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미국이 소련으로 보낸 고기 통조림 투손카[WW2 U.S Land-Lease Soviet Union Meat Can Tushonka]

슈트름게슈쯔 2012. 10. 30. 17:53

 

 

잘게 갈아서 통조림에 채워 넣을 고기 더미를 다듬는 미국 여성

 

 

 

잘게 썬 고기를 통조림에 채우는 작업

 

 

 

2차 세계대전당시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군사물자 통조림 제조공장에서 일하는 미국 여성들


 

 

소련으로 보낼 랜드-리스 품목으로 완성된 고기 통조림을 박스에 담는 미국 여성

 

 

 

미국에서 소련으로 보낸 러시아아로 적힌 고기 통조림 투손카(Tushonka)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서 랜드 리스로 원조받은 고기통조림 투손카(Tushonka)는 소련 군대가 제일 좋아한 품목이었다.

 

 

 

임자는 따로 있었네 - 노획한 소련군의 미제 고기 통조림을 보며 기뻐하는 독일군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스탈린은 영국의 처칠 수상과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에 대하여

유럽 서부에 독일군을 공격할 전선을 하나 더 형성시키고 더 많은 전쟁 물자를

소련으로 보내줄것을 계속해서 요구한다.

영국은 독일의 상륙을 막는 영국 본토 항공전(Battle of Britain)과

북아프리카전선에서도 힘이 벅찰 지경이었지만 미국은 달랐다.

국민 여론의 반대로 중립을 선언하고 진주만 기습 전까지 실제로 그것을 지켰던 미국은

 전투에 참가하지 못하는 대신 엄청만 군수 물자를 연합군과 소련을 지원하게 된다.

이것이 대륙간 무기대여법, 랜드리스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독일군의 지속된 공격에 따라 소련은 이미 한계에 봉착해 있는 형태였다.

이에 따라 소련의 군수물자 생산 공장들은 모조리 분해하여

철로를 이용하여 우랄산맥 너머로 모두 이동시켰고

 전선에서 수백만의 소련군 병사가 희생되어감에 따라

 각 전선에 재 배치시킬 지원병 인원의 모집에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소련은 당장 철도와 장비가 부족했다.

소련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그야말로 방대한 물자였다.

소련이 동부전선에서 몇년은 더 버티게 해준 원동력이나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수치로만 나열해보면


전차 7000여대
경차량 110000여대
지프 77000여대
전쟁중 사용된 철도선로의 60%
기관차1100량
석유 수백만갤런과 밀 수천만톤, 통조림과 각종 피복, 구호물자 등등


수많은 물자가 랜드리스에 따라 알래스카와 시베리아를 거쳐 소련군에게 전달되었다.

결국 소련군은 셔먼과 잭슨,그란트,스튜어트,울버린 전차등을 핀치 히터격으로 전투에 투입시키고 

케첩에 버무려진 콘비프 통조림을 먹으며 독일준에게 반격을 가하게 된다.


랜드리스의 가장 큰 의의는 미국이 독일군과 맞서 싸우는 소련으로 하여금 

모든 힘을 군수물자 생산에 전념하게끔 만들었다고 할수있다.

소련의 공장들은 전쟁에 필요한 항공기와 탱크및 야포와 포탄의 군수물자를 만들기 위해서

모두 가동되었고 그외의 물자들은 당장 부족한 부분만 생산하면 되었다.

나머지는 미국이 지원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1943년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공세에 나선 소련군은 하루에 수백 km를 전진하기도 했는데

 이때 소련 병사들을 실어 날랐던 것은 미국에서 지원된 경량화 차량들이었다.

소련병사들의 일부는 탱크를 타고 이동했지만 실제로

소련군 병사들을 대대적으로 실어날랐던 차량은 미국의 GMC 트럭이었다.


이 물자들은 가장 중요한 고비에 소련군을 뒷 받침 해주었고

독일군이 끝내 점령 하지 못했던 베를린-모스크바 연결 전선을 소련군이 실행 할 수 있게 되었으며

결국 그 전쟁물자들의 일부는 돌고 돌아서 한국전쟁 6.25 동란시에는 북한군이 소련에게 다시 지원받아

한국군과 미군을 향해 쓰여지게 되는 아니러니한 역사가 벌어지게 된다.


랜드리스는 소련에게만 이루진것이 아니고 영국 프랑스등 연합 소속의 모든 군대에게 실행 되었다.

U보트의 울프팩 작전으로 인한 연합군 선단공격으로 

해외 식민지에서 보급을 받을 수 없어 말라가던 영국을 구한것도

 미국의 랜드리스였고 비시 정부에서 벗어나 자유 프랑스를 위해 싸우던 프랑스군을 지원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동안 미국의 산업 생산력은 그야말로 엄청났었다. 

그중 한가지 예를 비교해 보자면

일본군이 2차대전 내내 생산한 군함의 총 톤수는 약 400만톤 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1943년 한해동안 취역시킨 군함의 총 톤수는 1100만톤 이었다.
미국이 동원한 병력은 공식적으로 800만, 비공식적으로 1100만명에 달한다.
2차 세계대전은 지구 최대의 전쟁이었자 유럽에서는 대단히 치열한 전투가 많이 벌어졌다.

 사실 그러한 전투들의 승패를 가른것은 그 뒤에 숨어있는 보급에 따른 물량전과 첩보전 이었다.

역사에 만약이란 단어란 존재할 수 없듯이 독일과 일본은 산업대국 미국에 맞서 물량전에서

상대가 될수가 없었다.


소련에 대한 미국의 랜드리스는 스탈린그라드전투 이후부터 없어지고 

소련은 그 물품대금을 모두 금으로 미국에 지불했다.

 


그러나 소련은 랜드-리스 대금 갚기를 미루고  미국이 총잔액의 10%청구한 것도 안 갚았었다.

그것도 1970년까지 한 푼도 갚지 않고 있었다.

영국이 2%이자를 내가며 차곡차곡 갚는 동안 소련은 무지막지할 정도로 갚지 않았다.


소련이 미국의 랜드리스 대금을 금으로 대금 지불한것은 1941년 10월분 뿐이었다.

  당시 미국은 소련에 대하여 달러로 100억 달러 가량의 지원을 했었다.

소련은 1941년 6월부터 10월까지 분만 금으로 결제하고 나머지는 갚지 않았다.

랜드리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건 1942년 말경 이었다.

결국 110~130억 달러분에 달하는 랜드리스 물자는 외상으로 받은 입장이었고

전후 1947년에 미국은 소련은 못 살고 또 동맹국으로서 전투에 간접기여했다는 이유로

13억 달러를 청구했는데 소련은  1억 7000만 달러만 내겠다고 배짱을 부리다가

 나중에 7억 2000만불 내겠다고 협상을 했었다.

그것도 못 갚아서 러시아가 2001년에 6억 달러만 내고 종결지었다.

소련은 미국에 대하여 랜드리스를 그냥 원조 받은 셈이었다. 

 

 

 

 

 

 

 

 

 

photo from : englishruss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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