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소에서 다시 만난 헤르만 괴링과 루돌프 헤스[Nuremberg trial meeting again Hermann Goering & Rudolf Hess ]

슈트름게슈쯔 2013. 3. 1. 15:17

 

 

1938년 나치 뉘른베르크 집회때의 괴링과 헤스

 

 

 

루돌프 헤스가 독일에서 스코틀랜드에 타고간 BF-110 전투기의 파괴된 잔해

 

 

 

 

 

1941년 5월 나치 독일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의 최측근 인물중의 한사람이었던

루돌프 헤스는 홀연히 혼자서 BF-110 전투기를 몰고 영국 스코틀랜드로 날아 갔다.

그것은 영국이나 독일 양국에 있어서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히틀러를 대신하여 영국과 강화를 맺기 위하여 벌인 일이었다지만

 적성국에 홀로 강화를 맺기위해 전투기를 타고 간다는

그러한 독단적인 행동은 그리 흔치 않는 일이었다.

헤스는 전범으로 체포되어 영국의 감옥에 유치된지 4년후 독일로 이송되어

2차 세계대전 승전 연합국에 의해 열린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 나치의 수뇌부 전범으로  회부 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종신형의 판결을 받게 된다.

 

 

 

뉘른베르크 감옥에서 미군 병사의 전투용 식기인 메스킷에 담긴 배식을 받아먹는 헤르만 괴링 - 1945년

 

 

 

독일 뉘른베르크 나치 전범 재판소에서 미군 헌병대 병사들의 감시하에 배식을 받은 루돌프 헤스 - 1945년

 

 

 

 루돌프 헤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주요 인물이자 아돌프 히틀러의  부관이었다.

그는 뮌헨 폭동에 참가했다가 체포되었고 히틀러와 같이  같이 구금되었다.

당시 감옥에서 히틀러가 구술한 내용을 받아적어 나의 투쟁이라는 책으로 엮어 내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를 계기로 히틀러의 최측근이 되어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나치당이 집권한 후에는 당과 정부의 2인자인 부총통에 임명되었다.

그는 유태인과 비 아리안  인종들을 합법적으로 탄압하기 위한 뉘른베르크 법의 입안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그러나 같은 극우 민족주의자였던 히틀러마저 불편해할 정도로 광신적인 기행을 종종 보이면서

 점차 권력을 잃게 되었고, 영국 본토 항공전 시기에는 눈에 띄게 불안감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그는 1941년 5월 10일에 화평안을 전달한다는 이유로 직접 전투기를 조종하여 영국으로 향했으나,

 영국군에게 사로잡혀 종전 때까지 전쟁 포로로 억류당했다.

루돌프 헤스의 영국행은 많은 나치당 지도자들을 당혹스럽게 했으며, 결국 정신 이상으로 얼버무리며

그의 흔적을 제국 내에서 가능한한 없애려고 했다.

헤스의 자리는 마르틴 보르만이 이어받았고, 독일에 남아 있던 헤스의 가족들은 엄중한 감시를 받으며 지내야 했다.

 종전 후에는 여타 고위층 인사들과 함께 뉘른베르크 재판에 기소되었으며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두 기인(奇人) - 헤르만 괴링과 루돌프 헤스

 

 

 

2차 세계대전 종결후 독일 뉘른베르크 집회가 아닌 전범 재판소에서 다시 만난 헤르만 괴링과 루돌프 헤스 - 1946년  

 

 

 

photo from : Histom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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