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ese Tank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의 마지막전차 3식 치누 [Pacific War Japanese Army Last Tank Type-3 Chi Nu]

슈트름게슈쯔 2014. 10. 8. 15:42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3식 치누 전차의 제작 공장 - 1944년 



구 일본의 태평양전쟁 당시 TYPE-3 형 치누 전차는 TYPE 97 치하전차의 또다른 개량형 모델이었다. 

이 중전차(Midium Tank)의 기원은 TYPE-1 치해(Chi He)전차였다. 

TYPE97 형에 비해서 TYPE-3 형이 다른점은 내부포탑의 공간이 넓어졌고 

포탑 상부가 길어졌으며 바퀴구조가 1조 더붙어 전장이 넓어진 형태가 되었다.

그리고 완충장치의 대형스프링이 측면의 중간에 길다랗게 1조를 더붙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초기부터 본다면 치누 전차는 일본이 제작했던 전차중 제일 발전된 형태의 개량형 모델이었다.  

이 3식 치누 전차의 디자인은 미군 M-4 샤만전차 와의 전투에서 일본군이 얻은 전훈으로 비롯되었다.

 태평양전쟁의 사이판,이오지마,오키나와,과달카날등의 전투에서

미군 M4 셔먼 탱크의 75mm 주포의 화력에 일본군 치하(Chi- ha) 97식 경전차와

 하고(Ha-Go) 경전차는 그야말로 손쉬운 사냥감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한 뼈아픈 경험의 전례로 일본은 75mm포의 비교적 대구경포를 장착한 전차를 제작하게 된것이었다.

 75mm의 전차포는 포신길이가 2.88m였으며 높은 포좌는 -10 과 +25 각도의 계측으로

 포구에서 초속680m의 발사속도로 100m 이내에서 90mm의 철판을 관통시킬수 있었다.

또한 1000m 이내에서 65mm의 철판을 관통시킬수 있었다. 

 이 3 식 치누 전차의 주포는 90식 프랑스의 1919 75mm 슈네이더 산악포 (Shuneider Mountain Gun)를 기초로 제작되었다. 

치누전차의 개발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1년전 1944년 5월에 개발되어 

10 월에 마쳤던바 약 6개월의 시간에 제작되었다. 

치누전차는 일본 육군의 마지막 전차로써 전쟁이 종결되기 직전에 제작되었던 전차였던 것이다. 

3 식 치누전차는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에 연합군의 일본 본토침공에 의한 본토 방위용으로 제작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태평양전쟁 당시 전선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던것이다. 

3 식 치누전차는 일본 큐우슈우와 혼슈섬의 연대 병력부대에 각각 6 대씩 배치 되었다. 

 [일본 전투차량과 태평양전쟁] 그리고 [주물과 금형모델] 이라는 잡지의 저자 스즈끼 씨에 의한 보고에 의하면 

3 식 치누전차는 종전까지 도합 200여대가 생산되었다고 전한다

태평양전쟁 당시  생산시점이 너무늦어 버렸고 대수는 얼마되지 않았었지만 

그나마 3식 치누전차는 2차 세계대전중 일본이 만든 전차중에서 

제일 나은 화력을 갖춘 형태의 전차였다고 볼수있다.





3식 치누 전차의 변속기










노획한 3식 치누 전차를 살펴 보는 미군 - 1945년 




전리품으로 미국 본토에 가져 갈 일본군의 3식 치누전차 1대를 선박에 선적시키기 위해  준비중인 미군 병사들-1945 10월 27일






일본 쓰치우라의 육상자위대 무기학교에 전시가 되어 3식 치누 전차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의 전차로서 미군 M4 셔먼 전차와 같은 구경의

 75mm포를 탑재시킨 전차로서 3식 치누 전차가 있었다.

일본군은 본토 결전을 대비하여 혼슈와 규슈에 배치되었던 

전차 부대중 최소 6개 연대가 3식 치누 중전차로 무장하였다.

하지만  미군의 일본 본토 상륙 이전에 무조건 항복을 하였기 때문에 

실전에 치누 전차가 투입된 적은 없었다

3식 치누 전차는 일본군이 태평양전쟁 말기에 제작했었던  중(重)전차였다.

정식 명칭이 3식 치누 전차는1식 중전차 치헤의 차체에 

90식 75mm 야포를 개수한 대포를 포탑에 새로 제작하여 장착시킨 전차였다. 

치누 전차에 장착시킨 90식 야포는 75mm포 였다.

일본군의 75mm 포는 미군 M4 셔먼에 달린 그 75mm포와 본질적으로는 같은 

프랑스제 M1897 75mm 야포가 원형이었다,

 75mm포를 탑재시킨 치누를 개발한 일본군은 미군에게 

복수를 할 기회가 왔다고 기뻐했으나 현실은 그러하지는 않았다. 

