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독소전쟁 당시 에스토니아의 탈린[German-Soviet War Estonia Tallin]

슈트름게슈쯔 2014. 6. 21. 12:01



독소전쟁 당시 에스토니아 탈린 시내에서 소련군과 전투를 벌이는 독일군 - 1941년 8월 




독소전쟁 초기 에스토니아 탈린의 구 시가지를  점령한 독일 북부군의 Sd.Kfz. 10/5  하프 트랙 - 1941년 9월 







소련군을 몰아낸 독일군을 환영하는 에스토니아 탈린 시민들 - 1941년 9월 2일 








독소전쟁 말기 독일군으로 부터 점령된 탈린을 3년만에 다시 재점령하는 소련군 - 1944년 9월 




독일군을 몰아낸 소련군을 환영하는 에스토니아 탈린 시민들 - 1944년 9월 




탈린은 북유럽의 발트해 3국중 한곳인 에스토니아의 수도이다..

한국에서 출발하여 항공편으로 에스토니아 탈린으로 여행을 가려면

 서부 유럽보다도 더 가깝게 걸린다. 

일단 한국에서 핀란드 헬싱키까지 직항 노선의 항공기를 이용하면 9시간 정도 걸린다. 

그리고 2차적으로 헬싱키에서 선박편으로 2시간만 더 가면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이 나온다. 

탈린이라는 도시의 이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사악했던 희대의 독재자였던

 소련 스탈린의 이름과 유사한 뉘앙스를 풍기지만 

그러한 독재자와는 정반대로 아름다운 북유럽 도시중의 한곳이다.

 역사에 탈린이란 도시가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않아  탈린이 역사서에 처음 등장한 것은 1154년이었다. 

12세기경 탈린을 침입한 십자군들은 기독교를 전파시켰다. 

에스토니아의 탈린은 지정학적으로 발트해의 한가운데 위치하여 

북유럽과 무역을 하기에 좋은 여건을 지니고 있다.

과거에 탈린은 독일 상인들이 중심이 된 한자동맹에 가입한 이후 

이 도시는 북유럽 최대의 무역항으로 번영을 누렸다. 

한자동맹이란 독일 도시를 중심으로 중계무역과 상권을 장악하던 도시들의 연합을 뜻한다. 

자국 도시에게는 세금을 물리지 않고 타국에서 들어온 물자는 

제대로 팔지 못하도록 세금을 물리거나 훼방을 놓는 보호무역을 했다.  

그래서 한자동맹에 발끈한 덴마크가 탈린에 침입을 했다. 

근대에는 스웨덴과 러시아라는 두 강대국이 탈린을 놓고 영토 다툼을 벌였다. 

중세에 탈린은 스웨덴에 복속돼 있다가 1710년에는 러시아에 병합되었다. 

러시아가 에스토니아를 합병시킨 뒤 표트르 대제는 서유럽의 우수한 건축물과 

전통이 남아 있는 탈린에 여름 별장을 지었다.

 표트르 대제는 수도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정하고, 에스토니아의 탈린과

 발트해 너머 핀란드의 헬싱키를 묶어 이 세 도시를 러시아의 중심축으로 삼으려 했다. 

헬싱키는 당시 신도시였다. 

탈린에 표트르 대제가 지은 여름 별장은 후대에 도스토예프스키, 차이코프스키 같은 

러시아의 이름난 예술가들이 찾아와 휴가를 보낸 곳이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었던 에스토니아는 구소련의 붕괴 후 1991년에야 비로소 독립을 할수 있었다.

에스토니아는 러시아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반소련, 반러시아 감정이 워낙 심한 나라이다. 

에스토니아에서는 소련과 싸우기 위해서라지만 

나치 독일의 SS에서 복무한 것을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을 정도이다.

 2005년 러시아의 2차대전 60주년 전승기념일 참가를 거부했고

 2007년에 '소련 해방군 동상을 철거해서 에스토니아에 있는 러시아인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모스크바 주재 에스토니아 대사관이 털리고 토마스 헨드리크 일베스 에스토니아 대통령이 

에스토니아가 소련의 잔재를 청산했다는 이유로 러시아로부터 부당한 위협을 받고 있다며 

"러시아가 더욱 문명국답게 행동해 주기를 부탁한다"고 말했을 정도로 

대립각을 세우는 편이다.

 이때 분노한 러시아 네티즌이 에스토니아 사이트에 공격을 가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발트해의 키배 사건. 이것 때문에 경제적으로 에스토니아는 상당한 피해를 보기도 했다.  

또한 에스토니아인이 65%, 러시아인이 28% 정도를 차지하다 보니 

다른 두 국가 정도는 아니어도 꽤나 민족 갈등의 소지가 있는 편이다.

한국과 에스토니아는 1991년 10월 17일 수교를 맺은 후 

양국은 여러 가지 협정을 체결하고 발효시켰다.

  에스토니아는 발트 3국 중 북한과 수교하지 않은 유일한 국가로 

한국의 대북 정책 및 외교 정책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북한의 수교 제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비민주적 체제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주 핀란드 대사관이 에스토니아를 겸임하고 있다. 

2013년 12월 2일에 개설된 대한민국 주 리가 분관이 향후 대사관으로 승격하면

 에스토니아도 겸임할 예정이라고 한다. 

에스토니아는 한국인에 대해서 비자가 면제되는 나라인데,

 이것을 이용하여 한국인을 사칭하는 아시아인들이 많은 탓에 

이 나라에 입국할 시에는 한국인임을 입증할 필기시험을 치러야 했다는 사례가 보고되었다. 

물론 대다수의 경우는 아무런 문제 없이 통과한다.

그 문제 중에는 인순이의 직업을 묻는 문제가 있기도 하고

 자갈치 시장이 있는 곳이나 한국 유명인의 직업 및 고향을 묻는 것도 있다. 

그런데 때론 한국 사람도 꽤 어려운 문제를 내는 통에 한국 여행자들이 진땀을 흘린다.

탈린 시내에는 고려인들이 많이 살고 있기에 한국식당이 여럿곳 있다.





photo from: Histom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