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현장

골란 고원에서 파괴된 시리아군의 전차[Destroyed Syrian Army Tanks on the Golan Heights]

슈트름게슈쯔 2014. 3. 1. 18:16


중동전 당시 이스라엘군의 공격에 의해 골란 고원에서 파괴된 시리아군의 소련제 T-34/85 전차 





이스라엘군의 영국제 센츄라온 전차의 공격에 의해 파괴된 시리아군의 독일 4호 전차




골란 고원에서 파괴된 시리아군의 독일제 4호 전차 - 1965년 7월 




1967년 6월 5일에 시리아,이집트 연합세력과  이스라엘간에 

이른바 [6일 전쟁]으로 불리는 제3차 중동전쟁이 발생하였다. 

시리아와 이집트는 1966년 10월 군사동맹을 맺고 주변아랍국가들과도 협력체제를 강화하면서 

대이스라엘 군사공격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이스라엘이 선제공격을 가함으로써 

양측간의 전쟁은 6일만에 종결되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에서 시나이반도, 골란고원, 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 등 

 본토의 5배에 달하는 광대한 지역을 점령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UN안보리는 이스라엘에게 빼앗은 영토를 반환하라는 결의를 했지만 47년이 지난 지금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스라엘과 아랍세계는 1973년 6월 제 4차 중동전쟁을 벌이게 되었고,

 이 전쟁도 결국 이스라엘이 유리하게 종결되었다.
이후 아랍국가들의 국제적 지위와 역할이 크게 증대함에 따라 

그 동안 소외되었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정치적 위상도 커졌다.

 마침내 1973년 11월 알제리에서 개최된 아랍정상회담에서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일하고 합법적인 대표로 승인되었다.


또한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1979년 3월 26일 미국의 캠프데이비드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평화협정을 체결하였다. 

이러한 체결에 따라 평화적 관계를 정착시키는 한편 이집트는 잃었던 시나이반도를 되찾게 되었다. 

그러나 이집트는 독자적으로 이 협정을 체결하였기 때문에 아랍세계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으면서 고립되었다.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것은 중동지역의 평화와 안정 분위기를 성숙시켰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가 크나, 팔레스타인 문제와 이스라엘 점령지 반환 문제 등과 같은 

중동 평화 전반의 현안 쟁점을 포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진정한 '중동평화안'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어렵게 조성된 중동지역의 평화 분위기를 외면하고

 1967년과 1973년 전쟁에서 점령한 동예루살렘과 가자지구 및 

골란고원을 1980∼1981년 기간동안 자신의 영토로 공식 합병시켰다. 

특히 1981년 12월 14일 골란고원을 자국내 영토로 공식 합병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과 골란고원을 빼앗긴 시리아는 이후 몇 차례 평화회담을 시작하였으나, 

양국은 골란고원의 반환을 둘러싸고 맞서고 있다. 

이스라엘은 시리아에게 시리아군의 감축과 비무장지대 설치를 포함한 

이스라엘의 안보보장을 우선 요구하는 반면, 시리아는 골란고원의 반환을 우선하고 있다.

시리아는 이스라엘과의 최소한의 평화조약을 맺기 위해서는 골란 고원의 반환이 필수라고 주장하고 있고

 자국의 안전보장을 요구하는 이스라엘은 이를 거부하고 있어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골란 고원은 갈릴리 호수 북쪽에서 가파른 경사를 이루며 올라가 주변 지역을 대부분 감제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로 이곳을(좀 더 북쪽에 위치한 헤르몬 산도 중요하다) 점령하는 쪽이 
군사적으로 갈릴리 지역의 통제권을 확보할 수 있다. 
특히 이 점은 이스라엘 측에게 더 강력하게 작용하는데 제3차 중동전쟁 이전까지는 골란 고원 서부의 
깎아지른 절벽에 구축된 시리아군의 영구진지를 손도 못 대고 피해만 신나게 입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골란 고원이 돌파되면 그 후에는 그냥 이스라엘의 심장부가 파괴지는 순서만 남게 된다.

반면 골란 고원을 이스라엘이 잡고 있을 경우엔 반대로 시리아의 요충지를 단박에 접수할 수 있다. 
실제로 제4차 중동전쟁 당시 시리아군의 공격을 막아내고 공세이전하면서 
다마스커스로 가는 진격로를 확보하고 다마스쿠스에 장거리 포격까지 가했지만
 진격 전에 협상을 통해 종전되기도 했다.

그리고 군사적인 문제 외에도 황무지나 다름없는 유대 지역에 비해서 비옥하고 
녹음이 있는 갈릴리 지역 중에서도 특히 풍광이 수려하고 
인간의 생활에 유리한 지형으로 되어있다는 이점이 있다. 
사실 수자원이 중동 지역 치고는 풍부해서 폭포가 있는 등 지뢰와 
군사적 충돌지대라는 위험성만 제외하면 관광지가 될 만한 곳이 많다.

그래서 이스라엘인 10만 정도와 시리아인 2만(마즈엘 샴스 지역)이 같이 살고 있기도 하다.
 골란 고원은 이스라엘의 척박한 토지 상황보다 훨씬 비옥해서 10만이나 몰려든 것이라고.
 물론 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기존 거주민들을 강제로 내쫓은 탓도 크다. 
하지만 막상 시리아에게 반환할 생각을 가지더라도 10만이나 되는 현지 거주민 문제가 골칫덩어리이다. 
골란 고원에 거주 시리아인은 시리아 국적이 인정되어 
국경선에서 이스라엘군이 보는 조건으로 친척끼리 만나는 상봉의 자리를 가지기도 한다.

그 외에 시리아와의 관계 문제도 있어서 골란 고원에 비하면 단순한 완충지였던 시나이 반도는 소규모지만 
원유가 산출되고 전략적으로는 만만치 않게 중요한 수에즈운하로 통하는 
접근로라는 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에게 냉큼 돌려줬지만 
골란 고원은 아직도 이스라엘이 단단히 거머쥐고 있다. 
갈릴리 호수로 이스라엘 수자원의 상당 부분을 직접 통제할 수도 있으며 
이스라엘의 수자원은 갈릴리 호수와 요르단강에 의존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국제 하천인 요르단강에 댐을 건설하는 문제만으로도 전쟁이 일어날 뻔한 적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 지역을 보유하는 국가가 인접한 다른 국가에 비해 압도적으로 
유리해지는지라 지금까지 평화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미국도 1967년 3차 전쟁 이후 UN안보리의 결의에 계속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이스라엘에게 무기와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 중동분쟁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당사자 입장이기 때문에 중동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상당히 어려운 전망이다. 

특히 이러한 미국에 대한 아랍인들의 반감이 바로 테러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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