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영국군에게 붙잡힌 베르겐 벨젠 강제수용소 소장 요제프 크라머[WW2 Later British Army Captured Bergen Belsen War Criminal Josef Kramer ]

슈트름게슈쯔 2013. 4. 14. 15:08

 

 

나치 독일의 악명 높았던 생체 실험 의사였던 요제프 멩겔레(왼쪽)와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장 루돌프 회스(가운데)와 그의 부관 요제프 크라머(오른쪽)

 

 

 

 

첼레 수용소에 잡혀온 베르겐 벨젠 강제수용소의 소장이었던 요제프 크라머 - 1945년 3월 17일

 

 

제 2차 세계대전 말기였던 1945년의 초기까지 악명 높았던 독일 베르겐 벨젠 수용소의 소장은

 벨젠의 짐승으로 불린 요제프 크라머(1906~1945)였다.

그는 1931년 나치당에 입당하고 다음 해 나치 친위대에 들어간 후 수용소 관리에 지원했다.

그 후 그는 다카우 수용소를 시작으로 악명 높은 절멸 수용소를 두루 거쳤다.

아우슈비츠에서는 소장 루돌프 회스의 보좌관으로 있으면서 유태인의 처리는 물론 강제노동을 이용한

 합성석유 혼합연료와 합성고무 생산 업무를 감독하기도 했다.


그의 마지막 부임지인 베르겐-벨젠 수용소는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생지옥이었다.

 그곳에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처럼 가스실은 없었으나 독일의 강제 수용소 중에서 가장 비참하고 지저분했다.

그러한 관계로 유럽 각지에서 강제로 끌려와 매일 굶어 죽는 유태인들이 속출했다.

그것은 요제프 크라머가 포로들의 식량비를 빼돌렸기 때문이었다.

베르겐 벨젠 강제 수용소에서는 간수가 사나운 셰퍼트를  몰고 다니며 수용자를 물어죽이는 일도 다반사였다.

전쟁 말기에는 수용 능력의 8배가 넘는 8만8천여 명을 강제 수용시켰던 결과

 티푸스가 창궐하여 매일 250~300명씩 숨져 나갔다.

그리고 그러한 시체들의 처리를 못 하여 쥐가 사람의 시체를 먹고 산 사람까지 공격했다.

 이렇게 해서 숨진 유태인들은 3만 7천여 명에 달했다.

1945년 3월 독일의 베르겐 벨젠 강제수용소는 영국군에 의하여 해방된다.

요제프 크라머는 1945년 3월 영국군에게 체포되어 첼레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유태인들을 학살시킨

인종 범죄에 대한 재판 이후 1945년 12월 13일 베르겐 벨젠 강제수용소의 간수 10명과 함께 교수형에 처해졌다

 

 

 

 

 

연합군의 공격이 쇄도해 들어 오자 베르겐 벨젠 수용소를 탈출후 독일군 패잔병 무리에 섞여 도주해 다니다

 

영국군에 의해 붙잡혀 독일 첼레(Celle) 포로 수용소로 유치된 베르겐 벨젠 강제수용소의 소장 요제프 크라머 - 1945년 3월 17일 

 

 

 

영국군에 포로가 되어 나란히 선 악명 높았던 베르겐 벨젠 수용소의 여간수 이르마 그레제와 소장 요제프 크라머  

 

베르겐 벨젠 수용소의 소장이자 별명이 벨젠의 짐승이었던 요제프 크라머는

유태인들을 대량 학살시킨 인종 범죄를 저지른 죄목에 따라 1945년 12월 17일 교수형에 처해진다. 

역시 베르겐 벨젠 강제 수용소의 악명 높았던 여간수였던 이르마 그레제 또한 

 1945년 12월 13일 독일 하멜른에서 재판 이후 유태인들을 학살한 범죄로 교수형에 처해진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베르겐 벨젠 수용소의 유태인 학살 인종 범죄자였던 희대의 악녀(惡女)와 악한(惡漢)

 

  - 이르마 그레제와 요제프 크라머  : 1945년 7월 8일  

 

 

 

 

photo from : Histomil.com

           whale.to

              k0nsl.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