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칸차나부리 죽음의 철도 건설 공사에 동원된 영국군 포로[UK prisoners were involved in the construction of the Death Railway Kanchanaburi]

슈트름게슈쯔 2015. 1. 6. 19:39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포로가 되어 마치 생지옥 같았던 포로수용소 생활과 

강제 사역으로 칸차나부리 죽음의 철도 공사에 동원되었던 연합군 포로들 - 1944년 12월 10일 






태국과 버마를 연결하는 칸차나부리 다리 철도는 일명 죽음의 철도(Death Railway)로 불렸으며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의 포로가 되었던 영국,호주,네덜란드등 연합군 전쟁 포로들이 투입되어 건설되었다. 

칸차나부리 다리 철도의 건축기간은 1년 정도로 1943년 10월에 완공되어 

 일본의 전쟁 군수 물자를 운송하기 위해 미얀마와 연결되었다.

죽음의 철도 길이는 415km이며

 건설당시 태국에서 303km, 버마에서 112km로 칸차나부리 북부지방을 관통하도록 되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죽음의 철도 건설 공사에 투입시킨 사람들의 숫자는 대략 20만-30만명의 아시아인들과 

영국과 호주, 네덜란드, 미국인 전쟁포로 61만806명을 강제 동원시킨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험준한 산악지대와 협곡을 잇는 이 철도건설에 강제 투입된 연합군 전쟁포로중 

4%가 기아와 질병, 호된 노동, 처형 등으로 숨졌고 아시아 노동자들중에서는 7만명이 숨졌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2008년 3월 11일 칸차나부리발 르포기사를 통해

 이 철도건설공사중 숨진 연합군 전쟁포로들의 시신은 잘 관리되고 있는

 묘역에 안치돼 있는 반면 아시아인들의 유골이 아직도 철로변 곳곳에서 

발견될 정도로 아시아인들의 혹독한 시련의 역사는 잊혀진 상태라고 보도했다. 

 일본측 기록에 따르면 현재 말레이시아연방을 이루고 있는 말라야에서 

일제가 강제동원한 노동자수는 8만5천명으로 이중 3만3천명이 숨졌다. 

 희생자들에 대한 배상문제는 전후 말라야의 영국 식민정부가 

희생자 유족들에게 150만 달러를 지급하고 말레이시아 정부 역시 수백만 달러의 배상금을 받기로 하고 

일본과 전후 배상협상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의 역사교과서는 자국민이 희생된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으며 

철로변에 흩어져 있는 희생자 유골을 수습하려는 노력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IHT는 1990년 태국의 한 자선단체가 칸차나부리에서 유골 500여구를 발견했지만 

호주 대사관 조사단이 연합군 전쟁포로의 유골이 아니라고 말해 

방콕으로 가져가 임의로 소각한 일이 있으며 칸차나부리 당국도 

발견된 유골을 악취가 난다는 이유로 폐기하기도 했다.

태국에서 네번째로 큰 주인 칸차나부리(Kanchanaburi)는 

총면적 19,486㎢로 미얀마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방콕에서 서쪽으로 128km 떨어져 있어 차로는 3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황금의 도시라는 의미의 칸차나부리는 한때 금이 많이 나와 붙여진 이름이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로 잘 알려져 있으며 사탕수수 재배지로도 유명하다.

 험준한 산악과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어 국립공원만 5개에 이른다.







photo from : Histom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