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 비사 WW2

브레슬라우 포위 작전 당시의 소련군[Soviet Red Army soldiers in the Siege of Breslau]

슈트름게슈쯔 2015. 3. 16. 16:00
























블레슬라우 시가지 전투 당시 소련군의 노획한 판저파우스트 야간 발사 섬광 - 1944년 



독소전쟁 당시 브레슬라우는 현재 폴란드의 도시 브로츠와프이다.

이 도시에서 독일군은 소련군의 공격을 저지시키기 위해 

1944년 2월 13일 부터 5월 6일 유럽전선에서 2차 세계대전 전투가 

끝나던 날까지 근 4개월 동안 악전고투를 벌였다.

독일군은 바닥난 정규군 병력의 일부및 독일 국민돌격대 폴크슈트름과 

히틀러 유겐트들을 동원하여 소련군대를 막아보지만 물밀듯한 기세로 들이 닥치는 

소련군의 대대적인 공격앞에 독일군은 역부족으로 끝내 전세를 회복하지 못한다.

배수진을 치며 결사항전을 벌이는 독일군의 격렬한 저항에 따른 소련군의 물량 폭격으로

 브레슬라우 시가지는 그야말로 초토화로 변해 버린다.

브레슬라우는 소련군 이반 코네프 원수의 제 1 우크라이나 전선군 예하 6군이 

1945년 2월 13일 포위했고  그로부터 브레슬라우 공방전은

 제2차 세계 대전 유럽 전선 전투의 마지막 날까지 계속되었다.  

1944년 7월 25일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브레슬라우 시를 요새화하고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사수할 것을 선언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6개월 후 1945년 1월 19일 실레지아의 관구장 카를 한케는 

도시 거주자들에게 독일 핵심 지역 드레스덴 등으로 피난할 것을 명령했다. 

동시에 독일군은 국민돌격대를 지원하고 노예 노동자들은 예상되는 

소련군의 공격을 충분히 방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도시를 군사 요새로 바꾸는 공사를 시작했다. 

도심 대부분은 철거되어 활주로로 바뀌었다. 

2월 13일 소련군이 도시를 포위하기 시작했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2월 15일, 독일 공군이 포위된 수비대에 공중보급을 시작했다. 

5월 1일까지 76일 동안 독일 공군은 식량 및 보급품 운송을 위해 

2,000 소티 이상을 출격하여 1,638톤의 보급품을 공급했다. 

그러나 마침내 독일이 무조건 항복을 하기 이틀 전인 5월 6일 

독일군 수비대장 헤르만 니호프가 소련군에 항복하여 포위전은 종결되게 된다.




photo from : www.tumblr.com