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일본 전함 야마토(大和)의 침몰 Imperial Japanese Navy Battle Ship Yamato final Explode sink

슈트름게슈쯔 2013. 4. 9. 20:11


  



 

태평양전쟁 말기 오키나와 근해에서 미 해군 어벤져 뇌격기와 돈트리스 급강하 폭격기 

편대의 공중 폭격을 피해 도망가는 일본 해군의 전함 야마토 - 1945년 3월 7일 



 


 

 

 

 

 

 

오키나와 근해에서 미군기의 집중 공격으로 받고 함체 내부의 화약고가 연쇄 대폭발을 일으켜 침몰하는 전함 야마토- 1945년 3월 7일






 

 

야마토 다마시이(大和)란 단어는 일본인 그들이 소위 말하는 대화혼(大和)이자

텐노오 사상에 도취된 그들 민족을 한데 묶는 단결된 정신을 뜻하였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해군의 거대 전함 야마토는 일본의 번국 가운데 하나인 

야마토노쿠니(大和国)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야마토의 자매함인 '무사시'와 '시나노'의 어원 또한 그러하다. 

무사시는 무사시노쿠니(武蔵国), 시나노는 시나노노쿠니(信濃国)에서 따왔다. 

태평양전쟁 발발전 일본해군이 자국산 전함의 이름을 지을때는 주로 옛 일본의 번국에서 따왔다

소위 일본인들의 혼이라는 야마토 다마시이라는 단어가 인용된 이 전함은

태평양 전쟁중 그 존재만으로도 일본군의 사기를 북돋워 주는 전쟁무기였다.
이 전함의 대표적인 특징은 18.1 인치의 460mm의 대형 함포 9문을 장비해 갖추고 있었으며

전장은 263m, 선폭은 38,9m,추진력은 15만마력 이상의 각종 포 70여기로

무장을 장비한 당시 세계 최대의 거함이었다.

이것은 20세기 초반의 거함 거포 경쟁의 산물로써 당시의 전술상 거포의 함포 사거리는

주포의 구경이 커야 사거리가 길어서 해전에서 이길수 있는 조건에서 비롯된 입장이었다.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꾸(山本五十六)의 기함이었던

이 전함은 근 3 여년에걸쳐 1937년부터 쿠레 조선소 공창에서 건조하기시작하여  

1941년 12월 16일 진수식을 가졌다. 

야마토는 그 비용 또한 대단한 거액을 들여 제작한 전함이었다.

야마토의 건조 비용은 당시 금액 기준으로 1억4287만엔(시나노 기준)이었다.

이는 당시 일본의 국가예산의 1% 수준이며 

당시 일본의 교사의 월급이 50엔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1척에 적어도 1조엔(10조원)씩 쏟아붇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이것은 야마토 단 한 척으로 일본의 고속철도인 

도카이도 신칸센(東海道新幹線) 전체 구간을 건설가능한 엄청난 금액이었다. 

참고로 비슷한 시기에 건조된 다른 일본의 대형함들과 비교해보자면

쇼카쿠급 항공모함이 당시 금액으로 8500만엔이었고 

다이호가 1억엔, 운류급 항공모함이 9000만엔정도였다
당시 야마토 전함의 제작에 필요했던 철과 구리등의 재료는

 한반도 조선 북부의 무산 광산등 여러곳에서 지하자원을 수탈하여 일본 본토로 

수송해서 날랐던 철광석등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태평양 전쟁 말기 오키나와 앞바다에서 가라앉은 일본 전함 야마토(大和)는

일본 해군에 의한 전함의 카미카제 공격이었다.
필리핀 레이테 해전 이후 히로시마 인근 쿠레항에 정박해 있었던 야마토는

1945년 3월 6일 6대의 순양함과 같이 선단을 이루어 오키나와로의 옥쇄 돌격에 나선다.
패색이 완연했던 전쟁에서 쓸모없었던 배수량이 6 만 5천톤이 나가는 엄청난 거함은

 미군기를 상대로 연신 대공포를 쏘아 올렸지만 해전사상 일본의 어쩔수 없는 무모한 전투였다.
미군 항공모함 베닝턴과 호넷에서 발진한 132대의 전투기와

98 대의 뇌격기 50 대의 급강하폭격기는 야마토 선단 사냥을 나선다.
이미 미군에게 먼저 격침당했었던 무사시함 계열의 자매함이었던 야마토는 1번함 무사시나

 3번함이었던 시나노 항공모함이나 그 마지막 말로는 보잘것 없었고

그나마 야마토만이 미군을 상대로 승산없는 자살공격을 감행했다.
카미카제식의 특공을 각오했던지라 귀환한다는 가정에서의 연료를 싣지 않았고

오키나와 까지의 연료만 실어 외길공격에 나섰던 것이다.

일본 해군의 상징이자 자존심이었던 세계최대의 거함이었던 야마토는

 태평양 전쟁 내내 일본 해군의 상징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결국 1945년 3월7일 동지나해 앞바다에서 미군기의 공격으로

2시간여에 걸친 전투끝에 야마토 선단은 6대의 순양함과 같이

 30 여분 만에 태평양 밑으로 가라앉고 말았던 것이다.
전투중 야마토는 미 해군 TBM 어벤져 뇌격기에서 발사한 14발의 어뢰와 수십발의 폭탄을 맞았는데

돈트리스 급강하 폭격기의 1탄이 야마토의 1번 화약고에 명중하여 연쇄적으로 대폭발을 일으켰다.
이때 피어오른 엄청난 화약 연기는 160km 떨어진 일본 남부의 큐우슈우에서도 목격되었다.
전함 야마토의 승선 인원 3000명중 거의 모두가 전사하였으나  

269명 만이 살아 남았으며 이 전투로 미군은 단 12명만이 전사하였다.
야마토 선단의 오키나와 방어 자살 공격은 한마디로

일본 군대의 무모한 본보기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작전이었던 것이다.

구 일본 해군이 건조한 인류 역사상 사상 최대의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이었던 

야마토는 일본 해군의 팽창을 옥죄던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과 

런던 해군 군축조약에서 탈퇴한후 기어이 조약의 제한을 무시하고 건조한 규격 외의 초거대 전함이었다

하지만 태평양전쟁 말기에 전함 야마토는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 사이를 

오고갈 왕복 연료조차도 없는 세계최대의 카미카제 특공 전함으로 변했다

그러한 일본 거대 전함 야마토가 미 해군의 눈에 비쳤던 형태는 

결코 두려움을 주는 존재는 될수 없었고 덩치만 컷던 일본 해군의 공갈포였던 것이다.

 

 

 

 

photo from : Histom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