 3식 치누 전차는 치헤 전차의 작은 차체에는 과분한 75mm 포를 장착시켰다는 게 문제였다. 

치누 전차는 차체에 비해 포가 무거워서 신뢰성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야포가 원형인 포를 그대로 탑재했기 때문에 포탑이 차체에 비해 커지는 등 

여러가지 단점이 골고루 나타났다.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주퇴기가 포탑 외부로 노출된 설계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주퇴기가 노출된 것만 해도 약점인데 주퇴기가 외부로 튀어나온 부위가 

포탑 전면이라 적의 공격이 집중되는 곳에다가 약점을 만들어놓은 것과 마찬가지 였다.

  3식 치누 전차는 당장 그 해당 부위에 포탑의 장갑을 관통할 수 없는 

소구경의 포탄만 맞아도 포의 정상적인 작동이 불가능했는데 그것은 매우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또한 포의 주퇴제어에 발사가스를 사용했는데 문제는 개발 비용이 없어서 

그 당시 전차라면 필수로 갖추어야 할 환기용 팬을 장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투시 밀폐상태에서 사격을 가하면 포탑에 화약이 터진뒤 생성되는 이산화황 가스가 

포탑 내부에 가득차서 포수의 눈을 자극하는 것은 예사이고 심하면 코피까지 흘리게 되었다. 

그러한 관계로  승무원의 전투효율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또한 그러한 상태로 아무리 전차의 성능이 좋아 봤자 종합적인 전투력이 크게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나마 장착시킨 75mm포조차도 셔먼 전차의 정면장갑을 관통시킬려면 

철갑탄으로 사격해도 300미터까지 접근해야만 했다. 

90식 야포의 원형인 M1897 75mm 야포는 원래 고폭탄에만 특화된 포여서 

철갑탄 관통력이 동급 포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매우 떨어졌다. 

75mm포는 영거리 사격으로도 타이거 전차및  독일 중전차들을 격파할 수 없던 M4 셔먼 전차에게 

붙은 도어노커라는 악명높은 별명이 바로 이 75mm 야포의 낮은 철갑탄 관통력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또한 당시의 일본군은 낙후된 야금 기술력과 철갑탄 탄두의 재료인 

텅스텐 광물의 부족으로 인해  철갑탄을 제대로 만들어낼수 없었다.

 텅스텐 성분이 부족했던 일본군의 75mm 포탄은 명중시 그대로 깨져버리는 증상이 흔히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철갑탄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성과를 요구하는 일본군 상부의 압력을 받은

 기술진이 쓰지 말아야 할 속임수를 쓰는 바람에 포구초속은 더 높은데 관통력이 크게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는 상부에 보고할 카탈로그 스펙인 포구초속을 늘리기 위해 탄피와 약실의 용적을 늘리고 포탄의 중량은 줄인 결과였다. 

원래 그렇게 하면 성공적인 경우 고속철갑탄처럼 관통력이 올라가야 하지만

일반 철갑탄도 목표에 명중하면 깨어져 버리는 입장인지라

 거기서 속도만 끌어올린 포탄을 쓰면 관통력이 더 떨어진다. 

애초에 고속철갑탄을 만들려면 관통자나 탄두의 내구성등을 크게 올리는 특별한 기술을 도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문제점때문에 같은 75mm대포라도 일본군의 75mm 전차포는 

미국의 동급 75mm 주포에 비해서도 100m에서의 관통력이 100mm대 80mm로 20mm나 차이가 나는 형태였다. 

치누 전차의 벙어력을 보자면 치헤의 차체를 사실상 그대로 썼기 때문에 방어력이 낮았다. 

그러한 관계로 한발의 적 전차포탄에 맞으면 그대로 죽는다는 것이 일본 전차의 현실이었다. 

치누 전차의 전면장갑의 두께가 셔먼과 비슷하다고는 하지만 

초기형 셔먼의 수치와 비슷할 뿐이었고, 전면적인 경사장갑을 채용한 셔먼과는 달리 수직장갑이라 

설계적으로도 방어력이 한참 모자랐다. 

게다가 미군의 M4 셔먼 전차는 기동계통이 좋았기에 장갑을 더 덧댈 여지도 존재했지만

치누는 그러한 임시 변통의 개조 형태 조차 여의치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치하 전차의 장갑판 재질도 문제가 되었다. 

철갑탄 문제로 당시 일본은 물자부족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 때문에 전차 장갑판에 니켈과 같은 귀중한 금속을 할애하기가 힘들었다.

