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폭격으로 폐허가 된 프랑스 생로의 어린이들[WW2 Allied Force Bombing France Saint Lo's Children]

슈트름게슈쯔 2013. 6. 27. 12:58

 

 

폭격으로 완전히 파괴된 생로를 지나 이동하는  미군 트럭과 지프 -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독일군의 거센 저항에 따라 많은 사상자의 피해를 보아야 했던

미군은 프랑스 내륙으로 진출시 꼭 점령해야 하는 교통의 요지인 생로에 폭격기 2,000대의

폭격으로 독일군이 점령하고 있던 생로를 완전히 파괴시켰다.

로마시대의 유적이 많은 프랑스 고도에 대한 이러한 대규모 폭격은

그야말로  빈대를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다 태운 격이었다.

하지만 미군은 이탈리아 몬테카시노 전투에서 독일군의 극렬한 저항을 겪었듯이

육상전으로 생로에서 독일군과 장기간 각개전투를 벌이며 병력을 소진시킬수 없었다.

그것은 교활한 소련군이 동쪽에서 동유럽으로 계속 점령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파괴된 도시의 도로위를 지나가는 미군 지프를 쳐다보는 프랑스 생로(Saint. Lo)의 집을 잃은 어린이들 - 1944년 6월

 

 

 

 

 

 

 

 

폭격으로 폐허가 되어버려 집을 잃고 비참하게 생활하는 생로(Saint . Lo)의 여성들과 어린이들 - 1944년 7월 26일

 

 

 

종전 3개월후 폭격으로 폐허가 된 생로를 찾아온 프랑스인 부부 -  1945년 8월

 

 

 

생로는 프랑스 북서부 바스노르망디 지방 망슈 주의 주도이다.

생로에는 비르 강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갑(岬)에 있다.

이곳은 로마가 갈리아를 지배하던 당시에 브리오베라로 불리다가 6세기의 쿠탕스 주교 성(聖) 로의 이름 따서 개칭되었다.

생로는 중세에 중요한 요새였으며, 직조업으로 유명했으며 1796년에는 쿠탕스를 대신하여 주도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이곳은 프랑스 내륙의 주요교차로에 있어서 그 옛날 부터 중요한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러한 지정학적인 위치에 놓여 있던 생로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 1944년 6월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이후

한달 열흘 정도가 지난 7월 18일 독일군이 점령하고 있던 생로에 대규모의 폭격을 가하게 된다.

 미군이 생로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수차례에 걸친 미 공군 폭격기 2,000대의 폭격에 의해 생로는 거의 완전히 파괴가 되었다.

그리고 종전후 3년 후였던 1948년 부터 시작된 복구사업을 통해 비르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중세시대의 성벽(폭격으로 드러남)이 복구되었고, 고딕 양식으로 된 노트르담 교회(14~17세기)도 복구되었다.

생로는 현재 프랑스에서 가정용 전기기기 생산을 포함하여 약간의 경공업이 이루어지는 상업도시이다.

 또한 도시 자체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가공하며 대규모 말 사육장이 근처에 있다.

생로의 인구는 22,819명 정도이다.

 

 

photo from : dailymail.co.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