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 병기

독일 노르트하우젠 동굴속의 V2 로켓 제작 공장[WW2 German Nordhausen V2 Rocket Factory Cave]

슈트름게슈쯔 2013. 8. 4. 11:43

 

 

독일 페네뮌데 연구소의 V2 로켓 탄두 - 1942년

 

 

 

A4로켓 엔진의 도면

 

 

1944년 여름에 영국 정부부는 독일 해안지역이었던 페네뮌데에 분명히 뭔가 있다고 느꼈다.

 그것은 영국 스피트파이어 정찰기가 페네뮌데 상공위에서 촬영해온

 항공사진을 일일이 판독해본 결과 였다.

그 사진들을 일일이 판독해본 결과 실험장 형태의 야지에서 로켓 비슷한 형태의 물체가 포칙되었다.

 이에 따라 영국은 그것이 V-1과 유사한 독일군의 비행 폭탄이라는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영국 정부는 재빨리 독일 페네뮌데 해안 로켓 시설 공장지역에 영국 폭격기 편대를 투입시킨다.

1944년 8월 17일 영국 공군의 폭격으로 페네뮌데의 로켓 공장 시설은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다.

영국 공군의 기습적인 페네뮌데 공습은 성공했지만 로켓 최고개발 책임자인 베르너 폰 브라운은 살아남았다.

 그러나 폰 브라운을 도와서 A4 로켓을 개발하였던 많은 엔지니어들이 폭격에으로 인하여사망해 버렸다.

그래서 영국은 나치 독일에게 A4 로켓 생산에 큰 차질을 빚게 만든다.

 

 

 

 

노르트하우젠에서 발견된 V2 로켓의 엔진

 

 

그리고 독일은 영국 공군에게 신무기 제작공장이 다시 폭격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노르트하우젠에 미텐베르케사의 공장을 신설하였다.

 연료저장용 동굴도 함께 설치된 이 거대한 지하공장에서는 V1로켓과 타이푼 로켓탄등도 함께 생산되었다.
1944년 6월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에 성공하고 내륙으로 진격하자 히틀러는

1944년 9월 V1에 이어서 A-4로켓을 집중적으로 발사하도록 명령하였다.

A-4 로켓의 주기관은 알콜(A제)과 액체산소(B제)추진체로 하고 있으며

A제 4173kg, B제 5533kg을 각각의 탱크에 주입하였다.

A-4로켓의 엔진은 추력 25t, 68초동안 연소되며 약 3t의 무게의 A-4는 97km까지 상승하여

 300km앞의 목표물에 2900km/h의 속도로 돌입하였다.
1944년 9월 8일 런던에 A-4로켓의 제1발이 명중했다.

영국군은 이 당시 가스 폭발이라 발표하여 주민들의 공포를 무마시켰지만

마하 4의 속도로 계속해서 날라오는 A-4로켓에 주민들은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노르트하우젠 광산 동굴속의 V2 로켓을 살펴보는 미군 MP - 1945년  

 

 

독일은 페네뮌데 로캣 공장을 폭격 당한 이후  중부의 노르트하우젠 근교의 암염 광산을 이용해 공장을 만들었다.
이곳에는 도라라고 이름 붙여진 강제수용소에서 노동력을 얻었고 1만명 정도의 노동자들과 경비원들이 있었다.
노예노동자의 다수는 프랑스군과 소련군 전쟁포로들이었다.

이곳의 관리는 초기에 독일 제 444포병대대가 맡아 운용하였다.

 

 


 




 

독일 노르트하우젠 동굴속에서 노획한 V2 로켓을 열차로 이동시키는 미군

 

 

 

 미군이 노획하여 벨기에 앤트워프 시내에 공개한  V2 로켓 - 1945년

 

 

 

A-4로켓은 약 20kmX 30km의 지점에 낙하했으며

주민들은 언제 이 로켓탄의 세례를 받을지 몰라 두려움에 떨었다
1944년 말까지 447발이 런던에 떨어졌으며 대전말기까지 9000여명의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하지만 런던보다 앤트워프항에 발사된 로켓이 더 많아서 A-4가 924발이

벨기에 앤트워프항을 향하여 발사되었다.

이것은 앤트워프항이 연합군의 가장 중요한 군사물자 보급기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밖에 유럽 각 지역에 10여개 도시에 A-4로켓이 발사되었으며

전쟁 종결시까지 영국의 런던에 1151발, 앤트워프에는 1341발,

브뤼셀에 65발, 뤼즈에 98발, 파리에 15발등이 발사되었고

 대전말기 유명한 레마겐 철교 공방전에서는 레마겐 철교를 향해 11발이 발사되었다고 한다.
한편 A-4로켓은 고정식 발사대가 연일 연합군의 폭격으로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뒤에는 이동식 발사대가 고안되었다.

 이 이동식 발사대는 이동시에는 로켓을 수평으로 놓은 상태로 이동시키고 발사시에는 그대로 세워 발사할 수 있었다.

이 이동식 발사대는 한나절정도의 준비를 거쳐 발사한 뒤 1시간 내에 발사 흔적을 완전히 없앨수가 있었다.
히틀러가 어느 국가의 국민이라도 A-4의 지속적인 공격 앞에는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호언했듯이

제2차대전의 시점에는 A-4로켓은 상식을 뛰어넘은 획기적인 병기였다.
한편 V2로켓이라는 명칭은 독일군내에서는 일체 사용된 일이 없으며

독일군은 항상 이 로켓을 A-4로 불렀다.

V2라는 명칭은 보복병기 1호라는

V1로켓의 이름을 참조하여 연합군이 부르던 이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독일군은 A-4로켓 이외에도 A-5부터 A-10 로켓까지 다양한 로켓을 연구했다.

 A-6은 A-4의 연료를 개량한 것으로 설계만으로 끝났고

A-7은 A-5의 유익형, A-8은 A-6의 연료 시스템 개량형이었다.

A-9는 경량화한 A-4b에 A-6의 동력시스템을 결합시킨 것으로 

생산 비용이 적게 먹히는  A-4에 밀려 양산되지 못했다.

 A-9는 부스터 역할을 하는 A-10에 결합하여

미국 본토 공격용으로 계획되기도 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인류의 우주 로켓 개발의 청사진이었던 폰 브라운이 제작한 A4 로켓의 엔진

 

 

 

 

미국의 최대 항공기 박물관인 오하이오주 데이튼 공군 박물관(Dayton OH - AirForce Museum)에

 

전시되어 있는 V2 로켓의 엔진 - 2005년

 

 

 

 

 

 

 

photo from : Histom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