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우스타샤 크로아티아 파시스트 여성[Ustasa Croatian Fascist girls]

슈트름게슈쯔 2013. 10. 18. 14:39

 

 

2차 세계대전 당시 크로아티아 우스티샤 여성 대원들의 행진 - 1942년

 

 

 

우스타샤의 상징

 

 

 

 

2차 세계대전 당시 크로아티아 파시스트 우스타샤 여성들

 

 

 

 우스타샤 크로아티아 혁명 운동은 크로아티아의 반 유고슬라아 분리주의 운동 조직이다.

우스타샤의 이념에는 파시즘과 크로아티아의 극단적인

민족주의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권주의적 근본주의가  섞여있다.

우스타샤는 제 2차 세계 대전에 테러 집단으로 활동하였다.

1941년 4월 이들은 추축국이 점령한 유고슬라비아 일부 지역에

나치 독일이 세운 괴뢰 국가 크로아티아 독립국의 지배를 맡았으며,

 파시스트 이탈리아와 나치 독일의 비호를 받으며 세르비아인 학살을 저질렀다.

1945년 전황이 불리해진 독일군이 유고슬라비아에서 물러나자

우스타샤는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에 쫓겨나 결국 궤멸되었다.

1929년에 창설된 우스타샤는 안테 파벨리치가  지도자였으며,

크로아티아에 독립국을 건설하려는 민족주의 단체였다.

우스타샤가 크로아티아 독립국을 지배하면서

 이 나라 군대는 우스타샤 군대(Ustaška Vojnica)가 되었다.

이들의 명칭은 "서다", "오르다"라는 뜻의 동사 'ustati'에서 나왔으며,

우스타샤(ustaša)는 반란을 뜻한다.

유고슬라비아 왕국 당시 조직이 세워진 초기에 'ustat'이라는 말은

헤르체고비나에서 1875년의 헤르체고비나 반란군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기 때문에 이 명칭에 파시즘의 함의가 없었다.

'Pučki-Ustaša'는 제국 크로아티아 조국 수비대(1868년~1918년)의 군사 계급이었다.

이 조직의 원래 정식 명칭은 1931년 4월에

우스타샤 - 크로아티아 혁명 조직(Ustaša - Hrvatska revolucionarna organizacija, UHRO)로 등장하였으나,

1933년 '우스타샤 - 크로아티아 혁명 운동'으로 바꾸어 제2차 세계 대전까지 유지하였다.

1941년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는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침공하여 크로아티아 독립국이라는

 괴뢰국을 만들었고 루이 바르투(Louis Barthou)를 수상으로 임명했다. 

크로아티아 독립국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세르비아인과 동방 정교회 신자들을 학살하였다.

이미 일렬의 인종갈등과 종교적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되었던 지역에서

 이념이라는 요소는 잔인함과 학살이라는 결과물을 세상에 나오게 하였는데,

이들이 지배한 괴뢰국가인 크로아티아 독립국가에서

나치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비호아래에서 저질러졌던 학살극으로

 세르비아인 250,000명이 국외로 추방되었고 330,000명에서 390,000명에 달하는

세르비아인과 37,000명에 달하는 유대인이 우스타샤에 의해 학살되었으며

약 200,000명이 고문과 협박으로 인해 로마 가톨릭 교회로 개종해야만 했다.

또한 충격적인 사실중 하나가 이들 우스타샤 출신들은 모두 카톨릭 신자였을 뿐만 아니라

카톨릭 사제들도 이 학살극에 직접적으로 간여 되어있다는 사실이다.

당시 죽음의 수용소라 칭해졌던 야세노바치 강제 수용소(Jasenovac)의 소장인 

미로슬라브 필리포비치(Miroslav Filipović) 또한 사제출신이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에도 크로아티아에는

우스타샤를 독립운동가와 동급으로 생각하며

순수한 크로아티아인의 나라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을 우스타샤라 부르며

우스타샤의 심볼을 복장과 깃발과 모자에 붙여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photo from : juliagor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