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 극장

마돈나의 미시간 대학교 재학 시절 모델 사진[Madonna attended the University of Michigan's school model pictures]

슈트름게슈쯔 2014. 12. 3. 13:01















미국 미시간 대학교 재학시절  처음 모델 촬영을 했던 18세의 마돈나  - 1977년 


1977년 미시간 대학교 재학시절 마돈나는 시간당 10달러를 받고 위의 사진들을 처음 촬영했다.

마돈나의 사진을 처음 촬영했던 사람은 허먼 쿨켄섬(Herman Kulkensom)이라는 사진작가였다.

아마 그는 나중에 마돈나가 세계적으로 대단한 유명세를 떨칠 

희대의 유명인사가 될 것울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마돈나는 1958년 8월 16일 미국 미시건주 베이시티에서 이탈리아 이민1세 노동자로

 크라이슬러의 엔지니어였던 아버지 '실비오 치치오네'와 엑스레이 검사원이였던

 어머니 '마돈나 루이즈 포틴' 사이에서 8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마돈나가 여섯 살 때 유방암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녀는 상실감과 외로움에 빠진다. 

이런 공허감은 그녀를 강하게 만들게 된다. 

마돈나는 어릴적부터 재능을 보였고 자발적으로 댄스 레슨을 받으러 다니는 등 극성파였다.

 마돈나는 미시간에서 자라서 무용으로 장학금을 받으며 미시간 대학을 다녔다. 

대학을 2년 정도 다니다가 '큰 꿈'을 이루기 위해 홀로 뉴욕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후 몇 년간 여러 클럽을 전전하며 밴드 생활을 한다. 

뉴욕에서 마돈나는 많은 고생을 하면서 심지어 포르노 배우 등의 험한 일도 했다. 

그녀는 단돈 35달러만을 들고 타임스퀘어 광장에 앉아 있기도 했고, 

쓰레기통을 뒤졌다는 전설 아닌 전설이 전해지고 있을 정도로 힘들게 뉴욕 생활을 해 나갔다고 한다.

그러나 다행히 클럽 활동을 하면서 내놓은 몇 개의 싱글이 클럽가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마돈나는 1983년 Sire 레코드와 첫 솔로 앨범을 네게 된다.  

그 데뷔 앨범에서 "Holiday"와 "Borderline" 같은 싱글이 빌보드 HOT100 챠트의 40위권, 10위권 내에 들면서

 마돈나는 마침내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댄스 클럽을 전전하다가 클럽 DJ의 눈에 들어 취입한 첫 음반 

'마돈나'는 나이트 클럽에서나 볼 수 있는 급진적이고 과격한 댄스 동작으로

 마돈나식 댄스 장르를 선보이기 시작하며 인기를 모은다.

 여기에 음악 전문 채널 MTV가 생기자 마돈나의 뮤직 비디오는 급속히 세계로 전파됐다. 

두 번째 앨범 "Like a virgin"은 동시에 출시된 야한 뮤직 비디오와 함께 화제가 되며 

이른바 '마돈나 현상'을 만들어 내게 된다.

두 번째 앨범은 타이틀 곡 "Like a virgin"을 비롯 "Material Girl" 등, 

80년대의 전형적인 뉴웨이브 음악이 실려있었고 그녀의 놰쇄적인 춤과 비디오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게 된다.  

한편, 야한 뮤직 비디오와 성적 매력을 전면에 내세운 스테이지는 

]마돈나에게 몸매로 한 몫 보려는 생각 없는 가수라는 악평을 안겨 준다. 

평론가들은 마돈나의 인기가 높아져 가고 많은 마돈나 추종 소녀그룹(Madonna Wannabes)이 

생겨나고 있을 당시에도 그녀가 오래 가지 못 할 것을 단언했다. 

또 하나의 댄스 가수라고 봤던 것이다

하지만 마돈나는 20여 년 동안 변화하는 세태를 자기 컬러에 맞게 소화하며 

가수로, 공연 기획자로, 영화 배우로, 사업가로 거대한 시스템을 구축해 낸다.  

마돈나는 활동 초기부터 마를린 먼로 닮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화제가 되었던 그녀의 누드 사진이(사실은 포르노였지만) 퍼지면서 

섹스 심볼로써의 이미지가 더욱 굳어졌다. 

그녀는 금기에 도전하는 것을 즐기기라도 하듯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일을 하루가 멀다하고 터뜨리며 미디어의 중심에 섰다. 

마돈나의 공연이 금지된 나라도 수개 국이었고 급기야 공연 중에 체포되기까지 하였다. 

그녀 집안이 로만 카톨릭이었음에도 "십자가 위의 예수는 너무 섹시해 보인다." 등의 

정말 한계를 모르는 거침없는 말을 하며 카톨릭 쪽에서는 마녀라고까지 주장하는 등, 

수많은 비난과 지지를 동시에 받았다.

마돈나가 배우로 알려진 계기도 바로 노래 덕분이었다. 

마돈나는 영화 <수잔을 찾아서>에 단역으로 싸구려 여가수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촬영 기간에 마돈나의 노래 'Material Girl'이 폭발적으로 인기를 모으며 

그녀도 주요 배역으로 부상하게 됐다. 

이 작품으로 마돈나는 배우로서의 재능을 갖추었음을 입증한다.

 이 때 그녀는 영화배우 숀 펜과 결혼하나 곧 이혼하게 된다.
1990년 5월 영화 <딕 트레이시>에 출연하면서 영감을 얻어 만든 앨범"I'm Breathless"를 발표한다.

 바로 이 앨범에서 마돈나 최고의 곡 VOGUE가 탄생한다.
특히 아르헨티나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캐스팅된 

알란 파커 감독의 뮤지컬 영화 <에비타>에서 

마돈나는 마치 자신의 성공담처럼 나이트 클럽 댄서에서 퍼스트레이디가 된

 에바 페론의 이야기를 품위있는 연기로 잘 소화해 내 호평을 받았다. 
2002년 영화 <007 어나더데이>의 주제곡을 맡게된다. 

일렉트로닉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주제곡 "Die Another Day"는

 '너무 평범하다'는 평부터 '새로워진 영화 <007 어나더데이>에 어울린다, 

역시 마돈나다' 라는 호의적인 평까지 얻는다. 

그리고 빌보드차트 8위, 영국차트 3위에 오른다.



photo from : Herman Kulkens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