 특히 니켈은 치누의 제작시기 이전인 1943년부터 당시 필요량의 10%도 충당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항공기의 시제형에도 사용하기가 모자라서 니켈을 조금만 더 달라고 아우성치던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치누 전차의 장갑판은 프라이팬 수준의 연철이었다 .

치누 전차는 치하 경전차처럼 장갑은 물론 리벳 또한 전부 줄로 갈아서 매끈하게 가공했다.  

그렇게 검증과정을 거쳐서 치누는 연철장갑이란 것이 일본자국내에서 이미 증명되었다.

 이런 경우에는 장갑판 수치 비교가 무의미해질 정도로 방어력이 약화되어 버린다.

 이는 연철과 일반 강철의 방어력에서 수준의 차이가 너무 나는데다 

 일반적인 강철도 표면경화장갑이나 균질압연장갑과 비교하면 방어력에서 엄청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일단 이런 재질이라면 치하의 25mm 표면경화장갑보다 방어력이 엄청나게 약하므로 

심하면 대전차 소총이나 M2 중기관총같은 무기의 근접사격에 전면장갑이 충분히 관통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제대로 된 전차포탄을 맞으면 바로 관통되는 죽음의 전차였다. 

게다가 리벳접합방식에서 리벳머리를 잘못 갈아내면 분해될수도 있었다. 

치누 전차는 태평양 전쟁 당시 실전기록이 없지만 만약 실전투입후 리벳머리 마모로 

장갑판이라도 분해되는 기록이 있었다면 전세계 유일의 망신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 부분은 당연히 설계 당시에 균질압연장갑을 채용할 것을 상정해두었을 것이다.

연철 장갑을 채용하게 된 건 자원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었지 설계상의 문제는 아니었기 때문에 

자원을 어떻게 수급했다면 최소한 초기형 셔먼과 동급인 설계상의 스펙이라도 나왔을 것이나

 설령 자원이 충분했었다고 하더라도 일본은 서양 열강보다 재료공학 기술력이 확연히 떨어졌기 때문에 

연철보다야 백배 낫겠지만 동일 두께의 장갑판도 타국의 장갑판보다 

다소 방어력 면에서 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당시  일본에서 없던 자원이 땅에서 솟아날리는 없는 판국이라 결국 무의미한 가정에 불과하다.  

치누 전차의 기동력은 치혜의 차체에는 과분하다 싶을 정도로 크고 무거운 포탑을 장착시켰기에 

그럭저럭 쓸만한 기동성을 보유했던 치헤 전차보다 기동성이 상대적으로 더 낮아져 버렸다. 

 치누의 중량은 포탑을 포함해도 19톤에 불과했다.

중량 자체는 매우 가벼운 편이었기에 치누의 중량을 고려해보면 

240마력 엔진은 그렇게 모자란 출력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기동성이 좋다고 말할 수준은 전혀 아니었다.

 또한 치누 전차는  치헤 전차의 단점을 고스란히 물려받아서 

기어를 넣으려면 레버를 망치로 때려야 하는 등 조종을 하기가 매우 불편했던 특징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렇다보니 운용 편의성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보면 치헤의 기동계통으로  

 치누 전차의 기동성은 좋다고는 말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치누전차는 생산량에서도 금속의 물자부족으로 인하여 양산에 악영향을 끼쳤다. 

제작개시 시간도 1944년 12월 제조개시로 늦었기 때문에 종전까지 166량(1944년 55량, 1945년 111량)이 생산되었다. 

한마디로 200대도 제작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물자를 일본 본토로 수입할 배조차 연합군의 해상봉쇄에 막혀 

고사 되어가는 판국에 전차를 적재시킨 수송선을 태평양 전선의 전장으로 내보낼수 없었다.

 그러한 관계로  일본군은 치누 전차를 본토결전용으로 온전하게 놓아 둘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치누 전차는 일본 본토결전용으로는 1대도 사용할수가 없었던 전차로 전락될수 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시킨 원폭으로 인해 무조건 항복을 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패전 후 남아있던 치누 전차들을 미군은 간단한 조사를 거친 후 휘발유를 뿌리고 

불태우는 등 체계적으로 파괴시켜 고철로 처리되었다. 

그 중 치누 전차 2대만이 남아서 1대은 미국에 전시되었고 

나머지 1대는 쓰치우라의 육상자위대 무기학교에 전시가 되어 있다




일본군 3식 치누 전차의 제원 




중량 18.2 톤
길이 5.64m
폭 2.41m
높이 2.68 m
인원 5명
장갑 8~50mm
무장 75mm 포 1문
7.7mm 기관총 1문(hull)
엔진 미츠비시 TYPE 100 V-12디젤
엔진출력 240hp마력 (179kw)
서스펜션 Bell Crank 
주행거리 210km
최고시속 39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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