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6.25 전쟁 Korean War

한국전에 투입되었던 미군의 M41 워커 불독 전차[Korean War during US Army used M41 Walker Bulldog Tank]

슈트름게슈쯔 2014. 6. 21. 18:53



1950년 한국전쟁 6.25 동란 당시 미국에서 신형전차로 개발되어 

한국 전선에 첫 투입되었던 미군의 M41 워커 불독 전차  - 1951년 



M41 워커 불독 전차는 한국전 당시 1951년에 개발되었던 미국 육군의 경전차로서 

M24 채피 경전차의 후속 모델 전차였다.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에 투입되었던 미군 전차의 종류는 꽤 많은데

대표적으로 M4 셔먼전차,M26 퍼싱전차.M24 채피 경전차

M46 패튼전차,M36 잭슨 구축전차 ,M7 프리스트 자주포

M18 핼캣전차를 개조시킨 M39 병력수송 장갑차와

M19 대공전차와 M40 155mm 빅쇼트 자주포및 

M37 105mm 자주포와 

M41 워커 불독 전차및

 아이러니하게 병기의 넘버가 같은 

M41 155mm 자주포가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 M41 워커 불독 전차만의 활약 사진은 매우 찾아 보기가 힘들고 귀하다.

위의 사진은 한국전쟁 다큐멘터리에서는 자주 볼수 있지만  정확히 6.25 동란 당시

미군이 중부전선의 어떤 곳에 M41 워커 불독 전차를 투입시켰는지는 알려져 있지는 않다.

한국전쟁을 소개하는 김영식씨의 사이트(www.johndclare.net)에서는

 M41 전차를 북한군의 전차로 착각을 하여 

6.25 동란 당시 남한을 침략하는 북한군의 전차로 소개해 놓고 있기도 하다. 

이와 같은 오류는 한시 바삐 시정을 하여 역사를 왜곡시킨다는 

빌미를 단 0.1% 라도 북한에 제공하여 그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아야 한다.

한국전에 투입된 M41 전차의 사진 1장은 아이러니하게도 

김영식씨의 사이트에 1장이 존재할뿐 다른곳에서 찾아보기란 매우 어렵다.




한국전쟁 기간중 미국 클리블랜드의 제네랄 모터스,(GM) 탱크 공장에서 생산된

 M41 워커 불독 전차와 M24 채피 경전차의 차체위에 40mm 대공포 2문을 장착시킨 M42 더스터 대공 저주포 - 1952년 





전선으로 투입시키기 위해 열차로 수송되는 M41 워커 불독 전차




월튼 워커(Walton Harris Walker : 1889~1950) 중장 



M41 워커 불독 전차는 미국 워커 장군의 이름을 붙인 전차이기도 하다.

한국전쟁에 있어 미국의 워커 중장은 한국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자 

북한공산군대의 침략으로 한반도 이남이 모두 북한군의 수중에 떨어지기 직전 

낙동강전선을 목숨을 걸고 방어함에 따라 그야말로 풍전등화 상태의 대한민국을 기사회생시킨 장군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한국을 위해 낙동강 전선을 사수해준 

미 육군 월튼 워커 중장은 1889년 12월 3일 텍사스 주 벨턴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2년 웨스트 포인트를 졸업한 뒤 프레드릭 펀스턴 준장 아래에서

 베라크루스에 원정을 그리고 미국 멕시코 간의 국경을 순찰하였다.

이후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자 그는 미군 제 5 보병 사단의

 기관총대대 중대장으로 참전하였으며 은성 훈장을 수여받았다. 

1차 세계 대전의 종전 이후 그는  중국과 지휘 및 참모 학교, 웨스트 포인트과 기타, 그리고

 1930년에는 조지 마셜이 이끄는 보병 여단에서 집행 장교로서 근무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월턴 워커 소장은 3 기갑 사단장으로서 유럽 전선에 참전하였다. 

그는 조지 패튼 장군 휘하에서 20 군단장으로 임명되어 진격하였다. 

워커 장군은 당시 북아프리카 전투에서 독일 제3제국 국방군의 롬멜부대와 맞서 공훈을 세우고 중장으로 승진하였다. 

 종전 후, 5 군 사령관직을 거쳐 1948년 주일(駐日) 8 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한반도 38도선을 넘어와 전쟁을 일으킨 북한 공산군대의 침략에 의해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미 극동군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는 1950년 6월 30일 워커 중장에게 

주일 미 제8군의 “제24사단을 한국으로 이동시키라.”라는 명령을 하달)하였다. 

월턴 워커 중장은 7월 13일 한반도로 파견되었다.  



그는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고,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후퇴란 있을 수 없다.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라고 부하들에게게 명령하면서]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한국을 지키겠다 

[낙동강 전선 시찰 도중 차출된 국군들과 함께]


여기서 더 후퇴하면 내가 장례식을 치뤄주지 !!

[1950년 7월 29일 낙동강 전선 시찰후 ]


워커 중장은  대한민국에 부임 당시 미숙했던 장병들만으로 극도로 불리했던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면서 그는 낙동강 방어선에서 죽는 한이 있어도 

무조건 방어하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이에 한 부하가 반론을 제기하자, 옆에 있던 더글라스 맥아더가 "군대에는 민주주의가 없다."라는 말로

 워커 중장의 지휘명령을 옹호해주었다. 

이후 한반도에 상륙한 타흐신 야즈즈가 이끄는 터키 지원군의 지원을 받아, 낙동강 방어선을 방어해냈다. 

 워커 중장은 1950년 12월 23일, 훗날 육군 대장이 되는 아들인 샘 S. 워커 대위의 

은성 무공 훈장 수상을 축하해주기 위해 가던 중 의정부(현재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자리)에서 

안타깝게도 교통 사고로 사망하였다.

 그가 타고 있던 지휘관 지프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민간인 차량을 피하다가 굴러떨어졌으며

 시신은 아들에 의해 수습되어 미국 본토로 보내졌다. 

이듬해 1951년 1월 2일, 알린턴 국립 묘지에서 화장되었으며  대장으로 추서되었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6년후 한국 중부전선의 미군 M41 워커 불독 전차 대대 - 1959년 




미국 클리브랜드 전차 공장에서 생산되는 M41 워커 불독 전차 - 1960년 8월 6일 







photo from : www.motorbase.com

                 www.johndclar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