적이고 정신대 문제도, 합법적 통치 과정에서 생긴 일이 된다.

사과하는 건 그야말로 그저 통속적 수준의 사과다.

 그런데 요즘 우리가 요구하는 건 ‘식민통치는 불의부당할 뿐만 아니라 불법적이다.

한·일 지식인, 학자 1000명이 2010년 한국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한 건 그게 원천무효이며, 불법이다’란 것이다.

불법이 되면 정신대·위안대 문제에 대해서는 무조건 사과를 해야 한다.

불법행위를 했으니 식민지배에 관련된 일본인 관리는 범죄로 처벌이 가능하다.”
   
   김 교수는 “가지무라 히데키 교수가 독도 관련 논문을 쓴 데 내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가지무라는 독도 논문을 썼을 때 ‘나는 일본을 사랑한다.

 하지만 일본의 명예를 위해 이 논문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1989년 그가 죽었을 때 나는 긴 추도문을 썼다.

나는 추도문에서 ‘한국에서 독도가 일본 것이라는 자료가 나오면 내가 일본 것이라고 쓸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패권주의화를 막기 위해서도 일본의 패권주의 청산이 중요하다.

역사적 화해가 있어야 한다.

 아시아 시민이 화해하고 교류하는 시대로 만들어야 한다.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고 이렇게 말했다.

 ‘한국을 위해서만이 아니고, 일본 국민을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다.

’ 그래서 일본인을 내 편으로 끌여들였다.

 독도·위안부 문제를 일본인에게 제대로 알리게 되면

일본 시민들이 진실의 편을 들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from : Cg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