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레닌그라드 봉쇄 당시의 러시아 여성들[Siege of Leningrad during Russian Women]

슈트름게슈쯔 2014. 7. 31. 10:47






독일군의 포격으로 사망한 레닌그라드의 주민들 













독일군의 포격으로 사망한 가족의 사체를 공동묘지로 이동시키는 러시아 여성 - 1942년 




독일군의 폭격에 의해 파괴된 아파트속에서 실의에 빠져 있는 레닌그라드 여성들 




레닌그라드 상공에서 벌어진 소련군전투기와 독일군 전투기의  공중전을 지켜보는 여성들 





레닌그라드 방위대 여군- 1941년 





지붕위에 올라가서 경계 근무를 서는 레닌그라드 대공 방위대 여성들 - 1942년 5월 1일




식량이 고갈된 레닌그라드에서 이삭 대성당 앞 잔디밭을 양배추밭으로 만든후 씨앗에 물을 주는 러시아 여성 - 1942년 





레닌그라드 포탄공장에서 생산된 152mm 포탄의 표면 처리 점검 작업을 하는 여공 마리아 미하일로바 




레닌그라드의 여성 스나이퍼 





레닌그라드 방위대의 여성 데그챠레프 기총수들 




행군하는 레닌그라드의 소련 여군 - 1944년 







독일군의 포위로 보급이 끊긴 뒤 레닌그라드의 시민들의 삶은 매우 처절했다.

특히 독일군의 폭격으로 식량 저장고가 개발살나면서 당장 먹을 식량이 턱없이 부족했다. 

주민들의 난방 연료인 석탄이나 석유, 가스의 공급도 끊겼고,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유서깊은 목조 가구나 건물들을 장작으로 쓰기 위해 부숴야 했다. 

당연히 엄청난 수의 아사자와 동사자가 발생했고, 의약품이 부족해지면서 병에 걸려 죽어가는 시민들도 늘어났다. 

 영양실조로 인해 괴혈병이 돌기 시작하자 소나무의 솔잎에서 비타민 성분을 채취해 배급했고,

 밀가루의 부족으로 빵을 만들기 위해 호수에서 격침된 수송선에서 인양한 

썩은 밀가루와 톱밥, 목화 씨 등 평소에는 절대 먹을 수 없는 것까지 재료로 사용했다.  

이외에도 가죽으로 만들어진 가방이나 신발을 푹 끓여서 젤리로 만들어 먹기도 했고, 

쥐나 곤충을 잡아 먹거나 들판에서 캐낸 풀이나 나무에서 벗겨낸 나무껍질로 연명하기도 했다. 

도로를 제외한 공터들에 빼곡히 심어서 재배한 양배추를 맹물에 끓여서 

썩은 빨래 냄새가 진동하는 것을 억지로 먹기도 했다. 

소련의 공식 기록에서는 부정되고 있지만, 

죽은 사람의 시체에서 채취한 인육을 먹는 식인 행위까지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소련군은 이 식인 행위를 단속하고 범인들을 처벌하는 임무 또한 수행해야 했다.  

이렇게 삶이 가장 원시적인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레닌그라드의 시민들은 강인했다. 

레닌그라드 봉쇄에서 살아남은 시인 올가 베르그골츠는 포위된 레닌그라드에서 

'그야말로 거칠 것 없는 자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썼다. 

죽음이 도처에 널려 있었기에 그런 자유를 자극했고, 

그 자유는 자연 발생적인 융통성, 삶의 강렬함, 섬뜩한 극기 정신을 불러일으켰다.  

믿기지 않게도, 레닌그라드의 노동자들은 이렇게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모스크바 방어에 사용할 곡사포와 박격포 1,000문을 만들어 냈고,

 이 무기들은 독일군 진지선을 넘어 레닌그라드 밖으로 공수되었다. 

소련군도 레닌그라드를 지키기 위해 라도가 호수가 결빙되는 시기를 이용해 

차량을 동원하고 호수 위에 임시 협궤 철도를 가설하는 등의 수단으로

 레닌그라드에 물자를 공급했고, 레닌그라드에 난방을 위한 가스를 공급하는 파이프라인을 복구하는데 성공했다. 

또 이 기간 동안 탈출을 원하는 시민들의 외부 지역 소개 작업도 이루어졌고, 

1942년 봄에는 시민들의 건강과 영양 상태가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어떠한 불리한 상황에서도 항복하지 않은 시민들 덕에 레닌그라드는 영웅도시라는 칭호를 받았다. 

하지만 대가는 시민들과 군인들의 엄청난 희생이었다. 

공식 통계로 63만, 비공식 추산으로는 100만 이상의 레닌그라드 시민들이 

추위, 굶주림, 질병, 독일군의 폭격이나 포격으로 사망하거나 의용군으로 동원되어 전사했고,

 많은 문화 유산들이 독일군의 공격으로 파괴되거나 주민들이 겨울을 나기 위한 땔감으로 쓰면서 소실되었다.

 그러나 독일군이 포위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항복하지 않은 

레닌그라드의 이야기는 소련의 러시아인들과 다른 연합국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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