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6.25 전쟁 Korean War

한국전쟁에서 활약했던 미 해병대 영웅 군마 레클리스 중사[Korean War U.S Marine Horse Hero Sergeant Reckless]

슈트름게슈쯔 2013. 9. 25. 11:43

 

 

 

 

 

 

 

레클리스와 미 해병대 대원들이 사용했던 75 mm 무반동포(Recoilless Rifle)

 

 

 

 

 

한국전쟁 당시 미 해병대 대원들과 군마 레클리스

 

 


한국전 당시 전선에서 활약한 미 해병대에 이름이 레클리스라는 몽고종 암말인  군마가 있었다.

 

이 군마는 6.25 동란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는 서울 신설동 경마장에서

경주마로 트랙을 누볐던 말로서 한국명은 '아침해'였다.

그러나 1950년 6월25일 새벽 38선을 넘어 남침해 내려온 북한 공산군대가 일으킨

 6.25동란 한국 전쟁과 함께 '아침해'의 운명도 바뀌게 된다. 

산악지역이 많은 한국에서 탄약공급에 어려움을 겪던 미 해병 1사단 5연대

무반동화기 소대의 에릭 페더슨 중위가 1952년 10월 250달러에 '아침해'를 군마로 구입했다.

미 국방부는 이 때를 아예 '아침해'의 미군 입대일로 기록했다.
'아침해'는 최전선의 해병대원들에게 탄약과 포탄을 나르는 임무를 수행했다.
해병대원들은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게(Reckless)' 임무를 수행한

 아침해에게 '레클리스'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레클리스는 전쟁이 막바지에 치닫던 1953년 3월 미 해병과 중공군 120사단이 맞붙은

'연천전투(네바다 전투)'를 포함해 레클리스는 전장터의 보급기지와

 최전방 고지를 386회나 왕복하며 탄약 수백 톤을 날랐다.

국방부는 장병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한 레클리스를 정전협정후 미국으로 데려갔다.

또한 전쟁터에서 부상을 당한 레클리스에게 전투중 부상당한 군인에게 주는 '

퍼플 하트' 훈장은 물론, 미 대통령 표창장·국방부 종군기장을 수여했다.
또한 1959년 미 역사상 처음으로 군마인 레클리스를 하사관으로 진급시킨 후 근무 기장인 선행장도 수여했다.
1960년 성대한 전역식을 가진 레클리스가 1968년 죽자

미 해병대는 정식 장례식을 치르는 등 마지막까지 최대한 예우를 했다.

 

 

 

 

 

레클리스 동상을 제작한 미국  여성조각가 조슬린 러셀

 

 

 

 

 

 

 

 

제임스 에이머스 해병대 사령관과 한국전 참전 용사 미 해병 1사단 5연대 소속 해럴드 워들리(80) 예비역 병장

 

 

 

 

날개 없는 천사들 재단 대표  로빈 허튼과  제임스 에이머스 해병대 사령관과 여성조각가 조슬린 러셀 - 2013년 7월 26일

 

 

 

미국 비영리재단 [날개 없는 천사들] 로빈 허튼 대표의 연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 해병대 병사들 - 2013년 7월 26일

 

 

한국전 정전 60주년을 맞아 한국말 ‘아침해’(레클리스 한국명)가 다시 탄생, 영원의 세월을 살게 됐다.

 한미동맹의 상징으로 부상한 군마 레클리스의 동상과 기념관 헌정식이 2013년 7월 26일 오후

 버지니아주 퀀티코의 미해병대 본부에서 열려 한국전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물론

한미양국 동맹의 영원한 표상으로 떠올랐다.

7월18일 국립해병대박물관 야외공원에 실물 크기 동상이 설치된 데 이어

 이날 열린 공식 헌정식에는 제임스 에이머스 해병대사령관(대장) 등

미 국방부 고위 장성들과 참전용사 등이 참석, 한국전의 의미를 깊게 했다.
행사에는 일반 시민들이 대거 참관하고 미국의 주요 언론들이 취재경쟁을 벌이는 등 레클리스의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특히 한국전 당시 레클리스와 함께 생사를 넘나들었던 미 해병 1사단 5연대 소속

해럴드 워들리(80) 예비역 병장이 참석, 생생한 추억을 소개해 영웅담을 들려줬다.

그는 “우리의 용감한 전우 레클리스는 부대에서 유일하게 네 발 달린 해병대원이었다.

 행군을 할 때가 되면 모두 레클리스처럼 발이 네 개였으면 하고 바랬다”는 농담으로 말을 열었다.

워들리씨는 “레클리스는 천상 해병대원이었다.

철조망 아래로 기기도 했고 총격전때는 영리하게 납작 엎드리기도 했다.

적군의 폭격이 있을 때에는 벙커로 재빨리 뛰어들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1953년 3월 26일 경기도 연천지역에서 중공군 120사단과 벌인 네바다 전초 전투에서 우리의 영웅이었다.

레클리스는 절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이어 “레클리스는 중공군 포격과 1분에 500발 총탄속에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엄청난 무게의 탄약을 닷새동안 끊임없이 실어날랐다”며 “레클리스가 실어준 탄약으로 결국 기지를 탈환했으며,

새벽 여명 속에서 연기와 화염 뒤로 군마의 실루엣을 보고 내 눈을 믿지 못했다.

그건 레클리스였다”고 말하자 행사장은 우뢰와 같은 환호에 휩싸였다.

이날 행사에는 로버트 블랙먼 해병대유산재단 이사장(중장)과 비영리재단

‘날개 없는 천사들’의 로빈 허튼 대표, 동상 제작을 맡은 여성조각가 조슬린 러셀 등도 참석했다.

허튼 대표는 “7년전 레클리스의 사연을 듣고 그녀(레클리스)와 사랑에 빠졌다”며

“한국전이 잊혀진 전쟁으로 알려졌는데 레클리스를 잊혀지게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올가을 ‘하사 레클리스, 미국의 전쟁마’라는 책을 출간한 뒤 이를 영화로 제작할 예정이다.

참석자들은 박물관 레더넥 갤러리에서 헌정식을 가진 뒤

인근 셈퍼 피델리스 기념공원에 설치된 레클리스 동상의 제막식에 참석했다.

제막식에는 참전용사들과 가족 등 수백명이 참석했다

 


레클리스 기념관에는 이 말의 동상과 함께 각종 자료가 전시된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말은 미 해병대 하사 계급까지 받은 용감한 군마로 미국에서는 유명하다.

 1950년대부터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와 라이프 매거진 등이 특집기사로 다뤘고

최근에도 추모웹사이트(www.sgtreckless.com)가 생길 정도였다.

 

 

 

 

 

 

 

 

photo from : zenyatta.com

                         hamptonroads.com

               ponybox.com

                       chronofhorse.com

             dvidshub.net

                 fox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