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소전쟁 당시 우크라이나 모즈도크 비행장 상공에서 독일 공군의 공격을 받고 모즈도크 비행장에 착륙하여 항복한
소련 공군 전투기 에이스 조종사 야코프 안토노프를 둘러싼 독일군 - 1942년 8월 25일
독일 공군 루프트바페의 에이스 조종사 귄터 랄(좌측 첫번째 팔찡 낀 사람)과 고든 골로보 (좌측 두번째 고개숙인 사람)
공중전에 패한후 독일군이 점령한 비행장에 착륙하여
독일군에게 항복한 소련 공군의 에이스 조종사였던 야코프 안토노프
독소전쟁 초기 소련 공군의 에이스 조종사이자 소련의 전투기 영웅이었던 야코프 안토노프
야코프 안토노프는 독일 공군의 전투기 에이스 조종사 고든 골로보와의 공중전에서 결국 패하고 만다.
하지만 장렬히 전사할것 같았던 소련 당국의 기대와는 달리 독일군에게 항복한후 포로가 된후 수용소로 보내지게 된다,
야코프 안토노프의 가족
야코프 안토노프와 그의 아내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 공군의 에이스 야코프 안토노프의 전투기를
격추시킨 독일공군 루프트바페의 에이스 조종사
- 고든 골로브(Gordon Gollob:1912 ~1987)
독일 공군 메서슈미트 BF-109F 전투기위의 고든 골로브 - 1942년 우크라이나 크리미아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 루프트바페의 에이스 조종사였던
귄터 랄 (Günther Rall : 1918 ~ 2009)
귄터 랄과 히틀러
독일 메서슈미트 BF-109 전투기 콕피트에 들어가 보는 귄터 랄
독소전쟁 당시 소련군의 문서에 따르면 소련 공군의 에이스 조종사
소련 공군 84 전투 비행대의 야코프 이바노비치 안토노프 소령은 1942년 8월 25일 모즈도크 근처의
독일군 비행장을 공격하던 도중 그는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독일 공군과의 공중전에서 루프트바페 제 77 비행 중대 지휘관이자
독일 공군 JG-77 전투기 조종사 에이스였던 고든 골로브(Gordon Gollob)와의
공중전으로 피해를 입은 전투기를 독일군이 점령한 모즈도크의 비행장에 무사히 착룩시킨후 체포되었다.
이와 같은 기록은 당시 독일 공군 루프트바페의 에이스였던 귄터 랄의
전투 기록을 담은 비행 일지에도 기록 되어 있다.
독일군에게 체포 당시 그는 가슴에 소련의 영웅임을 표시하는 세개의 훈장을 달고 있었다.
그는 독일군에 의해 재빨리 호송되게 되어 린치를 모면했지만 모즈도크에서 포로 수용소로 보내졌다.
일설에 의하면 나중에 안토노프는 독일군 병원으로 호송된후
탈출의 기회를 엿보던중 독일 공군의 JU-52 기를 몰고 소련으로 탈출을 했다고 한다.
이와같은 상황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의 공군 사령관까지 역임했던
나치 독일 공군 루프트바페의 에이스였던 귄터 랄이 소련군의 정보를 인용하여
안토노프가 전후 생존해 있을것으로 내다 보았다.
하지만 그의 전후 운명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다.
현재 러시아에 있는 안토노프의 추모비에는 그가 1942년에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독일 공군의 항공기를 이용하여 탈출했을 것으로 가정해 보았을때 독소전쟁 당시
소련 공군의 영웅이라고 지칭했던 안토노프가 독일군에 붙잡혀 항복한후
탈출을 하여 다시 살아 돌아왔으면 소련 당국은 정치적으로 대단히 난감했을 것이라 사료된다.
한때 영웅이라고 정치적으로 추켜세운 안토노프가 소련 공군의 에이스였지만 그때는 스탈린 시절이었다.
스탈린 공산주의 시절 적군에게 항복한 병사는 그 누구도 예외없이 가차없이 사형을 시키거나
시베리아 강제수용소로 유형 보내어져 가혹한 중노동에 시달리다 죽어 갔다.
그러나 조국 소련을 위해 대독(對獨)전선에서 싸운 그는 과거 성과를 어느 정도 인정 받아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유배지나 외딴 곳에서 그의 과거사를 일체 숨긴채 살게 되었을 것으로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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