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

월남전 당시 맹위를 떨쳤던 미군의 다련장 무반동포 M 50 온토스[Vietnam War U.S Army 106mm Multiple Selfpropelled Assault Vehicle M 50 Ontos]

슈트름게슈쯔 2013. 5. 23. 11:44

 

 

미국 콴티코 해병 박물관(USMC Museum)에 전시되어 있는  M 50 온토스

 

 

 

미국 패튼 전차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M 50 온토스

 

 

 

 

M 50 온토스의 차체 좌우에 장착된 106mm 무반동포 6문

 

 

 

  베트남 Chu Lai 해변에 상륙한 미군의  M 50 온토스와 수륙양용 LSD 28 - 1965년 6월 1일

 

 

 

 

베트남의 작전지역에 투입된 미군과 M 50 온토스

 

 

 

M-50 온토스의 제원

구경 106mm 
초당 포탄속도 500m/s
유효사거리 2750m
최대사거리 7700m
무장 106mm M 40 무반동포 6문
부무장 30 구경 M 1919A4 기관총 1정
엔진 GM 6   6실린더 302ci
제작 댓수 297대
제작년도 1955년 ~1957년
제작사 Allis Chalmers 
사용년도 1956년 ~1969년

 

 

 

 

 

 

베트남전 당시 맹위를 떨쳤던 미군 106mm 6련장 무반동포 차량이었던 M50 온토스

 

 

 

 

전투를 치른후 M -50 온토스 위에서 잠에 곯아 떨어진 미 해병대 병사 - 1968년 2월

 

 

 

 M-50 온토스 106mm 무반동포의 야간발사시 섬광

 

 

 

 

 

 

M-50 온토스는 1950년대 초반에 미 육군이 항공수송이 가능한 대전차 구축 차량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그 개발이 시작되었다.
이 병기의 중량은 1950년대의 수송기에 실리거나 견인이 가능하도록 10~20톤 가량의 중량에 맞춰야 했고

 미 육군에서 널리 사용되던 GMC 트럭의 6기통 엔진을 활용해야했다.
그래서 M-50 온토스의 개발은 군용무기보다는 농업용 트랙터및

 전기 발전기 제조로 잘 알려져있는 앨리스 챨머스에서 맡았다.
온토스는 106mm 무반동포가 무려 6대가 차체에 장착되었고

그중 4대는 위치 포착용 50구경 총이 부착되어 있었다.
50구경의 총은 106mm포를 쏘듯이 발사하고 목표물에 명중되어

 연막이 터지게 되면 그것을 기준으로 조준위치를 잡는 방식이었다.
106mm 무반동포의 포탄은 18개 정도로 소량 적재할수 있었는데

 그러했던 이유는 차체 내부의 공간이 워낙 비좁고 협소했기 때문이었다.
부무장으로는 30구경 M 1919A4 기관총 1정이 추가로 장착되어 있었다.
1952년에 첫 시제 차량이 나온 온토스는 1955년 양산형 차량의 완성과 테스트가 끝났지만

 미 육군은 온토스의 양산을 취소해 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차량에 적재할수있는 포탄수가 고작18발 정도로 적었고 

차량의 중량에 비하여 무장이 비대했던점 또한 문제였다.
하지만 무었보다도 더 큰 문제는 포탄의 재장전시 승무원이 차량내부에서 햇치를 열고 나와서

수동식으로 재장전을 해야되는 점이었다.
이럴때는 적의 저격에 치명적으로 노출될수 있었다.
하지만 대전차병기의 보급이 절실했던 미 해병대가 대신 채택하여 도합 297대가

1955년도부터 1957년까지 생산되어 1956년 처음으로 실전에 배치된다.
M-50 온토스 6련장 무반동포가 한국전이 비로소 휴전된지 1년후 부터

 미 해병대에 본격적으로 배치되기 시작했으니 더 일찍 양산화 되었더라면

한국전 초기에 한반도에서 공산세력과의 전투시 그 위력을 발휘할수 있었을 것이다.
이후 온토스가 개량화 된것은 1963년부터 1965년까지 크라이슬러사의 8기통 860ci 엔진으로 교체되었다.
297대중 176대가 교체되어 그 개량형 모델은 M50A1으로 명명되었다.
이러한 내력을 가지고 있는 온토스는 베트남전에서 적 전차를 피격시키는 기능보다

아군 보병에 화력을 지원하는 병기로 활용되게 된다.
M-50 온토스는 차체 장갑이 얇아 적의 RPG공격과 지뢰에 취약했으므로 

고정된 형태에서 방어전력을 구사하는 형태로 그 활용도를 꾀한 것이다.
지휘관들에게 온토스는 전투시 타겟화 되어 많은 피해를 볼수있는

전차보다도 빠른 기동성을 구사할수있는 장점을 살려

적의 거점과 건물의 벽등을 단숨에 대파시킬수있는 화력을 발휘했다.
베트남전 때의 어떤 전투에서는 미 해병대가 베트콩 부대에게 포위되어 고립당하게 되자 

온토스 1대가 포위망을 뚫을 논두렁을 거쳐 적의 거점에 106mm 무반동포를

다발로 발사하여 단숨에 돌파구를 마련하고 적을 괴멸시킨 사례도 있었다.
또한 데 소토 작전에서 Quan Ngai 시 남쪽의 25마일에 위치해 있었던

 미 해병대를 지원하기 위하여 CH-53 씨 스탈리온 헬리콥터로 온토스를 공수한 기록도 있다.
온토스는 원거리에 떨어져 작전중이던 아군에게 헬리콥터로 수송할수 있는 경량화 병기의 장점을 나타내었다.
이렇듯 베트남전에서 유용하게 활용되던 온토스는 1969년 베트남전 미군병기의 편제에서 해제되고

일부는 미군의 경보병여단에 배치되거나 포탑을 분리시킨후 고정진지등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1970년 미 육군이 운용하던 차량까지 모두 미 본토로 후송해온 온토스차량들은 건설차량등으로 활용되었다.
해체되지 않은 몇대의 온토스 차량들은 버지니아 해병대기지와

 캘리포니아 미 해병대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photo from : picstop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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